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운처럼 빛나는 해파리-투명한 오징어…직접 내려가 본 심해는 “1급 마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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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월드 / 수전 케이시 지음·홍주연 옮김 / 488쪽·2만3000원 / 까치

누구나 한번쯤은 이런 이미지를 떠올려본 적 있지 않을까. 달빛이 비치는 바다 위에 작은 배 하나가 떠 있다. 배 아래로 사람 몸만 한 물고기들이 불길하게 맴돈다. 그러다 유령처럼 옆을 스치곤 어디론가 사라진다. 범인(凡人)이라면 상상만 해도 등골이 오싹해지는 장면이다.

하지만 저자는 아니었다. 저널리스트인 그는 어릴 적부터 이런 꿈을 반복해서 꿨다고 한다. 그렇지만 “한 번도 그 꿈을 악몽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다”고 했다. 되레 그 심연을 들여다보고 싶었을 뿐. 그래서 떠났다. 이 책은 그렇게 평생 바다를 갈망했던 저자가 심해로 떠나는 여정을 그린 탐사기다.

책은 크게 심해에 대한 역사적·과학적 지식과 저자의 잠수 경험기로 나눌 수 있다. 1~7장을 통해 과거 바다를 탐구했던 인물들부터 심해의 생물과 난파선까지 관련 배경 지식을 꼼꼼히 다뤘다. 흥미로운 건 탐사진과 과학자들을 만나는 대목이다. 잠수정을 제작하는 회사인 ‘트라이턴’, 탐사진을 이끄는 사업가 등을 인터뷰하며 적극적으로 기회를 잡는다. 그리고 끝내 트라이턴의 잠수정 ‘넵튠 호’를 타고 심해로 내려간다.

“아크릴 구체 위로 파도가 철썩이더니 물이 머리 위를 덮었다. 차갑고 파란 식도 속으로 삼켜지는 기분이었다. 그냥 파란색이 아니라 다른 색을 생각할 여지를 주지 않는 파란색이었다.”

난생처음 잠수정을 타고 ‘언더월드(Underworld)’로 내려간 저자는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1급 마약”이라고 했다. 단박에 넋을 잃을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60m, 90m, 120m, 200m…. 드디어 심해의 시작인 ‘박광층’(200~1000m)에 다다른 저자는 그날 해저까지 내려갔다.

저자가 직접 본 심해는 말 그대로 “눈부시고 찬란한 곳”이었다. 빛이 부족한 박광층에 사는 생물 대부분이 ‘생물발광’을 하기 때문이다. 심해에서 빛은 포식자를 피하거나 짝을 찾는데 쓰이는 일종의 무기다. 이곳 해파리가 성운처럼 빛나는 것도, 오징어가 온몸이 투명한 유리 같은 것도 모두 이 때문이라고 한다.

물고기도 예외가 아니었다. 이 구역의 포식자로 불리는 샛비늘치, 솔니앨퉁이 같은 물고기들은 먹잇감을 유인하기 위해 빛을 내뿜는다. 그리고 일단 먹잇감이 가까이 오면 놓치지 않도록 진화했다. 무시무시하고도 많은 이빨이 그 진화의 산물이다.책은 또 한번 심해로 떠나는 저자의 모습으로 마무리된다. 하와이 제도의 로이히 해저화산에 내려가기 전, 세찬 바람을 맞으며 저자가 걱정한 건 바닷속에서 길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게 아니었다. 그의 “유일한 걱정거리는 그저 그날 심해로 들어갈 수 있을지 여부”였다.

이쯤됐을 때, 다시 한번 책 서두에 적힌 문구를 곰곰히 읽어봤다. ‘우리는 직접 가서 봐야한다’는 해양탐험가 자크 이브 쿠스토(1910~1997)의 말은 이 책이 전하려는 메시지를 그대로 관통하는 말이었다. 다만 잠수 경험이 궁금해 책을 펼쳤다면 초반부는 다소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다. 차분히 저자의 열정을 따라가며 순수한 자연에 경이로움을 느낄 준비가 되어 있다면? 이 책은 무엇보다도 매력적인 ‘인생 책’이 될 수도 있다.

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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