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힘[이은화의 미술시간]〈3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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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이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프랑스의 거리 예술가 제이알(JR)은 주저함 없이 “예스”라고 답한다. 독학으로 사진을 배운 그는 거리를 캔버스 삼아 포토 그라피티 작업을 한다. 건물 벽이나 옥상, 도로에 설치된 대형 흑백사진들은 그 자체로 강렬한 인상과 메시지를 준다.

예술의 사회적 역할을 중요시하는 제이알은 분쟁지역으로도 기꺼이 달려간다. 2007년에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국경 장벽에 ‘페이스 투 페이스(Face 2 Face·사진)’를 설치해 큰 주목을 받았다. 작가는 두 나라의 도시들을 다니며 같은 직업을 가진 사람들의 얼굴을 촬영했다. 모델은 택시기사, 농부, 교사, 요리사 등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정면에서 클로즈업해 촬영된 얼굴들은 같은 직업끼리 쌍을 이뤄 벽면에 부착됐다. 총길이 28m의 장벽이 야외 전시장이 됐는데, 이는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로 진행된 불법 사진전이기도 했다.

‘우리는 정말 그렇게 다른가?’ 이 작품이 던지는 질문이다. 분열과 분쟁의 상징이던 장벽에 평범한 주민들을 찍은 대형 사진들이 전시되자 사람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사진 속 얼굴들이 구별이 거의 불가능할 정도로 서로 닮아 보였기 때문이다. “마치 서로 다른 가정에서 자란 쌍둥이 형제처럼 생김새도 거의 똑같고 거의 같은 언어를 사용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작가의 말이다. 가족처럼 닮은 사람들끼리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누고 싸우면서 증오하는 현실을 자각하게 만드는 작품이었다.

사진 속 인물들은 하나같이 웃거나 장난치거나 재밌는 표정을 하고 있다. 그들의 얼굴에서 전쟁의 공포와 두려움은 찾을 수 없다. 작가가 전쟁과 폭력, 미움과 증오가 있는 곳에서 역설적으로 사랑과 평화, 일상의 행복을 전한 것이다. 제이알은 말한다. 벽을 허물고 서로 대면해야 한다고. 예술의 힘은 대화를 촉발하는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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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화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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