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전례 없던 초고강도 대출 규제를 발표하면서 현장에서 혼선이 빚어지고 있습니다.
정부가 발표한 '가계부채 관리 강화 방안'에 따르면 6·27 대책 이후에는 수도권·규제지역에서는 유주택자의 경우 전세퇴거자금대출을 1억원으로 제한하고 다주택자의 경우 아예 대출을 막았습니다.
전세퇴거자금대출은 말 그대로 집주인이 세입자에게 임대보증금을 돌려주기 위해 받습니다. 기존 세입자를 내보내고 약정된 기간 내 새로운 세입자를 들이거나 집주인이 직접 들어가 거주할 경우 쓰이는 대출입니다. 집주인과 세입자 사이의 갈등을 막는 역할을 합니다.
문제는 금융당국이 이 대출에 대한 세부 지침을 내놓으면서부터 발생했습니다. 원래라면 지난달 27일까지 임대차계약을 체결한 경우 1억원 이상 대출이 가능하다는 해석이 가능했습니다.
하지만 당국이 '임대인이 자력으로 전세금을 반환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조건을 내걸면서 집주인과 세입자 모두 난감한 상황입니다.
서울 강서구에 집을 가지고 있는 강모씨(46)는 "최근 전세퇴거자금대출을 알아보러 은행에 갔는데 은행에선 '현재 전세퇴거자금대출은 받을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어 답답한 상황"이라고 말했습니다.
서울에 거주하는 세입자 박모씨(34)도 "만기일이 다가와 집주인한테 '보증금을 날짜에 맞춰서 줄 수 있느냐'고 문의했지만 집주인은 '모르겠다'는 대답만 하고 있다"며 "만기가 다가오니 다른 집을 찾아봐야 하는 상황에서 집주인이 만기일에 돈을 못 준다고 해버리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토로했습니다.
은행권에 따르면 6월27일 이전엔 '생활안정자금'이라는 명목으로 전세보증금 반환뿐만 아니라 다양한 용도의 대출이 가능했습니다. 하지만 규제 이후엔 생활안정자금 한도가 1억원으로 줄어들었고, 현재는 조건이 더 강화한 '역전세 반환대출'이라는 조건에 해당하는 집주인에게만 대출이 나가는 상황입니다.
△기존 세입자와 전세 계약을 6월27일까지 체결했을 것 △보증금 반환 목적 외 사용 금지 △집주인 자력으로 보증금을 반환할 수 없는 경우 △본인이 입주할 경우 1개월 내 전입신고 및 2년 이상 거주 △후속 세입자가 있을 경우 수령한 보증금으로 대출 상황 및 세입자 보호조치 의무 이행 등입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이전엔 '생활안정자금' 명목으로 광범위하게 대출이 나갔지만 한도가 줄어들면서 혼선이 빚어지고 있다"며 "역전세 반환대출은 조건이 많다 보니 해당하는 집주인이 많지 않아 문제가 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또 다른 시중은행 관계자는 "당국의 명확한 지침이 없다는 점이 혼란을 키우고 있다"며 "전세퇴거자금대출과 관련한 부분이 지속해서 이슈가 되면서 당국이 조금 더 자세하게 들여다보겠다는 얘기가 있다. 현재로선 명확한 가이드라인은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한편 전세에 대한 문턱이 점점 높아지면서 '전세의 월세화'는 속도가 더 붙을 예정입니다.
최근 입주를 시작한 서울 서초구 잠원동 '메이플자이' 전용면적 84㎡ 전세 물건은 적게는 수천만원에서 많게는 수억원까지 낮춘 물건이 대량으로 쏟아졌습니다. 정부가 '소유권 이전 조건부 전세대출'을 내주지 않으면서입니다. 전세퇴거자금대출과는 다르지만 전세 제도에 영향을 주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이 단지 전용 84㎡ 전셋값은 15억원대 내외로 형성돼 있는데, 집주인들은 보증금을 크게 낮추고 이를 월세로 돌려 시장에 내놓고 있습니다. 잠원동에 있는 A 공인 중개 관계자는 "전세를 반전세로 돌려서 놓는 경우가 많다"며 "자금 여력이 있는 집주인들은 자체적으로 자금을 조달하고 모자란 부분을 보증금과 월세로 받으려 한다"고 말했습니다.
법원 등기정보광장에 따르면 전날 기준 1∼6월 서울에서 확정일자를 받은 월세 계약은 29만1582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22만8656건)보다 21.58% 늘었습니다. 같은 기간 전세의 경우 15만3113건에서 16만3019건으로 6.64% 증가했습니다. 월세가 전세보다 더 가파르게 늘어난 것입니다.
김성환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2025년 하반기 건설·부동산 시장 진단 및 내수경기 활성화 전략 세미나'에서 "월세화 흐름이 더욱 강화되는 추세"라며 "전세나 월세는 실제 수요가 하방을 지지해 한 번 오른 가격은 하락이 어렵다. 최근 월세 상승 폭이 확대되며 체감 월세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이송렬 한경닷컴 기자 yisr020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