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롱 피아비가 6일 하나카드 PBA-LPBA 챔피언십 LPBA 결승에서 우승을 차지하고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사진=PBA 투어 제공 |
실력만큼이나 멘탈도 특급이었다. '캄보디아 특급' 스롱 피아비(35·우리금융캐피탈)가 '여제'를 잠재우고 결국 1년 5개월 만에 우승 트로피까지 들어올렸다.
스롱은 6일 경기도 고양시 '고양 킨텍스 PBA 스타디움'에서 열린 프로당구 2025~2026시즌 2차 투어 '하나카드 PBA-LPBA 챔피언십' LPBA 결승전에서 김보라를 상대로 세트스코어 4-1(11-2, 3-11, 11-10, 11-10, 11-2)로 꺾고 정상에 올랐다.
2023~2024시즌 8차 투어 우승 이후 무려 511일이 걸린 통산 8번째 우승. 스롱이 부진한 사이 8회 연속 우승을 달린 김가영(42·하나카드·15회 우승)에 이어 역대 최다 우승 2위 자리를 굳게 지켰다.
더불어 우승 상금 4000만원을 추가해 LPBA에선 김가영(7억 2180만원)에 이어 두 번째로 상금 3억원(3억2282만원)을 돌파했다.
스롱이 1세트를 7이닝 만에 가볍게 따내며 가뿐히 우승을 차지할 것으로 보였으나 2세트서 김보라가 반격에 나서며 승부는 원점이 됐다.
그러나 오랜 만에 결승에 나섰지만 7회 우승의 경험은 김보라를 압도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3세트 18이닝 장기전 끝에 11-10 극적인 승리를 거둔 스롱은 4세트에서도 5-10에서 역전을 거뒀다. 5세트엔 초구부터 8득점 하이런으로 일찌감치 승기를 잡은 뒤 3이닝에서 1득점 후 원뱅크 걸어치기로 완벽한 챔피언샷을 성공시켰다. 스롱은 두 팔을 벌려 포효했고 준우승자 김보라와 뜨거운 포옹을 나누며 기쁨을 나눴다.
스롱이 결승전에서 샷 전략을 구상하고 있다. /사진=PBA 투어 제공 |
이번 우승으로 '한물 갔다'는 일부 평가에 당당히 반기를 들 수 있게 됐다. PBA에 따르면 스롱은 경기 후 기자회견에서 "꿈을 이뤘다. 너무 행복하다. 정말 힘든 경기였다. 친구(김보라)랑 재밌게 하고 싶었는데, 경기 도중에 공이 맞지 않을 때가 너무 많았다"면서도 "그래도 마지막 1~2점 쫄깃쫄깃한 상황이 펼쳐졌다. 당구 팬분들은 재밌게 보셨을 것 같기도 하다"고 미소를 지었다.
지난 시즌을 무관으로 마쳤지만 이미 7번의 우승을 경험했던 스롱이다. 꿈을 이뤘다는 말은 무슨 뜻이었을까. 스롱은 "우승을 많이 하다가 지난 시즌 우승을 하지 못하면서 불안한 마음이 컸다"며 "또 다른 상황들이 겹치면서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내가 우승을 못하는 선수가 됐나'라는 걱정을 했다. 이제 목표를 하나씩 이뤄가려고 한다. 꼭 우승을 하고 싶었는데, 1년 5개월 만에 드디어 이뤄냈다"고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먼저 기자회견에 나선 준우승이자 스롱의 '절친' 김보라도 "스롱이 지난 1년간 힘든 시절을 겪었다"며 한동안 좀처럼 만나지 못했던 이유를 전했고 스롱 또한 '또 다른 상황'으로 인해 힘들었다고 말했다. 단순 부진 이상의 무언가가 있었다는 이야기다.
취재진의 잇따른 질문에 스롱은 어렵게 입을 뗐다. "개인 사정이라 많은 부분은 말할 수가 없다. 다만 이사 때문에 청주, 일산, 당진을 가며 힘든 시간을 보냈다. 먼 거리 때문에 연습할 시간이 없었다"며 "(PBA스타디움이 있는) 일산에 이사를 와야 연습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할 수 있기에 마음 먹고 일산에 숙소를 구했다. 또 남편은 당진에 있다. 두 채를 구매하다 보니, 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그래도 2주에 한 두 번 정도 당진에 있는 남편 집에 간다"고 말했다.
이번 우승으로 얻은 4000만원을 제외하더라도 누적 상금만 3억원 가까이 쌓였고 LPBA 최고 선수 중 하나로 팀리그에서 활약하며 적지 않은 연봉을 받았다. 더불어 용품업체 후원 등으로 인해 부가적인 수익까지 챙길 수 있었다. 그렇기에 자칫 배부른 소리로 들릴 법도 했다.
우승을 차지한 스롱이 손가락으로 통산 8회 우승을 나타내는 여덟 손가락을 펼쳐들고 있다. /사진=PBA 투어 제공 |
그러나 이어진 이야기에서 스롱의 복잡했던 속내와 부진의 진짜 이유에 대해 이해할 수 있었다. 스롱은 "(남편이) 캄보디아에서 하는 사업도 사실 진전이 없어서 경제적인 타격도 있었다"며 "봉사활동도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마음이 많이 아팠다. 악재가 계속 겹치는 느낌이었다"고 털어놨다.
'캄보디아의 자존심'인 스롱은 기회가 될 때마다 캄보디아에 학교를 세우겠다는 뜻을 나타냈고 실제로 이를 현실로 옮겼다. 더불어 비시즌 때마다 오랜 기간 고국에서 봉사활동을 해왔고 여전히 현지에서 열악한 환경에서 살고 있는 부모님을 위해 번듯한 집을 짓겠다는 목표로 더 열심히 달리고 있었다. 다만 한국에서 선수 생활에 전념해야 하는 스롱의 역할에는 한계가 있었고 그를 대신해 남편이 많은 몫을 맡아야 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캄보디아에서 사업을 벌였지만 뜻대로 이뤄지지 않으며 오히려 큰 손실을 입은 것이다. 이로 인해 스롱으로선 선수 생활에만 집중할 수 없는 힘든 시간이 이어졌고 이는 지난 시즌 무관으로 고스란히 나타났다.
그럼에도 결코 좌절하거나 남편을 책망하지도 않았다. 동료들의 따뜻한 말이 위로가 됐다는 스롱은 남편에 대해서도 "남편이 당구에만 전념할 수 있게 해주고 있다"며 "사실 캄보디아 사람들이 한국으로 넘어와서 공장에서 많이 일하는데 오전 7시부터 밤 10시까지 더운 공장에서 일을 한다. 나는 무조건 당구를 잘해서 성공하겠다는 마음이 있다. 남편이 잘못하더라도 잘못을 따지려고 하지 않으려고 한다. 다 잊고 새로운 길을 가자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지금의 '캄보디아 특급' 스롱이 있기까지 남편의 역할이 절대적이었기 때문이다. 20세이던 2010년 한국인 남편 김만식(64)씨와 결혼하며 한국 땅을 밟은 스롱은 이듬해 김씨의 권유로 큐를 잡았다. 이후 빠르게 성장해 대한당구연맹(KBF)을 주름잡는 슈퍼스타로 등극했고 세계캐롬연맹(UMB)에서도 최정상권을 다툰 뒤 PBA 투어 출범 두 번째인 2020~2021시즌 막판 프로 무대로 뛰어들어 리그를 대표하는 선수가 됐다. 2022~2023시즌 3승과 함께 팀리그 우승까지 이끌어 PBA 대상 시상식에선 여자부 대상까지 수상할 수 있었다.
장상진 PBA 부총재(왼쪽부터), 김보라, 스롱, 성영수 하나카드 대표이사가 LPBA 챔피언십 우승 세리머니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PBA 투어 제공 |
꿈과 같이 멀어졌던 우승을 다시 손에 넣었다. 심지어 적수가 없었던 '여제' 김가영을 4강에서 잡아내며 드디어 독주체제를 무너뜨렸다는 점에서 더 스롱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는 상황이다.
스롱 또한 "이번 우승을 통해 앞으로도 잘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오랜만에 이런 감정을 느끼는데 더 편하고 안정을 느끼고 있다. 처음 당구를 접할 때 억지로 배웠지만 당구를 통해 많은 사람들을 돕고 싶다"며 "또 나도 앞으로도 더 웃고 싶다. 꿈을 이루고 싶다. 지난 시즌에는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하면서 캄보디아에 많은 돈을 보내지 못했다. 가족들의 눈치를 볼 때도 있었다. 좋은 성적을 거둬서 가족들이 좋은 옷, 맛있는 음식을 먹고, 용돈도 보내주고 싶다. 또 내년에는 가족들과 조카들을 한국으로 초대할 예정"이라고 소박한 목표를 설정했다.
김보라는 39개 대회 만에 프로 데뷔 첫 우승에 도전했으나 스롱의 벽을 넘지 못하고 아쉬움을 삼켰다. 그럼에도 본인의 최고 성적인 8강을 넘어 앞으로의 활약을 기대케했다. 대회 한 경기 최고 애버리지를 기록한 선수에게 주어지는 '웰컴톱랭킹'(상금 200만원)은 64강에서 김채연을 상대로 애버리지 2.500을 기록한 김가영이 수상했다.
여자부 2차전이 마무리된 가운데 대회 최종일인 7일에는 PBA 4강전과 결승전이 차례로 열린다. 오후 12시 다비드 마르티네스(스페인·크라운해태)와 륏피 체네트(튀르키예·하이원리조트)의 4강 1경기를 시작으로 오후 3시 조재호(NH농협카드)와 에디 레펀스(벨기에·SK렌터카)가 결승 진출을 두고 다툰다. 준결승전 승자는 오후 9시부터 우승 상금 1억원이 걸린 7전 4선승제 결승전을 치른다.
우승 후 캄보디아 국기를 들고 세리머니를 하는 스롱. /사진=PBA 투어 제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