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리머/모래 지음/372쪽·1만7500원·고블
주인공 여정, 필립, 기철, 명우는 학창 시절 친구들이다. 기철은 주식에 자기 돈은 물론이고 주변 사람들 돈까지 털어 넣었다가 쫄딱 망했다. 여정은 그런 기철을 좋아한다. 명우는 돈은 많지만 폭력적인 아버지에게 시달린다. 그리고 필립. 그의 할머니는 사이비 종교에 빠져 중국까지 가서 집안 재산을 모두 날렸다. 그 할머니가 남긴 수첩에는 기이한 힘이 있다. 수첩을 펼쳐보는 사람에게 초현실적인 능력을 주면서 동시에 사람을 홀린다. 그리고 이 수첩의 비밀을 알고 그 행방을 쫓는 사이비 종교 관계자들이 있다.
그런데 ‘드리머’의 요점은 수첩의 비밀을 밝히거나 사이비 종교의 실체를 폭로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느끼기에 이 작품의 목적은 인간이 현실과 환상을 구별할 수 없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다. 자기 삶의 어디까지가 실체이고 어디서부터가 환상인지 딱 잘라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명우는 우연한 기회에 수첩의 힘을 알고 기철에게 필립의 수첩을 훔쳐 오면 큰돈을 주겠다고 약속한다. 기철은 수첩을 훔치려다 필립에게 큰 부상을 입힌다. 필립은 학창 시절 집단 괴롭힘을 당하는 여정을 돕기 위해 수첩을 빌려준 적이 있다. 그러니까 주인공 네 명은 모두 수첩의 기이한 힘에 어떤 식으로든 노출된 것이다.
그 이후에 이들이 살아가는 삶은 환각의 연장선인가 아니면 현실인가? 명우는 갑자기 게임 회사 CEO(최고경영자)로 성공하고, 기철은 난데없이 노숙인 쉼터에서 봉사활동을 하며, 여정은 슈퍼모델로 성공하고, 필립은 결혼해서 딸을 낳고 행복하고 가정적인 삶을 산다. 이 삶은 이들의 열망이 만들어낸 물거품인가 아니면 수첩의 힘으로 바뀐 진짜 현실인가? 소설의 3부에서 성공 가도에 들어선 듯 보이던 주인공 네 명의 삶이 일그러지는 모습은 즐거운 꿈이 깨기 시작할 무렵, 환각과 열망의 모래성이 무너지고 현실이 의식 안으로 스며들 때의 느낌과 닮아 있다.여기다 각 챕터 제목도 알쏭달쏭한 문구들로 이뤄져 작품 전체가 문제의 수첩 같은 불가사의한 인상을 준다. 챕터 제목 일부는 작가가 ‘신의 역사’ 등 다른 책에서 인용했음을 밝히지만, 출처가 불분명하고 아마도 작품 속 수첩에 적혀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문장들도 있다. 챕터 제목을 연결하면 대략적으로 기승전결을 유추할 수 있는 서사가 나오지만 완벽하게 말이 되는 문장들은 아니다.
‘드리머’는 소설을 읽는 것만으로 환각 속을 전력 질주한 듯한 기묘한 경험을 안겨주는 독특한 작품이다. 전부 보여주지 않고 읽는 사람이 스스로 자기 상상력을 자극하게 유도하는 이런 이야기가 있기 때문에 영상의 시대에도 여전히 소설이 의미를 가지는 것이다.
정보라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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