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윤석열 빨리 버리고
임기 단축 개헌 약속하고
중도에게 지더라도 단일화해야
민주당에 근접할까 말까 한다
국회가 탄핵 소추 후 내란죄를 철회했다면 각하하든가, 각하하는 게 겁났으면 철회를 무시하고 12·3 비상계엄이 내란, 즉 ‘국헌 문란 목적의 폭동’이었는지 판단했어야 했으나 둘 다 하지 않고 헌법 위반으로 도피했다.
12·3 비상계엄은 국헌 문란의 목적은 분명해 보이지만 폭동에 해당하는지는 애매모호하다. 국헌 문란 목적 달성에 실패한 것은 시민들의 반발 때문이기도 하지만 군인들이 실탄도 소지하지 않고 총기도 뒤로 멘 채 진입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상황 가늠도 못 한 채 불가능한 수단으로 범죄를 저지르려던 불능범(不能犯)의 웃지 못할 소극(笑劇) 같은 성격이 있다.
헌재는 내란죄가 없었다면 소추가 성립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주장을 가정(假定)적이라고 묵살했지만 각하한 뒤 국회가 다시 소추하는지 확인하지 않은 헌재의 주장이 오히려 가정적이다. 뇌물죄와 내란죄는 전 세계적으로 전형적인 탄핵 사유인데도 그것을 정면으로 다루지 못함으로써 국회가 탄핵 때마다 중대 범죄를 앞세워 소추하고 정작 심판에서는 철회하는 사태를 더는 막을 수 없게 됐다.헌법 위반으로 대통령을 탄핵하는 사례는 전 세계에 없다. 우리가 베낀 독일 헌법에는 헌법 위반도 탄핵 사유로 돼 있지만, 또 독일 대통령은 우리와 달리 직접 선출되지 않아 실권도 없지만 헌법 위반으로 탄핵한 사례가 없다. 내란처럼 중대한 헌법 위반이라면 이미 법률 위반일 것이므로 법률 위반으로 다룰 수 있다. 헌법은 해석의 범위가 넓어 직접 적용 가능한 몇 가지 조항을 빼고 그 위반으로 탄핵한다면 탄핵은 남용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헌재 결정을 놓고 왈가불가해 봐야 법리적으로는 몰라도 정치적으로는 의미 없다. 바꿀 수 없는 결정이 내려진 때는 빠른 모드(mode) 전환이 필요하다.
탄핵 반대 측에는 윤석열을 무작정 옹호하고 부정 선거론에 빠진 어리석은 사람들이 많았지만 윤석열의 무능함과 계엄의 불법성을 알면서도 더불어민주당이 이재명 유일(唯一) 체제에서 해온 위헌적 행태와 집권한다면 더 할 위헌적 행태를 우려하고 반대한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탄핵이 초래할 정치 지형의 일방적인 변경만 아니라면 오히려 먼저 내쫓고 싶었던 막장극의 주인공이 제거됐을 뿐이다.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내부의 합리적인 지지자들에게 호소할 수 있는 첫 번째 조건은 그런 모드 전환일 것이다. 두 번째 조건은 임기 단축 개헌의 약속이다. 단순히 개헌의 약속이 아니라 임기 단축 개헌의 약속이어야 한다. 자기 당 출신의 대통령이 막장극을 벌였는데도 다시 5년의 기회를 달라고 하는 건 염치가 없다. 다만 그 막장극에는 헌재가 탄핵 결정문에서 사족 같은 훈계를 단 것이긴 하지만 민주당의 잘못도 있다. 그래서 국민의힘이 다시 기회를 달라고 할 수 있는 것이겠지만 막장극의 원인이 된 권력 독점 체제를 바꿀 때까지만이라고 호소하는 것이 최소한의 염치일 것이다.국민의힘 후보가 누구로 결정되건 사실은 큰 의미가 없다는 게 문제다. 민주당 후보를 상대할 만한 수준에 그나마 접근하기 위해 중도 후보들과의 단일화가 필요하다. 그리하여 세 번째 조건은 최종 결정된 국민의힘 후보와 개혁신당 이준석 등이 100% 국민 경선을 통해 단일화하는 것이다. 국민의힘 후보가 단일화에 져서 후보를 못 내는 상황이 오히려 나을 수 있다. 국민의힘 측은 권력을 나눠 가질 줄을 몰라서 망했다. 단일화 과정에서 권력 분점의 약속이 이뤄지면 그것은 분권형 책임총리제나 내각제 개헌으로 가는 건설적인 계기가 될 수도 있다.
대통령 탄핵은 정치 지형을 한쪽으로 급격히 기울어지게 만든다. 그래서 선진국은 탄핵을 할 수 있을 때도 탄핵을 피한다. 우리는 최근 5명의 대통령 중 3명이 탄핵 소추되고 그중 2명이 인용됐다. 인위적으로 형성된 정치 지형은 선거에서의 최선의 선택을 방해한다. 박근혜 탄핵 후에 문재인이 손쉽게 당선된 결과가 어떠했던가. 대선 전까지 양측이 서로를 견제할 수 있을 만큼 팽팽한 구도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송평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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