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수력원자력을 필두로 한 ‘원전 팀 코리아’가 4일 26조원 규모의 체코 신규 원전 건설 사업을 최종 수주했다. 계약 체결의 발목을 잡은 체코 지방법원의 결정을 이날 최고행정법원이 무효화하자 체코 정부가 바로 계약서에 서명하면서다. K원전이 해외에서 원전을 수주한 것은 2009년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전 이후 16년 만이다.
체코 언론과 한수원 등에 따르면 페트르 피알라 체코 총리는 이날 생중계된 기자 회견에서 한수원과 체코 두코바니Ⅱ 원자력발전사(EDUⅡ) 간 신규 원전 계약이 체결됐다고 공식 발표했다. 지난해 7월 해당 사업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한수원은 당초 지난달 7일 본계약을 맺을 예정이었지만, 프랑스전력공사(EDF)가 제기한 계약 정지 가처분을 체코 브르노 지방법원이 인용하면서 계약이 지연됐다.
계약 직전 佛가처분 인용했지만 현지법원 무효 판결 내자마자
체코 정부 "한수원과 최종 계약"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황주호 한국수력원자력 사장 등은 지난달 7일 계약식을 위해 체코를 찾았다가 빈손으로 돌아왔다. 안 장관은 당시 “불가피하게 계약 체결은 지연됐지만 체결을 위한 공식적인 준비는 다 마무리하고 왔다”며 “체코 정부도 법적 문제가 없다는 것을 다시 확인했다”고 말했다.
체코 정부는 브르노 지방법원의 가처분 인용 판결에 곧바로 항고했다. 4일 최고행정법원이 가처분 결정을 ‘무효’라고 선언했고, 체코 측이 곧바로 계약서에 서명하면서 효력이 발생했다. 체코 최고행정법원은 이날 오전 “계약에 따른 공공의 이익이 계약 금지로 인한 소송 당사자의 이익에 우선하는지 판단해야 했다”고 판시했다. 체코 현지의 공공 조달 법률과 과거 판례를 근거로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체코 정부는 지방법원의 계약 중지 결정에도 본계약 체결 강행 의지를 밝혀왔다. 지난달 7일 애초 계획대로 내각회의를 열고 현지 법원이 가처분 결정을 취소하는 즉시 한수원과 발주사인 EDUⅡ가 곧바로 계약을 체결할 수 있도록 정부 승인 절차까지 마쳤다. 한수원 측도 이미 준비된 계약서에 서명을 마무리하면서 이날 계약이 이뤄졌다.
일각에선 사법적 불확실성이 완전히 해소된 게 아니라는 지적도 나온다. 프랑스전력공사(EDF)가 가처분 소송과 별개로 제기한 본안 소송이 이달 첫 심리를 시작하기 때문이다. 체코 법원의 판결은 통상 1~2년가량 걸린다. 최악의 경우 사업을 추진하던 중 본안 소송에서 패소해 계약이 취소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정부 관계자는 “체코 정부가 계약 지연은 안 된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고, 이미 계약이 체결됐으므로 (EDF가) 소송을 이어갈 실질적 이익이 없을 것”이라고 했다.
EDF는 유럽연합(EU)에 역외보조금 규정 위반 여부 조사를 요청하기도 했다. EU 집행위원회는 외국 기업이 자국 정부의 부당한 지원으로 회원국의 공공사업을 맡는 걸 금지하는 역외보조금 규정을 운영한다. EDF는 한수원이 한국 정부의 지원으로 낮은 가격에 입찰에 참여했다고 주장하며 EU 집행위의 조사를 요청했다. EU 집행위는 조사 여부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본계약 체결로 팀코리아가 체코에 건설할 원전 노형은 APR1000이다. 최대 출력 가능 용량이 1000메가와트(㎿)에 이른다는 뜻이다. 프로젝트 사업비는 4000억코루나(약 26조원)에 달한다. 이번 본계약은 국내 원전 생태계에 활기를 불어넣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원자력학회장을 지낸 정동욱 중앙대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는 “2032~2033년 들어설 신한울 3·4호기와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라) 2037~2038년으로 예정된 국내 신규 대형 원전 2기의 시간 간격을 2036년 준공되는 두코바니 원전이 메우게 됐다”며 “국내 원전업계가 지속 발전할 수 있게 됐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국내 원전 기자재 기업 300곳가량의 동반 수출에도 청신호가 켜졌다. 한국원자력산업협회에 따르면 2022~2023년 원전 분야 중소·중견기업의 총수출액은 1억3225만달러(약 1895억원)로 탈원전 기조가 이어진 2019~2022년 3년간 수출 규모(440만7000달러)의 30배에 달했다.
김리안/김대훈 기자 kn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