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어는 직관적인 언어…말보다 더 생생하게 불경 전달할 때가 많아”

17 hours ago 2

수어로 ‘부처님’을 표현하고 있는 박미애 씨. 그는 “수어는 서로 눈빛과 표정, 손짓까지 마주 보면서 대화하기에 말보다 더 진정한 소통이 가능한 언어”라며 “비록 손으로 표현하지만, 수어를 ‘마음의 언어’라고 하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수어로 ‘부처님’을 표현하고 있는 박미애 씨. 그는 “수어는 서로 눈빛과 표정, 손짓까지 마주 보면서 대화하기에 말보다 더 진정한 소통이 가능한 언어”라며 “비록 손으로 표현하지만, 수어를 ‘마음의 언어’라고 하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수어(手語)는 직관적인 언어라 말이나 글자보다 불교의 가르침을 더 생생하게 전달할 때가 많아요.”

9일 서울 종로구 조계사에서 만난 ‘불교 수어 통역사’ 박미애 씨(45)는 “수어는 눈에 보이는 대로 이해할 수 있게 만들어졌기에 말이나 글자처럼 추상적이거나 모호하게 표현하지 않는다”라며 “말로 들을 때보다 수어 통역을 하는 동안 종교적 가르침이 더 피부로 느껴질 때가 많다”라고 말했다.

현재 여러 방송 뉴스에서도 수어 통역을 맡고 있는 박 씨는 10여 년 전 불교와 인연이 닿은 뒤 서울 조계사 장애인 전법팀 ‘원심회’에서 농인(聾人)들을 위한 불교 수어 통역사로 활동하고 있다. 1988년 설립된 원심회(회장 박준식)는 청각 장애가 있는 농인 신도들을 위해 불교 수어 제작, 교육 및 법회 수어 통역 등을 하는 포교 및 봉사 단체다.

법회에서 수어로 통역하고 있는 박미애 씨. 그는 “수어는 서로 눈빛과 표정, 손짓까지 마주 보면서 대화하기에 말보다 더 진정한 소통이 가능한 언어”라며 “비록 손으로 표현하지만, 수어를 ‘마음의 언어’라고 하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라고 말했다.  박미애 씨 제공

법회에서 수어로 통역하고 있는 박미애 씨. 그는 “수어는 서로 눈빛과 표정, 손짓까지 마주 보면서 대화하기에 말보다 더 진정한 소통이 가능한 언어”라며 “비록 손으로 표현하지만, 수어를 ‘마음의 언어’라고 하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라고 말했다.  박미애 씨 제공
“반야심경에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색깔 소리 향기 맛 감촉 법)에 갇히지 말아야 한다’라는 내용이 있어요. 불교를 안 지 얼마 안 됐을 때라 갇히지 말라는 게 뭔지, 그러려면 어떻게 하라는 건지 저도 정확한 의미를 잘 몰랐어요. 그런데 수어 통역을 하면서 느낌이 오더라고요. 한 손으로 모든 감각에 끌려가는 모습을 표현하면서, 다른 손으로 만든 가위로 그걸 단호하게 끊어내는 거죠.”

사실 누구나 흔히 아는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도 불교를 모르면 정확히 무슨 뜻인지 언뜻 이해하기 어렵다. 하지만 수어로는 불교를 몰라도 의미를 알 수 있다. ‘아미타불’을 형상화해 두 손을 올리며 존경의 의미를 담은 뒤 ‘귀의한다, 의지한다’를 붙이기 때문이다. 아미타불, 약사여래불, 미륵불 등 다양한 부처님은 손 모습이 다 다르기에 이런 특징을 수어로 표현한다.

원심회는 전국 사찰 중 유일하게 매주 일요일 조계사 인근 조계사교육문화센터 내 법당에서 농인들을 위한 법회를 열고 있다. 매주 20~30명이 참석하는데, 박 씨를 포함한 전문 수어 통역사 7명이 이들을 돕는다. 등록 회원은 약 50여명 정도. 박 씨는 “원심회에서 많이 노력하긴 했지만, 아직도 농인들이 종교 활동을 하는 데는 사회적 인식과 시설 부족 등 어려움이 많다”라고 했다.

‘꼭 설법을 듣지 않아도 책으로 보면 되지 않냐’는 인식도 그중 하나다. 박 씨는 “선천적 농인에게 제1 언어는 한국어가 아니라 수어”라며 “공부도 강의를 들어야 이해가 쉬운 것처럼 불경만 보고 종교 활동을 하기는 쉽지 않다”라고 말했다.박 씨는 “천주교나 개신교에서 농인 신부나 농인 목사가 배출된 것처럼 불교도 농인 스님이 나올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으면 좋겠다”라고 했다. 과거 한 원심회 농인 회원이 스님이 되려 4, 5년간 행자 생활까지 했지만 결국 포기했다고 한다. 수어로 설명을 듣지 못하고 오직 책으로만 배워야 하니 그 과정이 너무 힘들었기 때문이다.

“불경과 각종 법회를 수어로 번역한 영상이 더 많이 보급되면, 농인 신도도 늘고 자연스럽게 농인 스님도 나올 수 있을 겁니다. 소외계층에 대한 종교의 관심은 배려가 아닌 ‘책무’라고 생각해요.”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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