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안보’가 세상을 바꾸고 있다. 단순한 정책 트렌드의 변화가 아니라 전후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지탱해 온 기본 원리인 ‘시장 효율성과 비교우위’가 흔들리고 있다. 미·중 전략 경쟁, 에너지 쟁탈전, 기술 패권 다툼은 경제와 안보의 분리를 사실상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다. 삼성전자는 이제 단순한 수출 기업을 넘어, 한국의 기술 주권과 공급망 안정을 떠받치는 경제 안보의 핵심 주체가 됐다.
경제와 안보가 분리돼 있던 자유무역 시대에는 다국적 기업이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공급망을 설계했다. 국가는 이를 뒷받침하는 제도적 인프라를 제공하는 역할에 머물렀다. 이에 비해 지금의 경제 안보 시대에는 국가가 공급망 안정성, 기술 주권, 군사적 리스크를 고려해 경제 활동에 더 직접적으로 개입하고 있다. 이런 변화는 국가-기업-시장 간 역할을 새롭게 설계해야 한다는 과제를 우리에게 던지고 있다.
먼저 경제 안보 시대에 정부 역할은 증대될 수밖에 없다. 글로벌 시장은 전통적인 기업 간 경쟁에서 기업·정부 연합군의 대결 구도로 변모하고 있다. 여기에 개별 국가의 기업·정부 연합군은 가치 또는 이익을 공유하는 국가와 동맹군을 형성해 경쟁 동맹군과 대결한다. 이런 상황에서 개별 기업의 능력만으로 승자가 되기 어렵고, 기업의 경쟁력과 정부의 외교력 간 상호 보완적 협력이 중요해진다. 반도체, 방위산업, 원자력발전, 조선 등이 대표적이다.
이 분야에서 정부 역할은 전통적인 산업 경쟁력 확대 차원을 넘어 국가 안보 차원의 지원으로 확대돼야 한다. 첨단산업에 적합한 인력자원의 공급 및 활용, 원천 기술 연구개발 투자 확대, 다양한 재원 조달 및 투자 인센티브 확대 등에서 타국을 뛰어넘는 파격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글로벌 시장에서 우리 기업에 유리한 규범 제정을 위한 외교적 노력도 강화해야 한다.
경제 안보 시대라고 해서 모든 분야에서 정부 역할이나 개입 강도가 같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금융, 부동산 같은 분야에서도 정부는 중요하지만, 정부 개입의 방향은 시장 경쟁을 통한 효율성 제고가 주목적이 돼야 한다. 가장 유혹이 큰 가격 변수에 대한 직접 개입은 큰 후유증을 낳는다.
금리나 금리 결정 구조에 대한 직접 개입은 금융시스템의 위험을 높이고 비효율적인 자금 배분을 유발할 수밖에 없다. 각종 제도적 압박을 통한 인위적인 주택 가격 억제 역시 부동산 가격과 공급을 불안하게 하고 주거 약자의 고통을 가중할 우려가 크다. 정부가 생각하는 정의로운 가격은 시장이 아니라 정부 재정 정책의 몫이다. 정부의 목적을 위해 책임 없는 일을 강제하는 경제적 직권 남용은 최소화돼야 한다.
지금은 경제 안보 시대에 국가와 시장, 효율성과 안정성, 성장과 분배 간 새로운 균형점을 찾는 노력이 필요한 때다. 이 과정에서 정부가 명심해야 할 것은 정부가 하고 싶은 일과 할 수 있는 일을 구분하는 것이다. 역사적 경험에 의하면 정부는 대개 하고 싶은 일이 많으나, 할 수 있는 일은 그보다 훨씬 제한적이었다. 더욱이 ‘정부만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자기 확신은 민간과의 협력 가능성을 스스로 차단해 실제로 할 수 있는 것조차 놓치는 결과를 낳는다.
경제 안보 시대의 핵심은 정부가 더 많이 개입하는 것이 아니다. 정부가 개입해야 할 곳에 정확히 개입하고, 기업과 시장이 움직여야 할 곳에는 공간을 충분히 열어줘야 한다. 정부가 하고 싶은 일보다 잘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할 때, 새 시대에 필요한 시장과 정부의 균형점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6 day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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