승마 스포츠에서 기존 명마의 복제마가 주요 대회에 잇따라 등장하고 있다. 전통적인 혈통 교배로 더 나은 말을 찾아온 산업 구조가 복제 기술과 유전자 편집 확산으로 흔들리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우수한 말 복제해서 출전
9일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세계 승마계에서는 성공한 말과 조랑말의 유전자를 그대로 복제한 개체들이 폴로를 넘어 종합마술과 장애물 경기 등 다른 종목으로 확산하고 있다.
그 동안 말 사육업자들은 세대에 걸쳐 기질과 힘, 체형, 운동 능력을 고려해 혈통을 섞어왔다. 새로 태어나는 망아지는 선택된 부모보다 더 뛰어날 가능성을 갖고 있었다. 이는 완전한 자연선택은 아니지만, 말 스포츠의 발전을 이끈 방식에 가까웠다.
그러나 이제 승마계의 전통 사육 방식이 정체 지점에 도달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우수한 말의 정확한 유전적 복제 개체가 늘어나면서다. 일부 관계자들은 너무 많은 사람이 복제를 선택하면 더 나은 말을 만들어내는 우연한 조합과 교배의 진전이 사라질 수 있다고 걱정한다. 유럽의 대표적 장애물 경기 말 사육업자인 요리스 더 브라반더는 "복제마가 번식에 새로운 것을 가져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같은 말 복제마끼리 올림픽서 경쟁
스포츠마 복제 산업은 사실상 폴로에서 시작됐다. 역대 최고 선수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아돌포 캄비아소는 2000년대 초부터 자신의 최고 조랑말들을 여러 마리 복제했고, 이 말들을 타고 대회에서 우승하기 시작했다. 2010년에는 그의 챔피언 암말 쿠아르테테라의 복제 개체가 경매에서 80만달러에 팔렸다. 당시 폴로 조랑말로서는 눈에 띄는 가격이었다. 쿠아르테테라는 빠른 속도와 민첩성, 뛰어난 판단력 때문에 폴로계의 메시로 불렸다.
복제 기술은 이제 다른 승마 종목으로도 번지고 있다. 2024년 말 7세 말 종합마술 세계선수권의 마장마술 부문이 끝났을 때 칠리 모닝 Ⅳ는 2위권에서 다른 말과 동률을 기록했다. 그 말은 놀라울 정도로 비슷한 강점과 약점을 보였다. 이름은 칠리 모닝 Ⅱ였다. 이는 우연이 아니었다. 두 말은 모두 고인이 된 챔피언 종합마술마 칠리 모닝의 복제 개체였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율리아 크라예프스키는 칠리 모닝 Ⅱ를 탔고, 과거 원래의 칠리 모닝과도 경쟁한 경험이 있다. 그는 복제마들이 섬뜩할 정도로 비슷하다며, 신체적 특징과 능력뿐 아니라 버릇까지 공유하는 듯하다고 말했다. 크라예프스키는 이 말들이 모두 크로스컨트리 코스의 ‘선큰 로드’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는 말이 아래로 뛰어내린 뒤 몸을 뒤로 모으고 다시 뛰어올라야 하는 장애물 조합이다.
다만 크라예프스키는 결국 그것도 말이라고 말했다. 말 자신은 자신이 복제마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복제마는 전 세계에서 해마다 태어나는 전통 교배마와 비교하면 아직 매우 적다. 그러나 이들 복제마와 그 후손은 여러 승마 종목의 최상위 무대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4만달러에 복제 가능…대량 복제 서비스도
말 복제는 논란이 큰 기술이다. 특히 말 스포츠에서는 더 민감하다. 순종 경마에서는 복제가 금지돼 있다. 다른 승마 종목에서는 의견이 갈린다. 일부는 복제가 비현실적인 기대를 만들고 번식 기술의 진전을 막는다고 본다. 유타주립대 운동학·보건과학과의 스포츠 윤리학자 하비 로페스 프리아스 교수는 "모든 말이 최고의 말이라면 경기 전략의 요소가 사라진다"고 말했다. 그는 복제가 어려운 일을 쉽게 만든다고 지적했다.
복제마를 타고 대회에 나선 크라예프스키도 자신의 올림픽 금메달 암말 아망드 드 브네빌을 복제할 생각은 없다고 밝혔다. 그는 복제 개체에 불가능할 정도로 높은 성과 기준을 부여하게 될까 우려한다고 말했다. 자신이나 말에게 그런 압박을 주고 싶지 않다는 설명이다. 이는 복제가 단순한 기술 문제가 아니라 선수와 말 모두에게 심리적 부담을 만들 수 있음을 보여준다.
올림픽 승마 종목을 관장하는 국제승마연맹은 2007년엔 복제마의 대회 출전을 금지했다. 그러나 2012년 이 결정을 뒤집었다. 챔피언 말을 만드는 데는 혈통뿐 아니라 훈련, 기수, 사료, 장제 방식 등 수많은 환경 요인이 작용하기 때문에 복제마가 불공정한 이점을 제공하지 않는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복제 기술이 유전자 편집으로 진전되면서 승마 스포츠가 나아갈 방향을 둘러싼 논쟁은 더 커지고 있다.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말 복제 기업 케이론 바이오테크는 지난 2월 끝난 시즌 동안 약 400마리의 복제마를 생산했다. 대부분은 여러 폴로 조랑말의 복제 개체였다. 이 회사는 2024년 크리스퍼 기술을 이용해 세계 최초의 유전자 편집 말을 만들기도 했다. 이 말들은 폴로 명예의전당 암말 폴로 푸레자의 복제 개체로, 근육 발달을 조절하는 유전자에 편집이 적용됐다.
케이론의 공동창업자 겸 최고과학책임자인 가브리엘 비체라는 이 암말이 기존의 탁월한 특성은 유지하면서 이전에는 없던 단거리 선수 같은 특징을 갖게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케이론의 복제마 비용은 일반적으로 약 4만달러다. 대량 주문에는 할인도 제공된다. 이는 복제 기술이 더 이상 실험실 수준에만 머물지 않고, 상업적 서비스로 자리 잡고 있음을 보여준다.
"복제가 말의 진화 이끈다" 반론도
복제마가 말의 진화를 끝내는 것은 아니라는 반론도 있다. 복제마는 정상적으로 번식할 수 있다. 따라서 원래라면 사라졌을 혈통을 다시 도입하고, 이를 바탕으로 개량을 이어갈 수 있다. 소유자들이 정확한 복제 개체를 만드는 단기 이익을 넘어선다면, 복제는 완벽한 말을 향한 진화를 멈추는 대신 오히려 속도를 높일 수도 있다.
미국의 최상위 장애물 경기 선수 로라 샤포는 일부 사람들이 복제마를 경계한다고 말했다. 그의 부친인 6차례 올림픽에 출전한 프랭크 샤포는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 개인전과 단체전 은메달을 따낸 전설적 장애물 경기마 젬 트위스트를 길러낸 인물이다. 젬 트위스트는 어린 시절 거세됐다. 경기마를 더 차분하고 안전하며 다루기 쉽게 만들기 위해 흔히 이뤄지는 조치였다.
하지만 젬 트위스트의 경력이 워낙 뛰어났기 때문에 샤포의 부친은 그 유전 계보를 이어가고 싶어 했다. 젬 트위스트의 첫 복제 개체인 제미니는 2008년 태어났다. 제미니는 번식용 종마로 활용됐고, 지지자들은 예측 가능하게 강한 결과를 내고 있다고 평가한다. 로라 샤포는 제미니가 사람들이 원하는 많은 특성을 매우 잘 물려준다고 말했다. 그는 전통 교배가 때때로 도박처럼 느껴진다고도 했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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