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하는지도 몰랐지만 그 존재를 알게 되면 하나의 기준점이 되는 것들이 있다. 두꺼운 벽돌 책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품은, 그래서 그곳에 들어가면 내게 말을 거는 콘크리트 덩어리들의 배열, 그 형태와 배열이 읽어주는 세계, 그동안 알고 지내온 것과 완전히 다른 방향에서.
내게는 브루탈리즘 건축이 그랬다. 평범한 한국식 붉은 벽돌의 조적조 건물에서 자라난 나는 대학에서 그런 건축의 이미지를 보기 전까지 그것이 존재한다는 것조차 몰랐다. 하지만 그 존재를 안 이후에는 언제나 그런 공간에 들어가 걷고, 앉고, 머무르고자 하는 욕구가 항상 마음 한구석에 존재한다.
그런 공간은 말을 건다. 물론 인간의 언어로 말하지 않는다. 이 언어가 기의, 기표의 언어가 될 리는 없겠지만 분명 느낄 수 있다. 그래서 브루탈리즘이 무엇인지 정의를 내려보라고 한다면 한 번에 말로 설명하는 것은 쉽지 않다. 쉬운 예는 아무래도 눈에 띄는 쪽이다. 영국 런던 센터포인트나 미국 샌디에이고 가이젤도서관, 외장재에 숨겨져 있어야 할 구조가 겉으로 드러난 건물들, 그런 건물들은 말 그대로 야수 같다.
하지만 들판을 뛰는 야수라기보다 상상 속 야수다. 수작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반전이 인상적인 영화 ‘팬도럼’(2009)의 그 괴물들이 떠오른다. 하얗게 퇴화한 피부를 뚫고 나오려는 척추뼈. 런던 센터포인트를 실제로 봤을 때 그 외골격 생물 같은 모습에 압도당했다.
정교하게 짜인 단단한 외피. 그것이 1960년대에 지어졌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그런데 또 멀리서 바라보면 그 주변에 남아있는 고전 양식 건물들과 실루엣이 자연스럽게 융화된다. 이렇게 겉으로 드러난 구조, 콘크리트 구조가 드러난 그것이 브루탈리즘의 핵심인 걸까.
내가 생각하기에 브루탈리즘 건축이 드러내는 언어는 명료함이어야 한다. 우주는 무질서 상태로 흐트러지려고 하는 법칙이 지배하지만, 정신으로 그 법칙에 저항하며 불멸의 응집력을 보여줄 수 있다고 믿는 것이 진정한 창조성이다.
명료함은 달콤한 사탕이 아니다. 때때로 그 명료함은 전체를 온전한 호흡으로 받아들여야만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어떤 영화나 소설이 요약만으로는 정수를 느낄 수 없는 것처럼, 또 교향곡이 가진 시간 선상에서의 대비, 단순한 화성의 대위가 아니라 각 악장을 흐르는 정서와 음악적 공간이 그리는 대비를 해설만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것처럼, 이런 명료함과 대비는 전체를 받아들여야만 느낄 수 있다.
명료함의 언어로 만들어진 공간은 그 안에 담고 있는 삶과 활동의 크기, 그 내부에서 일어나는 움직임 형태가 외부로 드러난다. 그 덩어리들의 중첩과 배열로 아름다움을 형성하는 것이 브루탈리즘이다. 언젠가 라이언 맥긴리의 사진전을 보러 갔을 때 이런 생각을 했다. 이 사진 속 인물들이 만약 옷을 입어도 이처럼 사람들에게 어떤 느낌을 전할 수 있을까.
공간이 명료함을 지니려면 불필요한 장식은 모두 배제하고 가장 본질적인 것들만 남겨둬야 한다. 그렇기에 때때로 구조가 겉으로 드러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구조가, 혹은 뼈대가 장식으로서 돌출되는 순간, 내 생각에는 그것은 브루탈리즘이라고 할 수 없다.
진정한 브루탈리즘의 야수성은 갈무리돼 있다. 그곳에서 나온 물질의 농축으로 새로운 형태와 환경을 구성하지만 핵심만을 남김으로써 그 장소에 융화된다. 내가 생각하기엔 이것이 브루탈리즘 건축이며 또 그 거친 콘크리트에서 아름다움이 형성되도록 하는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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