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보다 존재감으로 인정받는 안젤리나 졸리...여배우란 때론 그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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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젤리나 졸리가 뛰어난 연기의 소유자라고 생각한 적이 거의 없다. 과도하게 말랐고, 과도하게 타투를 했으며, 과도하게 신경질적일 것이고, 과도하게 정치적으로나 종교적으로 올바를 것 같아 보이는데다, 과도하게 건강에 대해 자기 강박적이거나, 과도하게 아이들에게 엄격할 것이라는 느낌을 늘 갖게 하는 여배우다.

영화 <미스터 & 미세스 스미스> 스틸컷 / 사진출처. 네이버영화

영화 <미스터 & 미세스 스미스> 스틸컷 / 사진출처. 네이버영화

졸리는 늙은 평론가들에게는 여전히 라라 크로포트(<툼 레이더>)다. 졸리는 아카데미 수상자 대열에 들어 있으나 그녀가 2000년에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처음 만나는 자유>는 제임스 맨골드(이번에 밥 딜런 영화 <컴플리트 언노운>을 만들어 자신의 연출력이 죽지 않았음을 스스로 입증했다)가 만든 작품이라는 것 외에는 뚜렷한 기억으로 남는 영화가 아니다. 그리고 그때는 졸리보다 위노나 라이더의 인기가 더 높았던 때이다. 라이더는 <처음 만나는 자유> 직후인 2001년 절도사건으로 인기가 급전직하했다.

졸리 역시 월드 클래스급 배우이니 이런저런 강박증이 어쩌면 당연한 일이겠으나 할리우드 여배우란 존재가 늘 세계 대중들과 반려한다는 측면에서는 웬지 까칠하고 2% 부족하다는 느낌을 주는 여인이다. 그런 면에서 일정한 경지를 넘어 선 메릴 스트립이나 줄리앤 무어, 아네트 베닝 라인에는 올라서기 힘들어 보인다. 글쎄 잘 하면 케이트 윈슬렛 정도? 제시카 알바보다는 미모나 영향력 면에서 몇 십 수 위인 여배우? 어쩌면 그녀가 원하는 롤 모델은 그 옛날의 수잔 헤이워드나 그레타 가르보, 마를레네 디트리히 급일 수도 있겠다. 할리우드 메이저 스튜디오 초창기 시절의 여배우는 연기력보다 촬영과 편집, 분장과 의상에 의해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인물인 경우가 많았다.

영화 <처음 만나는 자유> 스틸컷 / 사진출처. 네이버영화

영화 <처음 만나는 자유> 스틸컷 / 사진출처. 네이버영화

졸리의 이번 새 영화 <마리아>는 그녀에게 전환점같은 작품이다. 일단 감독부터가 그렇다. 칠레 출신으로 다국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파블로 라라인이다. 그는 <재키>와 <스펜서>를 만들었는데, 각각 재클린 케네디와 다이아나 왕세자비 역의 나탈리 포트만, 크리스틴 스튜어트를 완벽하게 실제 인물로 빙의시켰다. 이번 그의 신작 <마리아> 역시 철저한 캐릭터라이징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마리아>의 마리아는 마리아 칼라스이다. 전설적인 소프라노 가수다. 디바이자 프리마돈나였다. 이 영화에서 졸리를 캐스팅한 게 적격인 이유가 마리아 칼라스도 꽤나 신경질적이었(을 수밖에 없었)던 인물이고 그렇다면 그녀에게 딱인 작품일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마리아>는 음악영화라고 보기는 어렵다. <마리아>는 일종의 전기영화다. 칼라스가 실제로 죽기 일주일 전의 인터뷰를 복기한 것이다. 마리아 칼라스는 1977년 약물 과다 복용에 의한 갑작스런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영화 <마리아>는 마리아 칼라스의 노래를 BGM으로 그녀의 기구한 일생을 기록한 것이다. 졸리는 칼라스의 후반, 말년의 모습을 리얼하게 연기해 낸다. 그런데 이런 얘기는 <마리아>에서 졸리가 뛰어난 노래 실력을 보여주지는 않는다는 의미다. 아무리 연습한다 한들 칼라스를 따라 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파블로 라라인 감독은 의도적으로 그런 정면 승부는 이번 영화에서 가져갈 필요가 없다고 봤을 것이다.

▶[관련 리뷰] 20세기 최고의 디바, 마리아 칼라스의 마지막 7일

연기보다 존재감으로 인정받는 안젤리나 졸리...여배우란 때론 그런 것이다

영화 <마리아> 스틸컷 / 사진. ⓒIMDb

영화 <마리아> 스틸컷 / 사진. ⓒIMDb

졸리가 할리우드의 전설적인 배우 존 보이트의 딸이란 것은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졸리는 보이트란 성을 쓰지 않는데, 그건 아버지가 바람이 나서 자신을 1살 때 버렸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졸리와 보이트는 평범한 부녀 사이를 가져 가기 힘든 관계다. 보이트의 대표작이 지골로, 곧 남창의 이야기를 그린 <미드나잇 카우보이>(1969)라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보이트의 여성편력은 졸리를 낳기 몇 년 전부터 이미 잠재돼 있었던 셈이다. 배우에 따라서는 자신이 성공한 영화의 후광에서 한참이나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보이트가 그런 경우였다.

어떤 면에서 보면 졸리는 영화보다 브래드 피트와의 결혼과 이혼으로 더 주목을 받은 면이 있다. 아마도 피트가 주사가 좀 있는 모양이고 당연히 그러면 폭력적인 성향이 나타난다. 둘 사이는 금실이 좋았다가 피트의 음주 실수가 결혼 생활을 파국으로 치닫게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졸리는 피트에 비해 지능과 지혜 면에서 한 단수 더 위인 것으로 보이며, 남자를 어느 방향으로 끌고 갈지에 대해 모성애적인 본능으로 여러 아이디어를 착즙해 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피트는 건축 디자이너가 꿈이었고, 배우가 되면서 그 이상을 접었는데 졸리와 살면서 그녀의 권유로 건축학을 다시 공부했다. 졸리는 피트의 생일날 그를 데리고 시카고 출신의 세계적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걸작 ‘낙수장’을 보러 가기도 해서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이후 피트는 2006년 두바이 호텔단지 디자인 작업에 참여했다. 아무튼 그런 등등의 지적 축조가 지금의 '플랜b' 운영으로 귀착된 것으로 보인다. '플랜b'는 브래드 피트의 영화사로 <미나리>, <셸마> 등 주옥 같은 인디영화에 투자하고 있다.

안젤리나 졸리와 브래드 피트 / 사진. ⓒGeorges Biard

안젤리나 졸리와 브래드 피트 / 사진. ⓒGeorges Biard

졸리의 영화 중 스테디 셀러는 아이러니하게도 피트와 나왔던 액션영화 <미스터 & 미세스 스미스>이다. <원티드>와 <솔트> 같은 첩보액션 영화도 그녀의 주가를 높이는 데 일조한 작품이다. 마동석과 나왔던 <이터널스>는 망작이었다. 작품 퀄리티가 나쁘지 않았던 영화로는 에단 호크와 나왔던 <테이킹 라이브즈>가 있다. 이렇다 할 대표작을 아직 만들지 못한 것이 졸리의 특징일 수 있다. 1976년생이니 올해로 50이다. 아직 시간은 있다. 어쨌든 그럼에도 졸리가 할리우드에서 특A급 배우인 것만은 틀림이 없다. 존재감이 최고이기 때문이다.

영화 <원티드> 스틸컷 / 사진출처. 네이버영화

영화 <원티드> 스틸컷 / 사진출처. 네이버영화

영화 <테이킹 라이브즈> 스틸컷 / 사진출처. 네이버영화

영화 <테이킹 라이브즈> 스틸컷 / 사진출처. 네이버영화

사회운동가이기도 하다. 환경운동과 빈민 구제 운동에 열심이다. 그녀가 입양아가 많은 이유는 그 운동의 일환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졸리는 저명한 배우이다. 여기서 방점은 ‘저명한’에 찍혀 있다. 연기보다 존재감이 앞서는 여배우. 여배우는 때론 그런 것이다.

오동진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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