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과급만 10억, 의대보다 낫다"…'반도체학과' 인기 폭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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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대치동 학원가의 한 입시컨설팅학원 간판에 공대가 의대와 나란히 적혀 있다. /최혁 기자

서울 대치동 학원가의 한 입시컨설팅학원 간판에 공대가 의대와 나란히 적혀 있다. /최혁 기자

올해 고교 1학년인 박모군은 서울 대치동 컨설팅업체에서 ‘반도체 맞춤형 학교생활기록부’를 만들기 위한 컨설팅을 받았다. 로봇 동아리에서 회로 설계를, 교내 탐구활동으로 양자 터널링, 전자기 유도 등 물리Ⅱ에 나오는 개념을 공부할 계획을 세웠다. 박군은 “계약학과는 채용과 직결되는 만큼 학생부에서 ‘조직 융화력’을 강조하면 좋다는 조언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성과급만 10억, 의대보다 낫다"…'반도체학과' 인기 폭발

반도체 계약학과 인기가 의대 못지않게 치솟고 있다. 취업이 어려워진 시대에 이곳에 입학하면 글로벌 최고 반도체기업 사원증을 보장받기 때문이다. 삼성전자 연간 영업이익이 엔비디아에 이어 글로벌 2위에 오를 것이라는 전망과 SK하이닉스의 임직원 1인당 평균 성과급이 억 단위라는 뉴스가 더해지며 관련 학과에 쏠리는 관심은 더 커지고 있다.

반도체 계약학과의 달라진 위상은 입시 결과에서도 나타난다. 2026학년도 정시모집에서 삼성전자 계약학과인 DGIST·UNIST·GIST 반도체공학과 경쟁률은 각각 89.00 대 1, 59.20 대 1, 50.20 대 1에 달했다.

대치동 목동 등 서울 주요 학원가에서는 ‘의대반’에 이어 ‘반도체반’을 신설하고 있다. 직업 피라미드의 최정점에 있는 의사가 되기 위한 대학 서열을 뜻하는 ‘의치한약수’(의대·치대·한의대·약대·수의대)에 이어 반도체 계약학과가 온다는 의미에서 ‘의치한약수반도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목동의 대학 입시 컨설팅업체 U사는 ‘반도체 계약학과 면접 전문학원’을 표방하며 수강생을 모집하고 있다. 다른 지역도 사정은 비슷하다. 경기 동탄의 D학원은 “반도체 계약학과 입시 전략을 설계하고 있다”고 홍보한다.

공대 출신인 유지범 성균관대 총장은 “반도체산업이 성장하면서 공대를 졸업해 의사 못지않은 대우를 받을 수 있다는 분위기가 확산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의대보다 가성비 있는 선택"…입시 경쟁률 최고 11대1 달해
반도체 슈퍼호황에 공대 강세…의대 쏠림 현상 완화될지 주목

13일 서울 대치동의 한 식당에서 만난 대학생 박모씨(21)는 서울 주요 대학 기계공학부에 재학 중이다. 재수 끝에 들어간 학교지만, 한 번 더 새로운 도전을 하기 위해 대치동 스터디카페에 등록했다. 그의 목표는 ‘반도체 계약학과’ 진학이다. 박씨는 “성과급을 10억원까지 받을 수 있다는 뉴스를 보며 확실한 보상체계에 끌렸다”며 “입학과 동시에 취업 걱정을 덜 수 있는 만큼 지금 투자하는 시간이 아깝지 않다”고 말했다.

◇의대 열풍 잠재울까

"성과급만 10억, 의대보다 낫다"…'반도체학과' 인기 폭발

인공지능(AI) 바람을 타고 한국 반도체 투톱 기업의 몸값이 천정부지로 높아지면서 이들 기업 취업을 보장하는 반도체 계약학과의 인기가 치솟고 있다. 의대생 커뮤니티에서는 “사명감을 제외하고 투입 대비 산출만 따진다면 의대보다 반도체 계약학과가 훨씬 더 가성비가 높아보인다”는 목소리가 나올 정도다. 의대 쏠림으로 인한 ‘이공계 공동화’ 우려가 나오는 가운데 반도체 계약학과가 이런 쏠림현상을 완화할 ‘선택지’로 부상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입시 업계에서 더 이상 대학 서열은 무의미해졌다. 최상위권의 진로가 의약학계열, 반도체 계약학과, 로스쿨 연계 문과 최상위 학과라는 세 개 축으로 재편되면서다. 경기가 어려워지고 취업난이 심화된 것도 반도체 계약학과의 인기가 높아진 배경이다. 삼성전자 계약학과인 연세대 시스템반도체공학과와 성균관대 반도체시스템공학과 경쟁률은 각각 5.84 대 1, 5.33 대 1을 기록했다. SK하이닉스 계약학과인 한양대 반도체공학과는 11.80 대 1, 서강대 시스템반도체공학과는 9.0 대 1, 고려대 반도체공학과는 7.47 대 1을 기록했다. 고려대 생명과학과 경쟁률은 2.96 대 1, 연세대 기계공학부는 2.95 대 1에 그쳤다.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는 “대기업의 실적 개선과 주가 흐름, 고액 성과급 등이 반도체 전공의 매력을 키우면서 최근에는 반도체 계약학과가 의대와 견줄 만한 대안으로 자리 잡았다”고 말했다. 의약학계열 지원자들이 정시 원서를 쓸 때 ‘의대 두 곳, 반도체 계약학과 한 곳’을 세트로 묶어 쓰는 전략을 주로 활용하면서 의대와 반도체 계약학과 지원자가 겹치기 시작했다. 주요 대학에서 반도체 계약학과의 합격선이 의대 다음으로 높아진 배경이다. 2025학년도 연세대 자연계열 정시모집 합격선(국수탐 백분위 70% 기준)을 분석한 결과 의예과(99.25점) 치의예과(97.75점) 약학과(96.25점)에 이어 시스템반도체공학과(95.59점)가 4위에 올랐다. 시스템반도체공학과의 합격선이 생명공학과(94.0점) 첨단컴퓨팅학부(94.0점)보다 높았다.

◇산업 흥망성쇠 따라간다

대학의 인기 학과는 산업의 흥망성쇠에 따라 변해왔다. 경제 개발 초기 단계인 1960년대에는 화학공학이, 중동 건설 붐과 각종 개발 사업이 진행되던 1970년대에는 기계공학과 건축공학이 인기였다. 1980년대에는 최고 수재들이 물리학과와 전자공학과로 몰렸다. 관련 학과에서 우수 인재가 쏟아지면서 삼성전자 등 한국의 전기전자 산업이 본격적으로 꽃을 피우는 계기가 됐다.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고소득이 보장되는 평생직장’을 상징하는 의약학계열이 ‘원톱’으로 자리잡는 계기가 됐다.

신창환 고려대 반도체공학과 교수는 “이번 AI발(發) 반도체 슈퍼사이클이 ‘의대에 미친 한국’을 ‘공대에 미친 한국’으로 만드는 하나의 계기가 될 것”이라며 “공대 부활로 반도체뿐 아니라 기계 항공우주 등 공학 분야 전반이 고소득·고성장 산업으로 자리잡는 구조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재연/이미경/최영총 기자 ye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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