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리아 점토판, 몽골 비석 두 언어… 인류가 다른 세계를 이해한 방식[세상만사의 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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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과 문명 이은 통번역의 역사최초의 통역관은 전쟁 포로 출신문명의 운명까지 바꿔놓은 번역언어의 장벽이 사라지는 시대

1아시리아 왕 아슈르바니팔의 도서관 터에서 발견된 점토판. 수메르어와 아카드어를 나란히 적은 어휘 목록이 담겼다. 2고대 이집트의 비석 로제타 스톤. 세 가지 언어가 새겨져 이집트 상형문자 해독과 문명 이해의 단초를 제공했다. 3인공지능(AI) 스마트폰이 실시간으로 통역하는 모습. 기계가 말을 옮겨주는 시대에도 다른 세계를 직접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사진 출처 영국박물관·삼성전자

1아시리아 왕 아슈르바니팔의 도서관 터에서 발견된 점토판. 수메르어와 아카드어를 나란히 적은 어휘 목록이 담겼다. 2고대 이집트의 비석 로제타 스톤. 세 가지 언어가 새겨져 이집트 상형문자 해독과 문명 이해의 단초를 제공했다. 3인공지능(AI) 스마트폰이 실시간으로 통역하는 모습. 기계가 말을 옮겨주는 시대에도 다른 세계를 직접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사진 출처 영국박물관·삼성전자

해외여행을 다니다 보면 인공지능(AI)과 스마트폰을 통해 기술 진보를 실감하게 된다. 메뉴판에 카메라를 비추면 번역이 되고, 현지인에게 말을 걸면 AI가 실시간으로 통역해 준다. 외국어뿐 아니라 박물관에 전시된 옛 한문 비문까지 제법 판독할 정도다. 인류는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시대로의 전환점 앞에 서 있다. 그 문을 열어주는 통역과 번역의 기원을 살펴보고, 앞으로의 변화를 짚어보자.

통역은 다양한 언어의 존재를 전제로 하므로 인간의 진화와 함께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 유전학에서는 폭스피투(FOXP2) 유전자를 인간이 다른 영장류와 달리 언어를 사용하게 된 원인 중 하나로 꼽고 있다. 이 유전자에 기반해 완전한 형태의 언어가 자리 잡은 시점은 대체로 현생인류가 등장한 20만 년 전 안팎이다.

언어의 발달은 같은 무리를 하나로 묶는 구심점인 동시에 다른 무리와는 통하지 않는 벽으로 작용했다. 인류가 아프리카를 떠나 유라시아 곳곳으로 퍼져 나가는 과정에서 다양한 집단이 조우해 기술을 교환하고 혼인 관계를 맺었다. 그 모든 교류의 과정에서 양쪽의 뜻을 전달하는 사람이 필요했다. 인류 최초의 통역관은 바로 그렇게 탄생했다. 통역은 문명의 부산물이 아니라 언어 그 자체만큼이나 오래된 인간의 조건이었다.

말을 전하는 통역의 역사는 오래됐지만, 정작 고고학적으로는 그 증거를 찾기 어렵다. 고고학은 주로 서로 다른 언어를 옮겨 적은 점토판이나 비석을 통해 그 흔적을 추적한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통역관의 기록은 기원전 23세기 이집트로 거슬러 올라간다. 파라오 페피 2세 시대에 활동한 귀족 하르쿠프의 무덤 비문에는 아프리카 내륙 원정의 기록과 함께 ‘통역관 감독’이라는 직함이 또렷이 새겨져 있다. 또 세계 최초의 도서관 중 하나로, 아시리아 왕 아슈르바니팔이 수도 니네베에 세운 도서관에도 흔적이 있다. 도서관 터에서 발굴된 점토판 가운데 수메르어와 아카드어 단어를 두 줄로 나란히 적은 어휘 목록이 발견됐다. 수십 개의 언어가 명멸했던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는 전쟁 포로를 통역관으로 길렀다는 기록이 여럿 남아 있다.

거대한 제국으로 성장한 뒤에는 왕의 칙령을 다양한 언어로 알릴 필요가 있으니 여러 언어로 쓰인 비문을 세우는 일이 빈번해졌다. 이집트 언어를 해독하는 데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한 로제타 스톤이 대표적인 예다. 1799년 나폴레옹의 이집트 원정대가 발견한 로제타 스톤에는 기원전 196년 프톨레마이오스 5세의 칙령이 이집트 신성문자와 민중문자, 그리스 문자로 나란히 새겨져 있다. 1822년 샹폴리옹은 그리스어를 실마리로 1500년 가까이 아무도 풀지 못했던 이집트 상형문자를 마침내 해독했다. 고대의 번역이 거대한 한 문명을 이해하는 단초를 제공한 것이다.

동아시아에도 로제타 스톤급의 발견이 있었다. 지금은 사라진 고튀르크(돌궐)의 문자다. 돌궐은 중국에 맞서 독자적인 문자를 사용했지만, 완전히 사라지면서 그 실체가 알려지지 않았다. 1889년 러시아 탐험가 야드린체프가 몽골 오르콘 강변에서 한 면에는 한자, 다른 면에는 튀르크 문자가 새겨진 비석을 발견했다. 8세기 초 돌궐제국이 칸(군주)이었던 퀼 테긴과 그의 형 빌게 카간을 기리며 세운 것이었다. 판독된 돌궐의 비문에는 고구려와 신라의 이름도 등장해 중국사에 가려졌던 한국과 몽골 초원 간의 관계도 엿볼 수 있다. 돌궐제국은 북으로는 초원의 유목민에게, 남으로는 당나라와 중원 세계에 자신의 위용을 알리고자 두 개의 언어로 된 비석을 세운 것이다. 다양한 언어의 사용은 국력의 상징이었다. 종교가 다양한 나라로 퍼지려면 번역이 필수다. 그러나 잘못된 번역은 분쟁의 불씨가 되기도 한다. 431년 동로마 제국의 에페소(에페수스)에서 열린 종교회의에서는 성모 마리아를 ‘신의 어머니’와 ‘그리스도의 어머니’ 중 어떻게 번역할지를 놓고 논쟁이 벌어졌다. 그리스어 단어 ‘테오토코스(Θεοτοκοs)’를 자국어의 사유 체계로 완벽히 옮기지 못해 발생한 문명사적 분열이었다. 그 과정에서 콘스탄티노플 주교 네스토리우스는 이단으로 정죄됐고, 네스토리우스파는 동방으로 이동하며 그리스도교 세계가 둘로 갈라지는 계기가 됐다.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쫓겨난 네스토리우스파는 당나라 장안에 이르러 경교(景敎)로 불리며 부활했다. 중국 경교의 흔적은 781년에 세워진 ‘대진경교유행중국비’에 잘 남아 있다. 이 비석에는 경교의 역사와 한자 1780자가 빼곡히 새겨져 있고, 그 곁에 고대 시리아 문자로 적은 사제 70여 명의 이름이 한자와 함께 새겨져 있다. 한 단어의 번역 때문에 축출된 네스토리우스가 머나먼 중국 서안에서 번역을 통해 그들의 역사를 전한 것이다.

번역이 문명의 운명을 바꾼 가장 극적인 사례는 불경의 한역(漢譯)이다. 초기 불교가 중국에 들어왔을 때는 번역이 고르지 않아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지금의 신장 쿠차(쿠처) 지역 출신인 구마라집(쿠마라지바·344∼413)은 수백 권의 불경을 한문으로 옮겼다. 그는 원문을 때로는 한자로 번역하고, 때로는 원문을 그대로 썼다. 산스크리트어의 ‘수카바티’는 같은 뜻의 한자인 ‘극락’으로 번역했고, ‘나무아미타불’은 산스크리트어의 소리를 그대로 옮긴 것이다. 이어 ‘서유기’ 삼장 법사의 모델이 된 현장 법사(602∼664)가 등장한다. 그는 직접 인도에서 경전을 가져와 보다 원전에 충실하게 번역했다. 불교 경전은 다양한 번역을 거치며 오히려 풍요로워졌다. 이렇게 번역된 경전은 이후 1500년 넘게 동아시아 불교의 토대가 됐다.

종교뿐만 아니라 역사에 기록된 수많은 교역과 전쟁이 통역과 번역이라는 기반 위에서 이뤄졌다. 결국 통역과 번역 능력을 갖춘 나라가 교역과 외교에서도 우위를 점할 수 있던 셈이다. 우리도 예외가 아니었다. 조선시대 사역원은 중국어, 몽골어, 일본어, 만주어 역관을 직접 길러냈다. 그 교재였던 ‘노걸대’와 ‘박통사’의 주요 내용은 고려 상인이 말을 끌고 중국에 건너가 물건을 팔고 돌아오는 여정을 회화문으로 엮은 일종의 실전 대화집이었다.

기계로 쉽게 통번역이 가능한 오늘날은 어떨까. 최근 구글 딥마인드가 개발한 AI ‘이타카’는 훼손돼 글자가 지워진 고대 그리스어 비문을 복원해 냈다. 실시간 통역 기능이 스마트폰에 내장되면서 수십만 년에 걸친 통역과 번역의 역사는 새로운 전환점에 서 있다. 하지만 한 단어의 번역을 놓고 종교가 갈라졌던 에페소의 일화처럼 통역과 번역의 본질은 단어를 다른 언어로 바꾸는 기술이 아니라 그 말을 사용하는 사람을 이해하는 데 있다.

2026 북중미 월드컵 개회식 무대에서 불린 공식 주제가 ‘DNA’에는 한국어 가사가 포함됐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타이틀곡 ‘골든(Golden)’으로 잘 알려진 이재가 직접 노랫말을 쓰고 부른 이 곡은 번역도 자막도 없이 불렸지만 세계인의 뜨거운 호응을 얻었다.

뜻도 모르는 외국어에서 감동받는 인류의 감성 속에 통역과 번역의 미래에 대한 답이 있다. 기계가 언어의 장벽을 허물수록 각 언어가 지닌 고유한 울림과 정체성은 오히려 또렷해진다. 구마라집이 산스크리트어의 음을 일부러 남겨두며 한자로 옮겼던 선택이 오늘까지 이어지듯, 언어는 번역을 거친 뒤에도 원어의 숨결을 완전히 잃지 않는다. 한국어 노랫말이 번역 없이 세계에 통한 것은 언어가 그 자체로 하나의 문화적 상징이 됐다는 증거다.

말을 잇는 통역도, 문자로 남아 문명을 잇는 번역도 결국 다른 세계를 이해하려는 마음에서 나왔다. 기계가 말을 옮겨줄 수는 있어도 서로를 이해하려는 마음까지 옮겨주지는 못한다. 수백만 년간 통역과 번역이 만들어온 문명을 다시 돌아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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