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띠로 안은 아기를 커다란 외투로 감싸고 양손 가득 묵직한 장바구니를 든 아기 엄마가 보입니다. 이제 막 목을 가눌 수 있는 아기는 고개를 들어 아기새처럼 엄마의 얼굴을 쳐다봅니다. 그러나 피로에 찌든 여인의 시선은 다른 곳을 향합니다.
호주 멜버른 태생으로 영국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극사실주의 조각가 론 뮤익(Ron Mueck, 1958~)이 작품 <쇼핑하는 여인(Woman with Shopping)>(2013)에서 묘사한 광경입니다. 혹자는 이 모습이 전형적인 모성애를 그리고 있지 않다고 하지만 실제로 아기를 키워본 분들은 일일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습니다. 오히려 더 사실적이고 현실적인 모성의 모습이라는 것을요. 아마도 여인은 아기를 돌보느라 새벽잠을 설쳤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가족의 끼니를 챙기기 위해 지친 몸을 일으켜 세워, 양손 가득 먹을거리를 사서 오는 길이겠지요. 아기띠에 눌린 허리는 저릿하고, 주황색 봉지를 꼭 쥔 두 팔은 빠질 듯 무겁습니다. 매번 아기의 얼굴을 바라보지 못하는 건 단지 지쳐서가 아니라, 지나가는 차를 살피며 아기와 안전하게 집에 돌아가기 위해서일 수 있습니다. 멈춰있고 말하지 않는 조각이나 장면이 품고 있는 대사와 행간에 서린 감정이 생생하게 전달됩니다. 이처럼 뮤익의 조각에는 인생의 드라마가 담겨 있습니다.
인형을 만들던 아이
지금이야 세계적인 미술관과 갤러리, 비엔날레 등에 뮤익의 작품이 걸리지만, 그가 처음부터 전업 작가였던 건 아닙니다. 심지어 그는 미술을 전공한 사람도 아닙니다. 어린 시절의 뮤익은 인형 제작자로 장난감 제조업을 한 부모님의 영향을 받아 자연스레 꼭두각시 인형과 생물 모형을 만들었습니다. 손으로 놀이처럼 창조의 기술을 익혔던 거겠죠. 어른이 된 뮤익은 1980년대부터 1990년대 사이에 TV 방송과 어린이 영화에 사용하는 캐릭터 소품 인형을 만들고 특수 효과 제작과 관련된 일을 했습니다. 그러나 제작사의 요구에 맞춰야 하는 환경에서 자신의 상상력을 자유롭게 펼치기엔 한계를 느꼈을 터입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지쳐가는 그의 내면에서는 예술가의 영혼이 꿈틀거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인생에 새로운 문을 열어준 기회가 다가왔습니다. 바로 회화와 판화 작업을 하는 예술가인 장모를 통해서였지요.
기회의 문을 연 피노키오 조각
뮤익의 장모는 포르투갈 태생의 영국 작가 파울라 레고(Paula Rego)입니다. 레고는 1990년대부터는 디즈니 애니메이션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을 선보였는데요, 이를테면 피터팬을 주제로 한 판타지 장면이나, 이탈리아 작가 카를로 콜로디(Carlo Collodi)의 동화 『피노키오의 모험』을 재해석한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해 레고는 런던 헤이워드 갤러리(Hayward Gallery)에서 영화와 미술의 관계를 탐구한 전시 《Spellbound: Art and Film》을 준비하며 작품 속 인물을 실물 크기로 구현하려 했습니다. 2차원 평면 그림의 인물들을 생생한 3차원 인체 조형으로 탄생시키려는 시도였지요. 이러한 작업에 뮤익은 참으로 적합하고 또 준비된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는 레고의 회화를 바탕으로 <피노키오(Pinocchio)>(1996)라는 인물 조각을 제작했습니다. 레고의 회화 작품은 뮤익의 조각과 함께 전시되었고, 관객은 그림 속 장면에 더 깊이 몰입하며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이 전시를 계기로 뮤익은 순수미술계에 발을 들이며 조각가로서의 경력을 시작할 수 있는 중요한 전환점을 맞이하게 됩니다.
영국 젊은 현대미술가들의 센세이션 전시
이듬해인 1997년 가을, 약 100일간 영국 런던 왕립미술원(Royal Academy of Arts)에서 이름부터 인상적인 《센세이션 (Sensation: Young British Artists from the Saatchi Collection)》 전시가 열렸습니다. 데미언 허스트, 트레이시 에민 등 당시 30대 초반의 신진 작가들을 포함해 총 42명의 작가가 사진, 회화, 조각, 설치 작품을 선보였습니다. 모두 세계적인 광고회사 사치앤사치(Saatchi & Saatchi)의 공동 창립자이자 아트 컬렉터인 찰스 사치가 직접 비주류 미술 공간에 발품을 팔며 발견해 소장한 개인 컬렉션이었습니다.
센세이션은 충격적이거나 화제가 되어 강한 감정적 반응이나 놀라움을 일으키는 사건이나 현상을 말하는데요, 작품을 하나하나 살펴보면 전시 제목을 참 잘 지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폼알데하이드 방부액을 채운 수조에 떠 있는 상어, 자신의 피를 뽑아 얼려서 만든 자화상 조각, 동침한 남자와 낙태한 아기의 이름을 수놓은 텐트 등이 권위와 명성을 자랑하는 공간에 놓여있었으니까요. 그에 비하면 뮤익의 작품 <죽은 아버지(Dead Dad)>(1996~1997)는 점잖은 편이지만 충격을 가져온 건 매한가지였습니다. 수많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전시는 30만 명이 넘는 관람객을 동원하며 센세이션 그 자체가 되었습니다. 더불어 뮤익을 비롯한 전시 참여 작가들도 큰 관심을 받게 되었지요. 이후 뮤익은 2001년 제49회 베니스 비엔날레에 5미터에 달하는 초대형 조각 <소년(Boy)>(1999)을 출품하며 세계적인 거장의 반열에 오르게 됩니다.
하이퍼리얼리즘의 미학과 뮤익의 예술
몇초 만에 챗GPT로 지브리 스타일 이미지를 만들 수 있는 AI 시대에 뮤익은 실로 느린 속도로 손수 공들여 창작합니다. 그러나 지난 30여년 동안 단 43점의 조각을 만든 뮤익의 예술이 오히려 특별하게 다가옵니다. 이토록 긴 시간이 걸리는 건 극사실주의 조각이 장인 정신을 요하기 때문입니다.
뮤익은 미술사조에서 하이퍼리얼리즘(hyperrealism) 작가로 분류됩니다. 극사실주의를 뜻하는 하이퍼리얼리즘은 말 그대로 대상을 극도로 정밀하게 표현합니다. 하이퍼리얼리즘 미술은 대중문화의 황금기라 불리는 1960년대 미국과 서유럽에서 발현되었으며, 팝아트와 함께 대중의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 추상화처럼 무엇을 그린 것인지 바로 파악하기 어려운 작품들과 달리, 일상의 대상을 구체적으로 표현하여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그러나 하이퍼리얼리즘은 대상을 기술적으로만 재현했다는 비판에 직면했습니다. 예술보다 기술이 돋보인다는 거죠. 이에 하이퍼리얼리즘 작가들은 보이는 현실의 이면에 담긴 삶의 의미를 담아내고자 했습니다. 특히 사진의 카메라가 사실적으로 재현하는 방식과 차이를 두기 위해 일상의 대상을 변형하며 낯설게 하는 방법을 구사했습니다. 감정과 서사를 강조한 뮤익의 예술 세계도 이러한 흐름의 선상에 놓여있습니다. 그의 작품은 누군가는 감추기에 급급한 인간 존재의 연약함과 취약함을 고요하게 마주하게 하는 힘을 지닙니다.
인간 존재의 취약함과 연약함을 응시하는 고요한 시선
언젠가 사람의 숨결이 다하면 몸이 작아진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뮤익은 실리콘과 머리카락으로 숨결이 다한 아버지를 만들어 전시했습니다. 작품의 이름도 직설적입니다. <죽은 아버지>. 모든 걸 주고 자신은 쪼그라들어버린 듯 실제보다 작은 체구의 나체로 누워있는 아버지의 모습에 마음이 덜컹 내려앉습니다. 불현듯 독일의 저명한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Bertolt Brecht, 1898~1956)의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라는 시집이 떠오릅니다. 브레히트가 돌아가신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쓴 시 「나의 어머니」입니다.
“그녀가 죽었을 때, 사람들은 땅 속에 묻었다
꽃이 자라고 나비가 그 위로 날아간다 ···
체중이 가벼운 그녀는 땅을 거의 누르지도 않았다
그녀가 이처럼 가볍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통을 겪었을까!”
예술로 표현한 아버지와 어머니가 '이렇게 가볍게 되기까지 많은 고통을 겪은 자’로 느껴져 가슴이 저밉니다. 뮤익은 나이가 든 피부의 변색, 주름과 검버섯, 한올 한올 흩어진 머리카락과 땀구멍까지 정밀하게 표현합니다. 그러나 작가는 단순하게 외형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차원에 몰두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눈에 보이는 실체를 넘어 그 이면에 담긴 삶과 죽음의 의미를 성찰합니다. 생명의 잉태와 탄생부터 복잡다단한 생의 순간, 그리고 숨결이 다하는 지점까지 담아내는 뮤익의 시선은 '인생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깊은 여운을 남깁니다.
김민지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