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 선종] 교황 선종 바티칸 르포
25일까지 성베드로 성당서 일반 조문… 신자 2만여명 운구 행렬 지켜봐
바티칸-로마 곳곳 촛불 켜고 기도… 美-유럽 10대-청년들 많아 눈길
23일(현지 시간) 오전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서 만난 미국인 팻 고먼 씨는 교황의 운구를 지켜본 뒤 벅찬 감격에 차 있었다. 교황을 떠나보내 슬프지만 교황의 사랑을 느끼고 나눌 수 있어 기쁨도 함께한다는 얘기였다. 21일 선종한 교황의 관은 이날 바티칸 산타 마르타의 집 예배당에서 성 베드로 대성당으로 운구돼 사흘간의 일반인 조문을 시작했다. 운구 행렬이 지나간 뒤 한참 자리를 지키던 독일인 가톨릭 신자 파울 고벨 씨는 미소를 지으며 “교황은 벌써 천국에 잘 자리 잡으셨을 것이다. 군중 속에서 교황을 향한 사랑과 열정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이날 성 베드로 광장에서 조문을 기다리던 2만여 명은 운구 행렬을 차분하게 지켜보며 박수를 보냈다.
● 눈물보다 미소로 작별 준비
이날 조문이 시작되면서 바티칸과 로마는 도시 곳곳이 추모의 분위기로 가득했다. 교황에게 ‘마지막 인사’를 전하려는 이들이 추모 열기를 고조시켰다. 신자들은 삼삼오오 도시 곳곳에 간이 탁자를 세우고 교황의 사진과 초를 놓은 채 기도를 올렸다. 관공서 등 주요 건물에도 조기가 걸렸다.
슬픔보다는 감사를 외치는 이들도 있었다. 23일 교황 조문을 기다리던 루카스 씨는 “교황께 그간 함께해 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다”며 “감사의 기도를 할 것”이라고 했다.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교황 조문이 진행되는 성 베드로 대성당이나 교황의 무덤이 마련될 로마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당 앞에는 청년들도 많았다. 최근 서유럽 국가에선 가톨릭 신자가 줄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교황으로 인해 가톨릭과 역사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입을 모았다. 독일에서 온 20대 브라질인 브루나 우리우 씨는 “교황의 선종 소식에 그동안 잘 몰랐던 교황과 교회의 역사에 관심을 갖게 됐다”며 “교황은 소탈하게 대중과 함께하며 교회에 대한 관심을 끌어올렸고, 시각도 바꿨다”고 말했다.
소셜미디어로 증폭된 ‘자기 과시의 시대’에 청빈한 삶을 보여준 교황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는 평가도 나왔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에서 가톨릭 학교를 다니는 10대 리엄 맥솔리 군은 “소셜미디어에서 남들이 과시하는 모습을 보며 우울한 감정이 생기기도 하는데, 교황의 소박하면서도 밝은 모습에서 위안을 받았다”고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열렬한 지지자라고 자신을 소개한 미국인 골드버그 씨는 교황이 트럼프 대통령의 반이민 정책을 비판했어도 교황의 뜻을 기렸다. 그는 “교황은 종교와 국적을 묻지 않고 사람들을 모아 연대를 이루게 했다”고 말했다.● 사흘간 조문 뒤 장례 미사
교황청 궁무처장인 케빈 패럴 추기경은 23일 오전 9시에 기도와 함께 운구 절차를 주재했다. 운구 행렬은 산타 마르타 광장과 로마 순교자 광장 등을 지나 바티칸 대성당으로 들어갔다. 성 베드로 대성당은 23일 오전 11시부터 일반인 조문을 받았다. 조문은 25일까지 사흘간 진행된다. 조문이 끝난 뒤엔 교황의 얼굴이 흰 천으로 덮이고 관이 봉인된다. 관 뚜껑에는 십자가와 교황의 문장이 새겨진다. 교황의 문장은 그가 주교였을 때부터 사용한 방패와 예수회 문양이다. 장례 미사는 26일 오전 10시(한국 시간 오후 5시) 성 베드로 대성당 앞 광장에서 거행된다. 새 교황을 선출하는 비밀회의인 ‘콘클라베’는 다음 달 초나 중순에 열릴 것으로 보인다.
바티칸·로마=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
- 좋아요 0개
- 슬퍼요 0개
- 화나요 0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