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그러하듯, 올해 칸 영화제 역시 경쟁 섹션에서는 왕들의 제전이 일어날 전망이다. 이미 두 차례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던 다르덴 형제를 필두로, 여성 감독으로서 황금종려상을 두 번째 수상한 쥘리아 뒤크르노의 <알파>, 한국에서 곧 개봉을 앞둔 웨스 앤더슨 감독의 <페니키안 스킴>, <비포 선라이즈> 시리즈의 전설 리차드 링클레이터의 <누벨 바그>, 호러 장르의 새로운 거장 아리 에스터의 <에딩턴> 등 사실상 수식이 필요 없는 감독들의 새로운 작품들이 이번 칸 에디션의 경쟁 부문을 가득 메웠다.
관객들 입장에서는 이러한 ‘격전’이 영화제에서 가장 흥미진진한 부분이지만 사실상 감독들에게는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이유로 감독들은 때때로 경쟁 부문의 초대를 거절하고 자청해서 비경쟁으로 가기도 한다. 수상여부 보다 영화제의 참여를 즐기겠다는 것이다. 마틴 스콜세지의 <플라워 킬링 문>이 그러한 케이스 중 하나다. 스콜세지 감독은 AFP와의 기자회견에서 “이제는 다른 이들이 빛날 순간”이라며 겸손하게 그의 자발적인 경쟁 섹션 거절에 대해 밝히기도 했다.
이렇듯 칸의 경쟁 섹션은 그해의 영화제, 더 넓은 관점에서는 영화 산업을 가늠하는 중요한 기표가 되지만 올해 칸 영화제의 경우 경쟁 섹션만큼이나 흥미로운 작품들이 비경쟁 섹션에 포진되어 있다. 예컨대 ‘주목할 만한 시선’을 통해 상영되는 크리스틴 스튜어트 연출의 <물의 연대기(The Chronology of Water)>가 그중 한편이다. 리디아 유크나비치의 자전 소설, ‘숨을 참던 나날’을 기반으로 만든 이번 작품은 학대를 받고 자란 여성이 궁극적으로는 문장을 통해 자아를 찾고 작가가 되는 과정을 그린 영화다.
17일에 첫 스크리닝을 통해 관객을 만난 스튜어트의 데뷔 장편은 언론과 평론가들에게 호평을 받았다. 스튜어트는 “평론가들이 너무 친절한 것일 뿐”이라며 믿기지 않는 듯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영화 제작비부터 창작의 방향성까지 많은 이슈들로 오랜 기간 동안 스튜어트를 ‘괴롭혀 온’ 이 영화는 결과적으로 영화 산업의 최정상에 속해 있는 리뷰어들을 만족시킨 셈이다.
두 번째로 주목할 만한 비경쟁 섹션 영화는 거장 스파이크 리 감독의 <하이스트 투 로우이스트(Highest 2 Lowest)> 이다. 영화는 스파이크 리 감독의 영화적 아이콘 중 하나인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천국과 지옥> (1963)의 리메이크 프로젝트다. 동시에 이번 작품은 리 감독과 주연 배우인 덴젤 워싱턴의 다섯 번째 협업이자 마지막 작품인 <인사이드 맨> 이후 18년 만에 재회한 작품이라 더더욱 의미가 크다. 덴젤 워싱턴은 올해 칸 영화제에서 명예 황금종려상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영화는 자신이 아끼는 대자(代子)를 (실수로) 납치당한 한 레코드 프로듀서, ‘킹’ (덴젤 워싱턴)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아키라의 오리지널 버전에서 유괴범들이 주인공의 아들로 착각해서 그의 운전사 아들을 납치하는 것이 메인 컨셉이었다면 이번 리의 리메이크에서는 킹의 아들로 착각해서 그의 대자이자 운전사의 아들인 ‘카일’ (일라이아 라이트) 이 납치를 당하는 것으로 설정이 되었다. 다시 말해 원작에서 주인공의 딜레마가 지극히 계급적인 것으로 그려졌다면 (굳이 운전사의 아들을 위해 납치범들에게 돈을 줘야 하는 것인지) 이번 리의 리메이크에서는 납치를 당한 대상이 운전사이자 친구의 아들이라는 설정을 더해 도덕적인 딜레마를 더하는 것이다.
영화는 각종 매체에서 좋은 평가를 기록하고 있다. 그의 처참했던 리메이크작, (박찬욱 감독의) <올드 보이>의 악몽을 떠올리지 않아도 되어서 적어도 안심이 된다. 가디언지는 이 영화가 스파이크 리가 가진 엄청난 스포츠 스타들과의 인맥을 활용하는 관객들이 환영할 만한 ‘육중한 영화’라고 표현했으며 (This is a big, muscular picture which aspires to the crowd-pleasing athleticism of Spike Lee’s sports icons; it’s very enjoyable and there’s a great turn from Washington)
할리우드 리포트는 그의 실패한 리메이크 <올드 보이>보다 한 우주만큼이나 나은 작품이라고 평하며 쇼비즈니스에서 일하는 남성의 세계를 디테일하게 묘사한 것에 찬사를 보냈다. (Then again, he’s not trying to, and this is a universe away from the disappointment of Oldboy, his 2013 remake of the Park Chan-wook thriller. The director is in the role of the flashy, panache-y showman here, and he plays it to perfection, delivering a big, highly polished chunk of movie that’s pure enjoyment.)
이 밖에도 미드나잇 스크리닝을 통해 공개되는 에단 코엔(코엔 형제 중 동생)의 <허니 돈트(Honey, Don’t)> 와 크리스틴 스튜어트와 함께 ‘주목할 만한 시선’에서 상영되는 스칼렛 요한슨 연출의 <위대한 엘레노어(Eleanor the Great)> 역시 화제를 모으고 있는 경쟁 외 섹션의 작품들이다.
한국 영화 한 편이 없는 철저한 ‘남의 잔치’지만 그럼에도 작품 리스트들을 보니 설렘이 앞선다. 과연 올해의 황금종려상은 누가 가져가게 될 것인가. 현재까지는 리차드 링클레이터의 <누벨 바그>가 가장 유력한 후보로 언급이 되고 있다. 정작 링클레이터는 프랑스 영화사의 이야기를 프랑스인이 아닌 본인이 만들어서 칸에서만큼은 절대 초청을 받지 못할 것이라고 예상했다는데, 역시 시상식에는 늘 반전과 기적의 스토리텔링이 함께 한다. 황금종려상과 다른 주요 부문의 시상식은 영화제의 마지막 날인 24일에 열린다.
김효정 영화평론가•아르떼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