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황성호]피싱도, 사기도 ‘대포통장’ 막아야 잡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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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성호 히어로콘텐츠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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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포통장을 이용한 주식투자 사기 사건 피해자 김모 씨를 만나기 위해 3월 말 서울 관악구의 한 빌라를 찾았다. 판결문에 나온 그의 주소지에서 2시간째 기다리며 40대로 추정되는 남성을 기다렸지만 집으로 들어선 건 70대 노인이었다. 자초지종을 설명하자 그는 대뜸 “사기꾼이 합의하자고 먼저 나타나지 않는 이상 피해금은 잃어버린 돈이라고 생각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김 씨의 전 장인이라고 했다. 김 씨는 수년 전 사업에 실패한 뒤 노인의 딸과 이혼했고, 현재는 집을 구하지 못해 주소지만 노인의 집에 올려놨다. 노인도 김 씨를 보지 못한 지 10년은 됐다고 했다. 경찰관으로 일하다 은퇴한 이 노인 역시 수년 전 수천만 원을 잃은 사기 피해자였다.

해외에서 붙잡히지 않는 사기꾼들

‘검은돈의 혈관, 대포통장’ 시리즈를 취재하며 만난 대다수의 사기 피해자가 노인과 같은 체념을 하고 있었다. 온라인 뱅킹이 일상화된 요즘엔 사기 사건을 당하면 피해금은 5분 만에 해외로 빠져나간다. 그러다 보니 돌려받지 못한다. 2024년 보이스피싱 사건 피해금 환수율은 22.2%에 그쳤다.

주범을 잡아야 피해금을 받아낼 수 있을 텐데 대부분의 사기 사건 주범들은 주로 해외에서 머물며 범죄를 저지른다. 주식 투자 사기나 온라인 도박도 마찬가지다. 이들을 일망타진하기 어려운 건 해당 국가와의 수사 공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시리즈 취재 과정에서 유령회사 ‘대한퍼스트’의 설립자 김철민(가명)이 잡혔지만 윗선들은 여전히 해외에 머물고 있단 사실도 알게 됐다. 이들에 대한 수배령이 떨어진 지 수년이 넘었지만 이들은 잡히지 않았다. 이 사건을 수사한 김봉식 인천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 팀장에 대해 김철민의 변호사조차 ‘사건에 진심인 사람’이라고 부를 정도로 윗선을 집요하게 추적했지만 개인의 노력만으론 역부족이었다.

취재진은 윗선의 흔적을 쫓기 위해 대포통장에 주목했다. 사기꾼들이 범죄수익금을 세탁하며 추적을 피하기 위해 대포통장을 필수 도구처럼 쓰기 때문이다. 2003년 ‘대포통장’이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했을 때만 해도 노숙자의 개인 통장을 헐값에 사들여 쓰는 게 일반적이었다.

23년이 지난 현재 범죄자들은 더 이상 노숙자를 찾지 않는다. 대포통장 공급 조직마저 생겨나 텔레그램과 같은 온라인상에서 손쉽게 명의를 제공하겠다는 이들을 모집하고 통장을 찍어낸다. 김철민처럼 회사 한 번 세워 본 적 없었던 이들이 유령 회사를 차려 통장을 만드는 데 걸린 시간은 6일에 불과했다.국내서도 사기꾼 숨통 조일 수 있어

최근 범죄 수법을 보면 대포통장 공급은 체계화된 기업형 비즈니스가 됐다. 불법적으로 범죄조직에 거래되는 대포통장 중 비싼 것은 개당 2000만∼3000만 원에 달한다고 한다. 2003년 25만 원 수준이었던 가격이 100배 이상 뛰었다. 대포통장 공급 조직은 명의 제공자를 해외에 머물 수 있게 하면서 한 달에 300만∼400만 원의 월급까지 준다. 명의 제공자가 자신의 통장에 범죄수익금 수억 원이 수시로 들락날락하는 사실을 알게 되더라도 돈에 손대지 못하게끔 ‘당근’을 던져주는 셈이다.

이처럼 범죄 인프라가 견고해지고 가담자가 조직적으로 양산되는 구조에선 말단의 명의자나 해외 총책을 쫓는 것만 대책이 될 순 없다. 국경 밖 사기꾼을 당장 국내로 잡아 올 수 없다면 결국 국내에서 그들의 숨통을 조여야 한다. 대포통장으로 흘러 들어간 피해자의 돈이 국경을 넘기 전에 말이다. 유령 회사를 척결하는 영국의 방식이든, 각 기관이 공조하는 호주나 싱가포르의 방식이든 방법을 찾는 게 정부와 수사기관의 의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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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성호 히어로콘텐츠 팀장 hsh033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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