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동 연쇄살인범, 10년 전 사망한 빌딩 관리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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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6월 6일 1차 범행 후 유기된 피해자 시신의 모습./사진=서울경찰청

2005년 6월 6일 1차 범행 후 유기된 피해자 시신의 모습./사진=서울경찰청

대표적인 장기 미제였던 ‘신정동 연쇄살인’ 사건의 피의자를 첫 사건 발생 20년 만에 경찰이 특정했다. 이 사건을 재수사하던 경찰은 DNA 분석 결과 인근 빌딩 관리인이던 A씨를 피의자로 지목했다. 하지만 A씨는 이미 10년 전 사망해 형사 처벌이 어렵게 됐다.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단 형사기동대는 2005년 6월과 11월 연달아 발생한 부녀자 살인 사건에 대해 장기 미제 전담팀을 중심으로 재수사를 벌인 결과 사망한 용의자 장모씨를 최종 범인으로 특정했다고 21일 밝혔다.

20년전 같은 범행 수법으로 20대·40대 여성 살해

장씨는 휴일이던 2005년 6월 6일 신정동 Y빌딩 내 병원을 찾았다가 문이 닫혀 있어 귀가 중이던 여성 B씨에게 '출구를 안내하겠다'며 지하 1층 창고로 끌고가 금품을 갈취하고 성폭행한 뒤 손으로 목을 졸라 살해한 혐의를 받는다. 이어 시신에 쌀 포대 두 개를 씌우고 노끈으로 묶은 뒤 본인 소유 승용차에 싣고 같은 날 밤 양천구 인근 초교 노상 주차장에 유기한 혐의도 받는다.

같은 해 11월 20일에는 40대 여성 C씨를 같은 건물 지하 창고로 끌고 가 좌측 늑골이 골절될 정도의 폭행과 성폭행을 저지른 뒤 끈으로 목을 졸라 살해한 혐의를 받는다. 이어 시신을 비닐과 돗자리로 감싸 끈으로 결박한 뒤 다음날 새벽 신정동 주택가 인근 주차장에 유기한 혐의를 받는다.

장씨는 2차 사건 발생 3개월 후인 2006년 2월 동일 장소에서 유사한 수법으로 성범죄를 시도하다가 현행범으로 체포돼 2009년까지 복역했다.

2005년 연쇄살인 발생 수사 때와 2006년 미수 사건 때는 DNA 기법이 발달하지 못해 두 사건 간의 연관성을 추정하기 어려웠다.

범인과 용의자 DNA 대조에 활용된 파라핀 블록./사진=서울경찰청

범인과 용의자 DNA 대조에 활용된 파라핀 블록./사진=서울경찰청

DNA 기법 발달로...미제사건 재수사 탄력

사건 초기 수사를 맡은 서울양천경찰서는 38명으로 구성된 전담팀을 꾸려 대대적인 수사에 나섰지만 피의자 특정에는 실패해 2013년 6월 미제사건으로 관리 전환된 바 있다.

이후 2016년 서울경찰청 장기미제 전담팀이 사건을 넘겨받아 사건 기록·증거물을 인수한 후 신정역 일대 유사 사건과 방송제보 등 첩보·제보를 검토하며 재분석에 착수했다.

또한 2016년과 2020년 두 차례에 걸쳐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현장 증거물 재감정을 의뢰했다. 2016년 처음으로 피해자 속옷에서 유전자가 검출됐지만 한 명으로 특정할 수 없는 '혼합 DNA'였다. 수사팀은 2020년 유전자 분석기법이 발전됨에 따라 두 살인 사건에서 동일한 유전자형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파라핀 블록과, 슬라이드 등을 활용한 DNA 검출 기술이 사용됐다.

서울경찰청 미제사건 전담 수사팀이 당시 범행 장소인 Y빌딩 지하 1층을 재수사하는 모습./사진=서울경찰청

서울경찰청 미제사건 전담 수사팀이 당시 범행 장소인 Y빌딩 지하 1층을 재수사하는 모습./사진=서울경찰청

이렇게 두 사건이 동일범의 소행임을 확인한 경찰은 범인 특정을 위해 방대한 대조 작업을 벌였다. 경찰은 현장 주변 주민·관계자 등을 포함해 총 23만1897명을 '수사대상자'로 분류했다. 이 과정에서는 당시 시신에 모래가 섞여 있었던 점에서 착안해 2005년 당시 서남권 공사 현장 관계자나 신정동 전·출입자 등을 추려냈다.

이 가운데 범행수법·범행시간·직업·거주형태등 우선순위가 높은 1514명으로 범위를 좁혀 전국적으로 DNA 채취·대조를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는 중국 국가 데이터베이스와 대조하는 등 국제 공조 수사가 이어지기도했다.

범인 이미 사망했지만…"유가족 억울함 풀어주려"

경찰은 진실 규명을 위해 사망자까지 대조 범위를 넓혔다. 관련성이 있는 사망자 56명도 후보군에 포함해 분석한 결과 사건 당시 신정동 Y빌딩 관리인으로 근무했고 동일수법 전과를 가진 장씨가 특정됐다.

장씨는 2015년 7월 이미 암으로 사망한 상태였다. 장씨의 유골 및 생전 의료기록 확보는 어려웠지만 부천·광명·시흥 등 지역 병의원과 검체 검사 업체 40개소를 탐문 결과 경기 지역 병원에서 그의 세포조직이 보관되고 있었던 사실이 확인돼 감정에 활용됐다.

2005년 당시 범행에 사용됐던 쌀 포대, 비닐봉지, 노끈 등 증거물./사진=서울경찰청

2005년 당시 범행에 사용됐던 쌀 포대, 비닐봉지, 노끈 등 증거물./사진=서울경찰청

총 1570명의 유전자 대조 끝에 지난 7월 9일 연쇄살인사건 증거물과 장씨의 DNA가 일치한다는 답변을 받았다. 경찰은 장씨를 신정동 연쇄살인 사건 범인으로 특정하고 3차 미수 사건 피해자와 장씨와 함께 교도소에 있던 재소자, 사건 관련자 40명 등을 조사하는 등 다각적 수사로 범행 경위 등을 확인했다.

경찰에 따르면 장씨는 범행 당시 60대 초반으로 180cm의 키와 단단한 체격을 가졌다. 군 복무 시절 수사 부서에 있어 노끈 매듭 등을 짓는 방법을 배웠고 교도소 노역에서도 이를 활용했다는 재소자 진술도 확보했다.

신재문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단 형사기동대 4팀장은 "이번 사건은 유전자 감식기술의 발전과 장기미제 전담팀의 집요한 수사가 이룬 성과"라며 "범인의 생사 여부와 관계없이 살인범은 끝까지 추적한다는 원칙을 지켜 나가겠다"고 밝혔다.

한편 신정동 연쇄살인 사건은 한 방송을 통해 이른바 '엽기토끼' 사건으로 알려졌지만, 경찰은 2026년 5월 당시 전씨가 교도소에 수감돼 있어 납치 미수 사건(엽기토끼)과는 관련 없다고 설명했다.

김유진 기자 magiclam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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