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9일 프랑스 파리 롤랑가로스. 프랑스오픈 결승전을 마친 얀니크 신네르(세계 1위·이탈리아)는 텅 빈 눈으로 벤치에 앉아 있었다. 1, 2세트를 일찌감치 따냈다가 세 세트를 내리 잃고 다 잡은 그랜드슬램 우승컵을 놓친 직후였다. 상대인 카를로스 알카라스(2위·스페인)에게 5경기 내리 패배했다는 아픈 꼬리표도 붙었다.
5주 후 신네르는 완벽하게 설욕했다. 14일(한국시간) 막을 내린 시즌 세 번째 메이저 테니스대회 윔블던에서 숙적 알카라스를 꺾고 자신의 네 번째 메이저 우승컵과 우승상금 300만파운드(약 55억8000만원)를 품에 안았다.
이날 영국 런던 올잉글랜드클럽에서 열린 대회 마지막 날 남자 단식 결승에서 신네르는 알카라스에게 3-1(4-6 6-4 6-4 6-4) 역전승을 거뒀다. 이탈리아 선수 최초의 윔블던 단식 우승이자 올해 신네르가 호주오픈에 이어 두 번째로 거둔 메이저 우승이다.
최근 남자 테니스에서는 신네르와 알카라스 ‘빅2’ 체제가 완전히 자리잡았다. 지난해 호주오픈부터 지난달 프랑스오픈까지 6개 메이저대회 우승을신네르와 알카라스가 3개씩 나눠 가졌다.
이번 대회에서 신네르는 운과 실력 모두를 증명했다. 그는 16강에서 가장 큰 위기를 맞았다. 그리고르 디미트로프(21위·불가리아)를 상대로 1, 2세트를 연달아 내주며 벼랑 끝에 몰렸다. 3세트에서 2-2로 맞선 상황, 디미트로프가 가슴 통증을 호소하다가 기권했다. 행운의 기권승을 거둔 신네르는 4강에서 ‘전설’ 노바크 조코비치를 만나 완벽한 플레이로 3-0 압승을 거뒀다.
결승에서는 알카라스의 승리를 예상하는 시각이 많았다. 알카라스는 이번이 3연패 도전이었을 정도로 잔디코트의 신흥 강자로 자리잡았다. 상대 전적에서도 7승4패로 알카라스가 앞섰고, 직전 대회인 프랑스오픈 결승의 여운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이날 경기에서 신네르는 프랑스오픈 패배의 기억을 완전히 벗어난 모습이었다. “이곳은 새로운 토너먼트이고 새로운 그랜드슬램이자 새로운 코트다. 내 실력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았다”는 그의 말은 허언이 아니었다. 첫 세트를 내줬지만 2, 3세트를 내리 따내며 승기를 잡았다. 코트 구석구석을 날카롭게 공략하는 알카라스의 공을 긴 팔다리로 슬라이드 하며 막아내는 아름다운 플레이를 선보였다.
4세트 게임 스코어 4-3으로 앞선 자신의 서브 게임 때 15-40으로 밀리며 위기에 놓였지만 연속 4득점으로 5-3까지 달아났다. 신네르는 게임스코어 5-4에서 맞은 자신의 서브 게임 때 40-15에서 강력한 서브로 포인트를 따내며 3시간4분 만에 우승을 확정했다.
우승 뒤 신네르는 “파리에서 정말 힘든 패배를 당했다. 하지만 중요한 경기에서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은 이기고 지는 것보다는 무엇을 잘못했는지 이해하는 것”이라고 돌아봤다. 이어 “나는 패배를 받아들이려고 노력했고 끊임없이 훈련했다. 지금 내가 이 트로피를 들고 있는 이유”라며 환하게 웃었다.
이날 신네르의 우승으로 ‘빅2’는 모두 ‘커리어 그랜드슬램’에 단 한 대회만 남겨뒀다. 신네르는 올해 준우승이 최고 성적인 프랑스오픈, 알카라스는 호주오픈만 우승하면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완성한다.
조수영 기자 deline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