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부터 몸이 약했어요. 초등학교 때 체육은 언제나 ‘미’였죠. 미국에서 공부할 때 체력이 너무 약해 따라가기 힘들어 운동을 시작했죠. 처음엔 에어로빅체조, 나중엔 짐(피트니스센터)에 등록해 혼자 체력 관리를 했죠. 그래도 천성이 어디 가겠어요. 몸이 그다지 건강하진 못했죠. 그런데 필라테스를 만나면서는 완전히 달라졌어요.”
한국에 돌아와서 교수를 하면서도 꾸준히 체력 관리는 했다. 아파트 짐에서 운동하고 PT(Personal Training)를 받기도 했다. 그는 “하지만 뭔가 몸에 맞지 않은 옷을 입은 느낌”이었다고 했다. 필라테스는 오랫동안 그를 괴롭히던 목과 어깨, 허리 통증을 사라지게 했다. 몸자세도 반듯해졌다. 서 교수가 찾고 있는 이솝 필라테스 이은형 원장은 “서 교수님은 몸매는 날씬했는데 코어 근력이 부족했다. 특히 직업적인 특성 때문인지 목과 어깨 등이 긴장돼 있었다. 그래서 코어 근력을 키우면서 어깨와 등 부분의 유연성을 강화했더니 많이 부드러워졌다”고 했다.
필라테스는 반복적인 동작을 통해 몸의 긴장을 풀어주면서 근육을 강화시키는 운동법이다. 몸의 중심부인 코어 근육(복부, 등, 엉덩이, 허벅지 등) 및 관절 근육을 강화해 올바른 자세를 유지하도록 해 최근 어르신들에게 좋은 운동으로 떠오르고 있다. 남녀노소 누구나 할 수 있는 운동이지만 유연성과 근력이 떨어진 시니어들에게 적당한 운동으로 평가된다.몸이 좋아지면서 2018년엔 보디프로필도 찍었다. 서 교수는 “웨이트트레이닝을 추가해 주 4∼5회 3개월 운동한 뒤 찍었다. 40층짜리 빌딩 계단도 올랐다. 몸은 힘들었지만 잘 만들어진 몸을 보니 보람도 있었다”고 했다.
서 교수는 필라테스로 자세가 좋아지면서 은퇴 뒤 몸을 활용한 삶도 고민하게 됐다. 8월 은퇴를 앞둔 그는 “어느 순간 ‘은퇴한 뒤 뭐 할 거예요’라는 질문이 오기 시작했다. 나는 ‘은퇴하다’는 영어 단어 ‘Retire’를 색다르게 해석하고 싶었다. ‘Re-tire’, 타이어를 다시 끼운다. 연식이 된 차에 타이어를 바꿔 끼고 인생 2막을 시작하자는 뜻이다”라고 했다. 그가 선택한 새 타이어가 시니어 모델이다.
“제가 어렸을 때 종이에 그림 그려 인형에 옷 입히는 것을 좋아했죠. 패션디자이너가 되고 싶은 생각도 있었죠. 어쩌다 보니 학자로 33년을 살았네요. 그동안 머리를 쓰고 살아왔다면 이젠 몸을 쓰는 삶도 좋을 것 같아요. 특히 몸을 쓰니 심신의 건강도 따라와 더 좋아요. 자세가 좋아지고 걸음걸이가 달라지니 자신감도 넘쳐요.” 모델 수업은 백화점 문화센터에 가서 받는다. 서 교수는 “비용도 저렴하고 꼭 모델을 하려고 하는 게 아니라 바른 자세로 걷고 싶은 분들과 함께 해서 좋다”고 했다. 자세 바르게 하고 걷는 법을 배운다. 그는 “벽에 몸을 대고 서 있기, 발 사이에 테니스공 넣고 뒤꿈치 들기 등 자세 훈련을 평소 요리하면서도 한다. 이젠 수시로 자세를 바르게 잡는 게 습관이 됐다. 모델 훈련을 하다 보면 굳이 무대에 서지 않아도 내 자세를 꾸준히 관리하게 된다”고 했다.3년 전부터 무대에도 섰다. 지금까지 10번 정도 출연했다. 서 교수는 2023년 11월 말레이시아 코타키나발루에서 열린 미스스쿠버 세계대회 초청쇼에 출연했던 게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그는 “당시 전 세계 500여 명의 청중 앞에서 패션쇼를 하는 그 자체에 정말 감격했다”고 했다.
“과거엔 미인의 기준으로 예쁜 피부와 얼굴을 봤다면 요즘은 자세를 봐요. 운동 열심히 해서 만든 자세는 건강 그 자체죠. 나이는 먹더라도 건강한 자세를 만들면 훨씬 젊어 보이죠. 필라테스는 저에게 차에 주유하는 것과 같은 의미죠. 연식은 오래됐지만 필라테스로 몸 잘 만들고, 시니어 모델이란 새 타이어로 다시 씽씽 달릴 준비에 너무 행복해요.”
양종구 스포츠부 차장 yjong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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