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삼체-듄 잇는 ‘휴고상’의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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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염된 잔/로버트 잭슨 베넷 지음·이나경 옮김/520쪽·2만2000원·황금가지


생명공학이 고도로 발달한 카눔 제국에서 어느 날 한 남성이 몸속에서 나무가 폭발한 듯 기괴하게 숨지는 사건이 발생한다. 수사에 나선 괴짜 천재 수사관과 초짜 조수. 사건을 추적할수록 단순한 살인 사건이 아니라 국가 전체를 뒤흔들 수 있는 음모와 권력의 비밀이 드러나는데….

읽을수록 ‘셜록 홈스’+‘진격의 거인’+‘퍼시픽 림’+‘서던 리치’가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작가 스스로 여러 작품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말했지만, 그럼에도 ‘짜깁기’가 아닌 새로운 작품으로 느껴지는 건 ‘인간의 존재 의미’라는 철학적 주제를 판타지와 추리란 두 장르와 잘 결합한 작가의 능력 때문인 것 같다.

단순한 범인 찾기나 영웅 서사 소설이라고 생각하면 오산. 생체 개조 기술이 고도로 발달한 사회, 거대 괴수의 습격, 생물을 변형시키는 다양한 풀과 균류, 집에서도 눈을 가리고 생활하는 괴짜 탐정 등 독자의 눈길을 끄는 요소가 많다.

그중 진짜 매력은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드러나는 다양한 인간의 모습에 있다. 현실에 순응해 개인의 이득을 추구하고, 다수를 위한 소수의 희생을 강요하고, 반대로 공공의 이익을 위해 희생하면서도 끝없이 자신의 행위가 무슨 의미가 있는지 되묻는 등장인물을 통해 저자는 ‘문명을 유지하기 위해 우리는 어디까지 인간성을 희생할 수 있는가’란 물음을 던진다. 이 점이 흔한 삼류 판타지 소설과의 차이가 아닐까. ‘삼체’ ‘듄’도 수상했던, 세계적인 SF·판타지 문학상 가운데 가장 권위 있는 ‘휴고상’을 괜히 받지는 않았을 테니 말이다.

저자는 문명은 힘만으로 유지되지 않으며, 한 사회의 진짜 수준을 결정하는 건 타인의 생명과 존엄을 어떻게 대하는가에 있다고 말한다. 카눔 제국을 보며 안으로는 사회적 약자들을 내쫓고 격리하고, 밖으로는 멋대로 다른 나라를 침략하면서도 정의로운 척하는 어떤 나라가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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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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