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장취업’ 셰프가 일깨운 시행착오의 힘[서광원의 자연과 삶]〈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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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광원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장

서광원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장
우리 삶에서 지위는 중요하다. 그래서 지위의 추락은 사람들의 눈길을 끈다. 높은 곳에서의 추락이 급전직하로 이뤄지고 우여곡절까지 더해지면 비극의 소재가 되기도 한다. 요즘 방송 중인 예능 프로그램 ‘언더커버 셰프’의 인기 역시 본질적으로는 여기에 기반한다. 진짜 추락이 아닌데도 보는 재미가 있다.

‘추락’의 주인공은 국내 스타 셰프 3명이다. 이들은 자신이 전문으로 하는 요리의 본고장으로 가 신분을 감춘 채 수습 생활을 한다. 이탈리아 요리 셰프가 이제 막 요리를 배우는 사람인 것처럼 행동하는 식이다. 주방의 최고 자리에서 최하 서열로의 추락이다. 그런데 이 추락에는 미션이 있다. ‘위장 취업’ 5일 만에 셰프로 인정받아 자신만의 시그니처 메뉴를 메뉴판에 올려야 한다. ‘미션 임파서블’이 따로 없다. 시작하기 전 셰프들은 여유만만했다. 20년이 넘는 경력에 자기 식당까지 운영하는 오너 셰프들 아닌가. 아무리 막내로 시작한다고 해도 실력이 어디 가겠는가.

하지만 현실은 기대를 배반하기 쉬운 법이다. 이들 역시 막내로 시작했고, 자신의 식당에서 수많은 막내를 이끌어 왔지만 낯선 이국 땅에서의 막내 생활은 생각과 달랐다. 실수와 당황, 긴장과 초조, 허둥지둥의 연속은 출근 몇 시간 만에 여유만만했던 마음을 자괴감으로 바꿔 버렸다. “처음 하는 것 치고는 잘한다”는 말을 듣기는 했지만 비단결 같은 자존심이 구겨지는 것은 피할 수 없었다. 처음 해보는 일인 데다 언어까지 서툰 낯선 환경에서는 전문가인 그들도 초보일 수밖에 없었고, 시행착오를 통해 배울 수밖에 없었다. 손에 익지 않은 일을 처음부터 잘할 수는 없지 않은가.

우리는 시행착오를 부정적으로 생각하지만 사실 시행착오는 생명의 역사를 만들어 온 기반이다. 새로운 능력이나 새로운 종을 만들어내는 진화 자체도 끊임없는 시행착오에서 생겨난다. 예를 들어 거대한 덩치와 강력한 턱으로 무려 2억 년 넘게 살아온 악어도 그렇다. 천하무적처럼 보이지만 이들 역시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성체의 4000분의 1 정도인 수십 cm 크기로 시작하는 악어 새끼의 삶은 성체의 삶과는 완전히 다르다. 커서는 물고기를 잡아먹고 살지만, 태어난 뒤 1∼2년 동안은 반대로 언제 물고기의 먹이가 될지 모른다. 하루아침에 덩치를 키울 수도 없고 강한 턱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데도 몇 년이 걸린다. 태어난 악어의 2%만이 성체가 되는 이유다. 이 2%가 되려면 경험이라는 이름의 온갖 시행착오를 통해 능력을 터득해야 한다. 유전자는 기본 소인일 뿐, 이를 강력함으로 키워 삶에 장착하는 건 온전히 자기 몫이다.

그런데 이 중요한 생존의 원리, 아니 생명의 원리를 없애려는 시도가 여기저기서 눈에 띈다. 잘사는 부모일수록 자녀를 시행착오 없이 키우려 하고, 기업은 시행착오가 많은 저연차 직원을 인공지능(AI)으로 대체한다. 별일 없으면 괜찮겠지만 불시에 닥치는 낯선 상황에서는 시행착오라는 경험 자체가 능력이 되는데 말이다. ‘언더커버 셰프’들에게는 감춰둔 실력도 있고 5일 만에 끝나는 미션이지만, 우리 삶은 그렇지 않아서 해보는 생각이다.

서광원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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