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5월, 미국 뉴욕에서 열린 도널드 트럼프 당시 대선후보 지지 집회를 취재차 찾은 적이 있다. 민주당 지지자가 압도적으로 많은 뉴욕에서 트럼프 후보를 지지하는 20대 젊은 청년이 보이기에 신기한 마음에 말을 걸었다. 지지 이유를 묻자, 갑자기 그는 현실의 어려움을 털어놓았다.
자신은 그나마 대학원 진학을 앞두고 있지만 친구들은 취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고, 월세와 생활비가 너무 올라서 살기가 힘들다고 했다. ‘미국 경제 성장률이 높은 편인데 무슨 소리냐’고 되묻자 그는 고개를 저으며 “주식이나 집을 보유한 일부만 부자가 되고 있다. 우리 세대는 불가능하다”고 했다.
자산 인플레이션의 상흔
뉴욕만큼 부동산 폭등기를 지켜본 서울도 그 후유증이 대단하다. 성실하게 공부해서 비교적 탄탄한 직장을 가져도 안정적인 거주 환경을 가질 수 없다는 허탈감과 무력감이 대다수를 짓누르고 있다. 오죽하면 하루아침에 부동산 유무에 따라 확대된 빈부격차에 ‘벼락거지’라는 신조어가 생겼을까.
특히 서울 부동산 문제는 정부의 규제가 오히려 집값을 부채질하고 공포 심리를 자극해 왔다는 점에서 여타 다른 나라들의 자산 인플레이션 양상과 다른 지점이 있다. 금융 당국이 가계 부채를 관리할 필요성은 있지만 그렇다고 실수요자가 자신의 담보로, 시장 금리에 따라 대출을 받으려는 것까지 규제한다면 반드시 부작용이 따를 수밖에 없다. 규제 시그널이 패닉 바잉을 부추기기 때문이다.
규제보다 공급에 방점 찍혀야
부동산 ‘불장’ 우려에 새 정부는 은행 규제를 통해 주담대 총량을 조절하려는 규제를 검토한 상태다. 금융 당국은 은행들을 불러 주담대 대출 금리를 낮추지 못하도록 압박하고 있다. 이에 신용이 탄탄한 주담대 금리가 자영업자 대상 대출 금리보다도 높은 역전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실수요자들이 불필요한 이자 비용을 더 내는 피해로 이어지는 셈이다.
안정적인 거주 환경에서 살고자 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다. 이를 어렵게 만드는 부동산값 폭등의 상흔은 오래가고 여파가 크기에 새 정부가 중점적으로 대책을 세워야 하는 것은 맞다. 하지만 수요를 억누르는 데 방점이 찍히면 규제 신설이나 폐지 시그널 때마다 시장의 변동성을 높인다. 결국은 시장 수요자들이 원하는 공급에 방점이 찍혀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정부가 시간이 걸리더라도 지속 가능한 공급에 방점을 둔 정책을 고민해야 하는 이유다.
김현수 경제부장 kimh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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