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형환 기자] 이재명 정부가 약 12조원 규모의 소비쿠폰 지급이 본격화되며 오세훈 서울시장의 “집값이 오를 것”이라는 발언에 관심이 모인다. 통화량이 늘어나면 유동성이 확대되고 이에 따라 부동산 가격에 영향을 줄 것이라는 논리적 흐름엔 근거가 있지만 이번 소비쿠폰으로만은 부동산 가격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게 다수의 의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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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1일 광주 북구 두암3동 행정복지센터에서 주민들이 민생회복 소비쿠폰 신청절차를 밟고 있다. (사진=광주 북구 제공) |
24일 이데일리의 취재를 종합하면 오 시장은 지난 16일 민선 8기 3주년 기자간담회에서 “일시적으로 돈을 푸는 것은 하책 중 하책”이라며 “통화량이 늘어나면 부동산 가격은 오르게 된다. 이는 세계 공통의 현상”이라고 주장했다. 소비 진작은 이뤄지겠지만 결국 통화량이 많아져 유동성이 부동산 시장으로 흘러간다는 것이다.
오 시장의 주장은 여러 연구에서도 증명된 이야기다. 2020년 전현진 경남대 경제금융학과 박사팀이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실질 M2(광의 통화지표)가 1% 증가할 경우 실질 주택가격이 약 0.26% 상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유동성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던 코로나19 팬데믹 시절인 2021년 국제통화기금(IMF) 보고서에 따르면 “코로나19 이후 확대된 통화정책 및 재정정책이 글로벌 부동산 가격 상승을 견인한 핵심 요인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유동성 확대가 자산 가격 특히 부동산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다만 이번 소비쿠폰의 경우 오 시장이 말한 ‘통화량 확대’의 전형적인 사례로 보기 어렵다. 소비쿠폰의 재원은 한국은행이 새로 돈을 발행하는 것이 아닌 국채 및 지방채 발행을 통해 조달된다. 즉 소비쿠폰을 통해 기존 국채 및 지방채 투자자들의 돈이 여러 단계를 거쳐 영세 자영업자에게 옮겨가는 구조에 가까운 것이다. 이에 따라 시중에 유통되는 M2의 직접적 변화는 없다. 이러한 이유로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역시 “추경은 성장에는 도움이 되지만 물가나 통화량에 주는 영향은 제한적”이라고 설명한 것으로 보인다.
월 통화량이 4300조원 가까이 되는 상황에서 12조원의 금액은 상당히 낮은 비중이다. 또 이번 소비쿠폰은 한계소비성향이 높은 저소득층에 더 많은 금액이 차등 지급되기 때문에 국채로 마련된 소비쿠폰 자금이 투자 시장으로 흘러갈 가능성도 낮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1인 15만원 정도의 금액이 지원된다고 바로 집값에 가시적 영향을 끼치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지금의 부동산 가격에는 기준금리와 이재명 정부의 대출규제가 더 핵심 변수라는 주장이 지배적이다. 집값이 폭발적으로 상승했던 코로나 팬데믹 당시 기준금리는 0.5~1% 수준으로 현행 기준금리(2.5%)보다 훨씬 낮았다. 게다가 최근 발표된 6·27 대출 규제로 인해 부동산 시장의 수요측 자금 흐름은 제약된 상황이다.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부동산 가격 결정은 오히려 기준금리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며 “문재인 정부나 박근혜 정부 당시 부동산 가격이 많이 올랐는데 기준금리가 낮았던 시절”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소비쿠폰 자체보다는 앞으로 이재명 정부가 편성할 확장 재정 지출이 부동산 가격에 큰 영향을 미칠것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확장 재정으로 시중 유동성이 늘고 화폐 가치가 하락할 것이라는 공감대가 커지며 부동산이나 증권에 자금이 몰릴 수 있다는 것이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유동성이 늘어나면 인플레이션 기대 심리에 경제 주체들은 선택의 기로에 놓일 것”이라며 “우리나라의 경우 소비보다는 부동산 같은 실물자산이나 금융자산에 투자할 가능성이 높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