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경기 중 도입된 3분짜리 수분 보충 시간이 관중들의 맥주 구매 시간으로 변하고 있다. 선수 안전을 위한 조치라는 설명과 달리 경기 흐름, 상업성, 주류 소비 논란이 동시에 커지고 있다.
26일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국제축구연맹(FIFA)이 북미 여름 더위 속 선수 보호를 이유로 운영 중인 수분 보충 시간은 이번 월드컵에서 가장 논쟁적인 장면 중 하나가 됐다. 이 휴식은 전·후반 중간에 각각 3분씩 주어진다.
이 제도는 전 세계에서 상업적 시간 벌기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후원사에 맞춘 장치라는 지적과 함께 경기 흐름을 끊고 축구의 정신을 훼손한다는 비난도 나온다. FIFA는 선수들이 90분 동안 더위 속에서 뛰는 만큼 필요한 안전 조치라고 강조한다. 다만 이번 대회 16개 경기장 가운데 5곳은 지붕이 있거나 완전히 실내에 가까운 구조라는 점에서 논란은 이어지고 있다.
현장에서 이 시간은 관중들의 빠른 맥주 구매 시간으로 작동하고 있다. 미국과 호주의 경기가 열린 시애틀에서 미국 응원단의 대니얼 보너는 이를 “정확히 그렇게 봤다”고 말했다. 그는 축구 팬으로서는 이 제도를 싫어한다고도 했다. 뉴저지 출신인 보너는 앞서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미국의 첫 경기도 관람했으며, 시애틀 경기에서는 이 휴식을 맥주를 다시 사는 기회로 받아들이게 됐다고 설명했다.
시애틀 경기에서 호주 골대 뒤쪽 중앙홀의 ‘시티사이드’ 매점은 킥오프 직후 줄이 없었다. 한 직원은 손님이 없어 휴대전화를 보고 있었다. 그러나 경기 시작 23분 56초가 지나 심판이 수분 보충 시간을 알리는 휘슬을 불자 관중들이 음료를 사기 위해 몰려들었다. 관중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매점까지 가서 결제하고 좌석으로 돌아오기까지 180초였다.
미국과 호주의 경기장에서 한 미국 팬은 "수분 보충 시간이 말도 안 되는 현금 장사"라고 비판하면서도 "맥주를 살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전반 중간에 빠져나갈 수 있는 경험이 새롭다고 했다. 보너도 원래 더 많이 사두고 싶었지만 한 사람당 두 잔으로 제한돼 있었다고 말했다.
이번 대회는 카타르 월드컵과 뚜렷하게 대비된다. 카타르는 대회 개막 직전 경기장 내 맥주 판매를 갑작스럽게 제한했다. 반면 이번 대회는 미국프로풋볼(NFL) 경기장들이 중심이어서 맥주, 칵테일, 하드셀처 판매에 익숙한 구조다. 유럽의 많은 경기장과 달리 관중석을 돌아다니는 판매원들이 캔맥주가 든 아이스박스를 들고 다니는 점도 소비를 키우는 요인이다.
축구 경기 중 주류를 즐기기는 전통적으로 쉽지 않았다. 잉글랜드에서는 훌리건 문제를 막기 위한 규정 탓에 킥오프 15분 전부터 경기장이 보이는 곳에서는 술을 마실 수 없다. 이는 팬들이 술을 마시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 경기 전 맥주를 빨리 마시고 하프타임에 복도로 몰려나간다는 의미에 가깝다. 이번 대회에서는 수분 보충 시간이 추가되면서 관중들이 경기를 놓치지 않고 다시 술을 살 수 있는 창구가 늘었다.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아르헨티나와 오스트리아 경기에서 리오넬 메시의 활약을 지켜본 아르헨티나 팬 레이 페르난데스는 이 제도를 좋아한다고 말했다. 그는 “매우 미국적”이라고 평가했다. 로스앤젤레스에서는 벨기에와 이란 경기 관중들이 맥주를 즐기는 모습도 포착됐다.
주류 소비는 경기장 밖 도시 경제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스코틀랜드 팬들인 ‘타탄 아미’는 보스턴의 술 공급을 거의 동낼 정도로 마신 것으로 전해졌다. 댈러스의 한 펍은 크로아티아와 경기를 앞둔 잉글랜드 팬들에게 맥주 5000잔을 팔았다고 밝혔다. 필라델피아시는 월드컵 방문객을 맞기 위해 술집 영업시간을 통상 오전 2시에서 오전 4시까지로 임시 연장했다.
이런 흐름은 이번 월드컵을 역대 가장 술 소비가 많은 대회로 만들 수 있다는 평가로 이어진다. 수분 보충 시간 때문에 관중들은 다음 맥주까지 최대 22.5분 이상 기다리지 않아도 되는 셈이다. 페르난데스는 축구 팬들이 결국 이 제도에 적응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모든 관중이 수분 보충 시간을 맥주 구매에 쓰는 것은 아니다. 시애틀 루멘필드에서 미국의 두 번째 월드컵 경기를 본 노스다코타주 파고 출신 벌리 넬슨은 이 시간을 원래 목적에 가깝게 활용했다. 이번 대회 네 번째 경기를 관람하던 그는 햇볕 아래에서 선수들처럼 더위를 느꼈고, 휴식 시간 덕분에 화장실에 다녀오고 딸에게 줄 생수도 살 수 있었다고 말했다.
넬슨은 "평소라면 경기 장면을 놓칠까 봐 그런 행동을 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90분이 넘는 경기에서 화장실에 갔다가 유일한 골을 놓치는 일이 얼마나 답답한지 알 수 있다고 말했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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