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어(手語)는 직관적인 언어라 말이나 글자보다 불교의 가르침을 더 생생하게 전달할 때가 많아요.”
9일 서울 종로구 조계사에서 만난 ‘불교 수어 통역사’ 박미애 씨(45)는 “수어는 눈에 보이는 대로 이해할 수 있게 만들어졌기에 말이나 글자처럼 추상적이거나 모호하게 표현하지 않는다”라며 “말로 들을 때보다 수어 통역을 하는 동안 종교적 가르침이 더 피부로 느껴질 때가 많다”라고 말했다.
현재 여러 방송 뉴스에서도 수어 통역을 맡고 있는 박 씨는 10여 년 전 불교와 인연이 닿은 뒤 서울 조계사 장애인 전법팀 ‘원심회’에서 농인(聾人)들을 위한 불교 수어 통역사로 활동하고 있다. 1988년 설립된 원심회(회장 박준식)는 청각 장애가 있는 농인 신도들을 위해 불교 수어 제작, 교육 및 법회 수어 통역 등을 하는 포교 및 봉사 단체다.
사실 누구나 흔히 아는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도 불교를 모르면 정확히 무슨 뜻인지 언뜻 이해하기 어렵다. 하지만 수어로는 불교를 몰라도 의미를 알 수 있다. ‘아미타불’을 형상화해 두 손을 올리며 존경의 의미를 담은 뒤 ‘귀의한다, 의지한다’를 붙이기 때문이다. 아미타불, 약사여래불, 미륵불 등 다양한 부처님은 손 모습이 다 다르기에 이런 특징을 수어로 표현한다.
원심회는 전국 사찰 중 유일하게 매주 일요일 조계사 인근 조계사교육문화센터 내 법당에서 농인들을 위한 법회를 열고 있다. 매주 20~30명이 참석하는데, 박 씨를 포함한 전문 수어 통역사 7명이 이들을 돕는다. 등록 회원은 약 50여명 정도. 박 씨는 “원심회에서 많이 노력하긴 했지만, 아직도 농인들이 종교 활동을 하는 데는 사회적 인식과 시설 부족 등 어려움이 많다”라고 했다.
‘꼭 설법을 듣지 않아도 책으로 보면 되지 않냐’는 인식도 그중 하나다. 박 씨는 “선천적 농인에게 제1 언어는 한국어가 아니라 수어”라며 “공부도 강의를 들어야 이해가 쉬운 것처럼 불경만 보고 종교 활동을 하기는 쉽지 않다”라고 말했다.박 씨는 “천주교나 개신교에서 농인 신부나 농인 목사가 배출된 것처럼 불교도 농인 스님이 나올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으면 좋겠다”라고 했다. 과거 한 원심회 농인 회원이 스님이 되려 4, 5년간 행자 생활까지 했지만 결국 포기했다고 한다. 수어로 설명을 듣지 못하고 오직 책으로만 배워야 하니 그 과정이 너무 힘들었기 때문이다.“불경과 각종 법회를 수어로 번역한 영상이 더 많이 보급되면, 농인 신도도 늘고 자연스럽게 농인 스님도 나올 수 있을 겁니다. 소외계층에 대한 종교의 관심은 배려가 아닌 ‘책무’라고 생각해요.”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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