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서 아이 네 명의 부모가 될 수 있는 이유 [폴 카버 한국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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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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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카버 영국 출신·번역가

폴 카버 영국 출신·번역가
지난달 몇 년 만에 영국에 다녀왔다. 엄마표 집밥 먹기, 좋아하는 팀 축구 경기 보기 등 영국에 있으면 으레 하던 일들을 이번에도 거의 다 하고 왔다. 이번에는 남동생 집에도 며칠 머물렀다. 내 남동생이 한국 사람이었다면 애국자라고 칭송받았을 텐데…. 네 명의 아이를 둔 아빠이기 때문이다. 나는 두 명을 키우는 것도 어렵다고 느껴 남동생이 이 많은 아이들을 어떻게 키우는지 궁금했다. 맥주잔을 기울이면서 나는 한국에서, 동생은 영국에서 각각 어떻게 아이들을 키웠는지에 대한 얘기를 나눴다.

첫 번째 큰 차이점은 근무 시간이다. 한국에서 다닌 모든 직장의 출근시간은 오전 9시, 퇴근시간은 오후 6시로 똑같았다. 초과 근무가 일쑤라 퇴근시간 후에도 늦게까지 남아 일을 해 동료들과의 저녁 식사 또한 빈번했다. 게다가 서울에서 직장을 다닌다면 대부분이 1시간 정도를 출퇴근에 할애해야 해 야근이 없어도 저녁 시간이 자연히 늦어졌다. 반면 영국인들은 보통 오후 5시에 퇴근한다. 오후 5시는 저녁을 먹기에는 이른 시간이기도 하거니와 영국에는 야근이나 회식이 거의 없으니 직장에서 저녁을 먹고 올 일도 없다. 오후 5시에 퇴근해서 집에 느긋하게 도착하면 부부가 함께 저녁을 준비하거나 한 사람이 음식을 만드는 동안 다른 한 사람은 아이들과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다음으로 큰 차이점은 아이들의 취침 시간이다. 막내가 두 살이고 맞이가 열 살인 조카 넷 모두 오후 8시면 이미 각자의 침대에서 취침 준비가 끝난다. 아이들이 자는 동안 부부는 오붓한 둘만의 시간을 보내거나 각자의 일을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영국의 아이들은 각자의 침대에서 혼자 자는 습관을 들이기 때문에 이런 부부 시간이 가능하다. 한국에서는 오후 10시가 돼도 거리에 돌아다니는 어린 학생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취학 전 아이들조차 밤늦게까지 깨어 있다가 늦게 잠들고, 부모가 함께 아이들과 자는 사례도 꽤 빈번하다.

한국은 아이들이 학교 수업을 마치고 여러 학원을 전전하다 집에 돌아온다. 국어, 영어, 수학, 과학, 태권도, 미술, 피아노 등등 학원 종류만도 어마무시하다. 영국에서는 학원에 다니는 학생은 거의 없고 일주일에 한두 번 수영이나 축구, 럭비 혹은 스카우트 활동을 한다. 그래서 영국 부모들은 사교육비 걱정이 적고, 아이들도 부모와 보내는 시간이 더 길다.

친목 활동에서도 차이가 있다. 영국에서는 학연, 동창 모임 등이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학창 시절에 만나고 헤어진 이들에 대한 집착이 덜하고, 동창 모임에 나가는 것도 그리 일반적이지 않다. 아이가 일단 생기면 대부분의 친목 모임이 아이들을 위주로 한 가족 모임으로 재편되는 경향이 있어서, 한국처럼 한 사람만 동창 모임에 나가고 나머지 한 사람은 홀로 육아를 떠맡기보다는 부부 모두가 아이들과 함께 모임을 해 결국 가족 전체가 친구가 된다. 그래서 많은 영국 아빠의 사회적 네트워크는 한국식으로 말하면 ‘부인이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서 아이를 통해 알게 된 다른 부인의 남편들 모임’이라는 것이다.

마지막 차이는 부모들의 마음가짐인 것 같다. 물론 남동생과 제수씨는 아이들 모두에게 최선을 다하지만, 극한에 이를 만큼 아이들에게만 매달리진 않는다. 그 대신, 가정을 어떻게 하면 가장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지에 더 중점을 두는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무려 여섯 명이 사는 집이 때로는 난장판처럼 보여도 그 혼란 속에서도 원칙을 지킬 수 있는 듯했다. 아이들은 스스로 집에서 해야 하는 일이 있었고 자신의 일정을 알고 지키려고 노력했으며, 부모는 필요할 때 아이들에게 ‘노(No)’라고 말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반면, 나를 포함해 한국의 부모들은 항상 양육이 얼마나 어려운지에 대해 불평하지만 일정 부분은 스스로 초래한 일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조금만 바꾸면 더 나아질 수 있을 것 같은데, 남동생의 사례를 들어 본다면, 동생은 아이들을 위해 거기에 있어 주는 아버지로서 존재하려고 노력한다. 아이들을 수영클럽에 데려간다든지, 저녁상을 차려 준다든지, 아이들의 숙제를 도와주고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낸다. 이는 나와 내 남동생의 일화일 뿐이다. 모든 영국의 가족들이 내 남동생의 가족과 같은 것도 아니고, 역으로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한국처럼 심각한 수준은 아니지만 영국도 출산율 감소 추세라 이에 국가적으로 대응하고 있고, 한국의 낮은 출산율은 다른 사회경제적 요인들이 그 원인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대규모의 재정 지원책으로도 출산율 부양 효과가 미비하다면 어쩌면 일상적이고 부드러운 변화가 더 큰 효과를 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조심스레 적어 본다.

폴 카버 영국 출신·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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