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우경임]‘패밀리 비즈니스’로 망가진 국가기관

2 weeks ago 6

우경임 논설위원

우경임 논설위원
윤석열 전 대통령이 파면됐지만 국가적 위기가 끝난 것 같지는 않다. 내란죄로 기소돼 법정에 선 윤 전 대통령의 비겁하고 무도한 언어에 기함한 탓도 있고, 권력 공백 상태에서 국가 기관까지 기능 부전에 빠진 탓도 크다고 생각한다. 그가 공익을 위한 국가 기관을 사익을 위해 동원한 순간, 민주공화국을 지탱하는 제도에 대한 신뢰가 무너졌기 때문이다.

사익, 사조직, 사병… 조롱당하는 기관들

윤 전 대통령은 대선 기간 중 “원래 선거는 시쳇말로 패밀리 비즈니스 아니냐”고 말한 적이 있다. 당시에도 논란이 됐으나 국정도 ‘패밀리 비즈니스’로 운영할 줄은 몰랐다. 공사 구분조차 안 되는데 선공후사(先公後私)를 바란 건 무리였을까. 패밀리를 위해, 패밀리에 의해 국가 기관이 서슴없이 동원됐다.

최재해 감사원장은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 “감사를 통해 국정을 지원한다”며 감사원의 독립성을 부정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한남동 관저 공사를 김건희 여사가 대표로 있던 코바나컨텐츠 후원업체가 수의계약으로 맡았고, 그 배경에 김 여사가 있다는 의혹에 대해 감사원은 “누가 추천했는지는 모른다”고 결론 내렸다. ‘맹탕 감사’라는 지적이 이어지던 중에 나온 발언이다. 역대 정권마다 감사원은 ‘정치 감사’ 의혹을 피해 가지 못했지만, 헌법상 독립적인 기구라는 시늉조차 하지 않는 건 놀라웠다.

윤 전 대통령의 생일 잔치에서 충성을 다짐하는 노래를 부르고, 체포영장 집행을 저지한 경호처는 어떤가. 경호처는 대통령이라는 직책을 보호하는 기관이지, 개인에게 충성하는 사조직이 아니다. 그런데 ‘김 여사 라인’으로 알려진 김성훈 경호처 차장은 “경호처는 사병 집단이 맞고, 오로지 대통령만을 위해 존재하는 유일한 정부 기관”이라고 당당히 말했다.

서울∼양평 고속도로 종점이 윤 전 대통령 당선 직후 김 여사 일가 땅으로 변경됐다는 의혹이 제기되자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은 “특혜와 외압은 없었다”고 단언했다. 이후 국토부가 자체 감사에 착수했지만 보고 누락, 부실 입찰로 애꿎은 공무원만 징계했을 뿐 노선 변경 과정은 제대로 따져보지도 않았다. 이를 밝힐 용역 보고서 4쪽은 사라졌다.

사회적 약자의 권리 침해를 구제한다는 사명을 저버린 국민권익위원회와 국가인권위원회를 보는 건 참담했다. 권익위는 김 여사의 명품백 수수에 대해 “공직자의 배우자는 처벌할 수 없다”고 면죄부를 줬다. 당시 정승윤 권익위 부위원장은 외국인에게 받은 선물은 대통령기록물이라는 궤변까지 폈다. 그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은 정작 명품백을 건넨 사람이 “청탁이 맞다”는데도 김 여사를 불기소 처분했다.국가인권위원회는 12·3 계엄 선포에 따른 인권 침해에는 침묵했고, 최고 권력자였던 윤 전 대통령의 탄핵 심판 방어권 보장 권고를 의결했다. 이를 두고 안창호 인권위원장은 “국민을 위한 결정이었다. 떳떳하다”고 했다.

‘선공후사’ 없으면 제도는 악용

가장 안타까운 건 군이다. 친위 쿠데타에 동원돼 40년 쇄신 노력이 물거품이 됐다. 군 장성 15명이 줄줄이 해임이나 직무 정지 상태다. 군에 대한 불신 속에서 대북 훈련까지 쭈뼛하게 되자 군 내부의 사기 저하가 심각하다고 한다. 그런데도 명령을 내린 윤 전 대통령은 “(수사) 초기 겁을 먹은 사람들이 수사기관의 유도에 따라 진술한 것”이라며 군을 비난했다.

민주주의가 형식적으로 완벽하다 하더라도 그 가치를 존중하지 않으면 본질이 왜곡되고, 제도는 악용된다. 합법적으로 내 편에게만 공정한 사회가 도래한다. 권력자의 ‘선공후사’가 중요한 까닭이다.

그래서 대통령 탄핵이 끝이어선 안 된다. 공공선에 충실한 대통령을 뽑든, 권력 남용을 막을 장치를 보완하든 우리 사회의 제도적 건강함을 회복시켜야 한다. 더 이상 헌정사의 비극이 반복되지 않으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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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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