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효림의 베스트셀러 레시피] |
| 많은 사람들에게 뜨거운 사랑을 받는 베스트셀러. 창작자들은 자신이 만든 콘텐츠가 베스트셀러가 되길 꿈꾸지만, 실제로 실현될 가능성은 극히 낮다. 이 희귀한 확률을 뚫고 베스트셀러가 된 콘텐츠가 탄생한 과정을 들여다본다. 창작자의 노하우를 비롯해 이 시대 사람들의 욕망, 사회 트렌드 등을 확인할 수 있다. |
자영업을 하는 1인 가구 유숙희 씨(61)는 편찮은 어머니를 돌아가실 때까지 돌봤다. 가정이 있는 오빠와 동생은 간병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중소기업 대표로 26년째 혼자 사는 강진모 씨(53)는 쭉 원룸에서만 지냈다. 빌딩도 소유한 그는 “집은 의미가 없다. 잠만 자면 된다”고 말한다.
1인 가구가 1000만을 넘었다. 1012만 가구로 전체의 42%를 차지한다.(2024년 기준) 1인 가구는 자유롭고 화려하게 살거나 외로움과 가난에 시달리다 죽음을 맞는 등 극단적으로 인식된다. 하지만 실제 1인 가구는 다층적인 모습을 지닌다. 회사에서는 더 많은 일을 하도록 요구받고 가족이 아프면 간병을 맡는 ‘상비군’ 역할을 한다. 소득이 높아도 삶의 질은 낮은 이들이 적지 않다.김수영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48)가 1인 가구 109명을 6년간 인터뷰해 쓴 논문을 바탕으로 한 ‘필연적 혼자의 시대’(다산초당)는 1인 가구를 입체적으로 조명하며 해법을 모색한다.
이 책은 올해 1월 출간된 후 3개월 만에 1만 1000권이 판매됐다.(국내 출판계의 베스트셀러 기준은 책 판매량 1만 권이다.) 일본 중국 대만에도 수출됐다. 소설, 에세이가 아닌 사회과학책이 해외에 판매되는 경우는 드물다.
김 교수와 책 편집자인 김한솔 다산북스 콘텐츠사업3팀 매니저(40)를 4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 김 교수의 연구실에서 만났다. 대중서를 처음 쓴 김 교수는 “편집자님의 다정한 제안 덕분”이라고 했다.김 교수는 서울대에서 언론정보학과 사회학을 전공하고 사회복지를 부전공했다. 서울대 대학원에서 사회복지학 석사, 영국 런던정치경제대학교(LSE)에서 사회정책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김 교수는 1인 가구에 대한 연구 결과를 지난해 서울대에서 강연했다. 이를 보고 서울대 유튜브 ‘샤로잡다’에서 7월 출연 요청을 했다. 해당 영상은 댓글이 1000개나 달리며 화제가 됐다. 김 편집자는 소셜미디어에서 “시대에 대해 최근 들어본 내용 중 가장 영민한 지적 같다”는 글을 읽었다. 곧바로 영상을 봤다.
“교수님이 ‘기안84를 기이하게 산다고 여기지만 1인 가구들이 그렇게 산다. 기안84는 사무실에서 그림만 그리다가 ‘나혼자 산다’, ‘태어난 김에 세계 일주’를 찍으며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여러 경험을 하며 행복해졌다고 말한다’며 쉽고 재미있게 설명하셨어요. 저자로 꼭 모시고 싶었습니다.”
김 편집자는 다음 날 김 교수에게 e메일을 보냈다.“교수님들 중에는 ‘대중서는 안 쓴다’고 단박에 거절하시는 분이 많아요. 그래서 영상을 자세히 봤고, 연구가 독자에게 도움이 될 거라고 썼습니다. 출판사에도 1인 가구가 많은데 자유롭게 지내고 싶은 이유도 있지만 속내를 살펴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고 했어요.”
김 편집자를 시작으로 출판사 수십 곳에서도 제안이 쏟아졌다.
“편집자님이 논문을 출력해 책으로 구성할 순서로 엮어 오셨어요. 형광펜으로 밑줄까지 그으며 꼼꼼하게 읽으셨더라고요. 나보다 논문을 더 잘 알겠구나 싶어 바로 수락했어요. 1인 가구가 느끼는 막연함과 두려움에 대해 ‘보이지 않는 곳에 지도를 만들고 싶다’며 e메일에 쓴 내용도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자신도 1인 가구인 김 교수와 달리 김 편집자는 초등학생 아들을 둔 엄마이기에 서로 균형을 잡으며 책을 만들 수 있을 거라는 기대도 했단다.“논문이 잘 읽혔고, 교수님이 책을 통해 세상에 바라는 걸 써 보내셨는데 글이 매우 유려했어요. 대중적 글쓰기가 이미 가능한 분이었습니다.”
김 교수는 대학생 때 문학 동아리를 했다. 싸이월드에도 열심히 글을 썼다.
본격적인 작업은 지난해 9월 시작했다. 4개월 만에 책을 만든 것. 표와 주석을 빼고도 369쪽이다. 이 정도 분량의 책을 만들려면 보통 1년 가량 걸린다. 평균의 3분의 1 정도 기간에 책을 만드느라 두 사람은 연일 밤늦게까지 일했다. 빨리 책을 낸 건 김 교수의 바람이었다.
“책 만드는 속도를 몰랐어요.(웃음) 책으로 이 연구를 신속하게 ‘여미고’ 싶었습니다.”
“다섯 살 아래인 사촌동생은 저처럼 지방에서 서울로 대학을 와서 서로 의지하며 지냈어요. 당시 저는 안식년으로 네덜란드에 있었습니다. 제가 더 자주 연락하고 챙겼어야 했는데….” 극심한 고통을 겪으며 1인 가구 연구가 이전과 완전히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초고는 11월에 나왔다. 영화, 드라마, 예능 등 사례가 많아 이를 70% 덜어내고 학문적 연구를 보강했다. 사실상 책을 두 번 쓴 셈이다.
“교수님은 어떤 요청도 다 받아주셨어요. 주제별로 대안을 제시하면 좋겠다고 하니 바로 수락하셔서 각 장 끝에 ‘작은 가능성’이라는 꼭지로 담았습니다. 제가 오후 10시 반에 e메일을 보내면 다음날 오전 6시에 원고가 와 있어요. 깊이 생각하고 수정한 글이었죠. 원고가 ‘날아가듯’ 나왔습니다.(웃음)”
김 교수는 “글쓰기가 드라마 몰아보기처럼 재밌었다. 꼭 필요한 분에게 닿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쓰다보면 어느새 새벽이었다”며 웃었다.
강도 높은 작업 끝에 올해 1월 책을 낸 건 결과적으로 시기가 좋았다. 지난해 8월 행정안전부가 1인 가구가 처음 1000만 가구를 넘었다고 발표하자 1인 가구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기 때문. ‘필연적 혼자의 시대’가 출간된 후 1인 가구에 대한 책이 여럿 나왔지만 이슈를 선점할 수 있었다.
“논문을 보며 핵심 단어를 추리니 ‘필연적 혼자의 시대’라는 제목이 강하게 떠올랐어요. 내가 어떤 영향 아래 있는지 보여주는 사회과학책을 읽을 때 짜릿한데요, 그런 책을 만들게 돼 뜻 깊었습니다.”
출간 후 김 교수에게 TV, 라디오 출연 제의가 이어졌다. 곳곳에서 북토크도 열리고 있다.
“90대 할머니가 보행기를 끌고 오신 모습에 가슴이 찡했어요. 가족에게도 못한 내밀한 이야기를 e메일과 손편지로 보내는 분들도 있고요. 인터뷰에 응해 주신 분들도 공동 저자라고 생각해요. 그 분들의 목소리에 독자들이 메아리처럼 공명하는 순간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다른 배경과 나이의 개인들이 서로를 이해하고 지지하는 모습을 볼 때 이 책은 아직도 ‘쓰여지는 중’이라는 걸 실감합니다.”
“정부 정책이 ‘보편적 혼자들’을 고려해 관계의 결핍을 고민하는 방향으로 나아갔으면 좋겠습니다. 기업의 움직임도 솔로를 겨냥한 상품과 서비스에 연결성을 만들어내는 ‘2세대 솔로이코노미’로 진화하길 바랍니다.”
■ ‘필연적 혼자의 시대’(다산초당·2026년)는….
김수영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가 1인 가구 109명을 인터뷰해(이름은 가명을 썼다) 이들의 삶을 다층적으로 조망하고 각종 어려움을 해결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김 교수는 사회 구조가 1인 가구를 빠르게 만들어낸다고 말한다. 강도 높은 노동을 요구하는 일자리가 늘어나 일을 최우선에 두다보니 혼자 지내게 된다는 것. 한국만 그런 게 아니다. 2019년 EU 산하 유럽통계청에 따르면 덴마크, 핀란드, 독일 등에서도 1인 가구 비중이 40%를 넘었다. 스웨덴은 56%에 달한다.
회사에서는 혼자 사는 직원에게 일을 더 하게 하는 경향이 있다. 대기업 부장 유희영 씨(42)는 “애가 아파서, 사고가 나서 (동료가) 급하게 집에 가야 한다면 그 일은 내 업무가 된다”고 말한다. ‘몸을 갈아’ 일하는 건 기혼자에게도 해당되지만 1인 가구는 일에 매몰되는 속도가 더 가속화된다. 혼자 사는 이들은 주중 여유 시간에도 일하는 경우가 많았다.
1인 가구는 소득과 삶의 질이 비례하지 않았다. 생활이 일 중심으로 돌아가다 보니 회사에서 가까운 오피스텔이나 원룸에서 거주하는 경우가 많았다. 고학력에 소득이 높을수록 청소, 빨래, 요리를 하는 생활 능력이 떨어졌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에서 서울대생 금명(아이유)이 상견례 자리에서 숭늉을 제대로 못 뜨자 예비 시어머니가 비꼰다. 이에 엄마 애순(문소리)이 “너무 귀해서, 너무 아까워서 내가 안 가르쳤습니다”라고 한 말은 애틋한 딸 사랑을 묘사하는 대사로 회자됐다. 하지만 1인 가구의 고충을 확인한 김 교수는 “귀하고 아까우면 살림 좀 가르치지…”라고 생각했다.
1인 가구는 요리를 하려 식재료를 사도 양이 많아 버리게 된다. 결국 배달 음식을 먹거나 외식을 하게 된다. 청소는 ‘견딜만한 수준의 정돈’으로 한다. 자신을 돌보지 않게 되는 것이다. 혼자 사는 이들이 공통적으로 걱정하는 건 죽음 이후다. 대학 교수 홍수경 씨(50)는 “죽는 건 병원이나 요양원에 위탁해도 되지만 죽음 이후에는 나를 거둬줄 사람이 없다는 게 공포”라고 했다. 기간제 교사 신지영 씨(42)는 “(죽어서) 부패될 때까지 사람들이 몰랐다는 게 최악일 것 같다”고 말한다.
영국에서는 2018년 외로움 담당 장관직을 신설해 사회적 단절을 해결하기 위해 나섰다. 독일은 마을 공동체와 공동주택을 조성할 때 여러 가구들이 교류할 수 있도록 폐교 등을 리모델링해 마을의 공동거실로 만들고 있다.
1인 가구의 실상을 생생한 목소리로 짚어내고 영화, 드라마, 소설 등 다양한 사례를 곁들여 읽는 재미를 더한다. 김 교수는 “혼자 사는 사람은 개인화된 사회가 초래한 위험을 제일 먼저 마주하고 있다는 점에서 1인 가구의 이야기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기도 하다”고 말한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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