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보통합 3법’ 국회서 발목… 예산 못 받은 다문화 학급 ‘번역기 수업’

11 hours ago 1

취약 영유아 기관별 지원 차등
다문화 특별학급 있는 유치원은 한국어 강사가 교육-문화체험
어린이집에서는 번역기로 소통… 야간연장 보육료도 지원 안 돼
장애아통합 어린이집도 상황 비슷… 치료비 지원 없어 심리 치료 중단

지난달 23일 충북의 한 국공립어린이집에서 어린이들이 체육 활동을 하고 있다. 장애아 통합 어린이집으로 운영되는 이곳에서는 일반아동과 특수아동이 함께 생활하고 있다. 이한결 기자 always@donga.com

지난달 23일 충북의 한 국공립어린이집에서 어린이들이 체육 활동을 하고 있다. 장애아 통합 어린이집으로 운영되는 이곳에서는 일반아동과 특수아동이 함께 생활하고 있다. 이한결 기자 always@donga.com
지난달 23일 충북의 한 국공립어린이집에서는 특수학급을 전담하는 교사가 체육 수업이 한창인 교실과 다른 교실을 바쁘게 오가고 있었다. 해당 교사는 체육 수업에 참여한 아이들을 책임지며 소리에 민감해 체육 수업을 받을 수 없는 장애아동을 함께 돌봐야 했다. 이 어린이집의 김향미 원장은 “유치원과 달리 어린이집은 특수학급 전담 교사 인건비가 전액 지원되지 않는다”며 “아이마다 교사를 배치하는 것은 엄두도 낼 수 없다”고 말했다.

초등학교 입학 전 영유아들은 대개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을 다닌다. 하지만 장애나 이주 배경을 가진 취약 영유아의 경우 어디를 다니느냐에 따라 교육이나 돌봄 수준의 격차가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유치원과 어린이집에 대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등의 지원이 다르기 때문이다.

정부가 국정과제로 ‘정부 책임형 유보통합(유치원과 어린이집 통합)’을 추진하고 있지만 관련법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돌봄, 보육의 격차가 학교 입학 이후의 학습 격차로 이어지지 않도록 통합 지원을 서둘러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 취약 영유아, 어린이집·유치원 따라 지원 격차

교육부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장애아 통합 어린이집에 다니는 아동은 6736명, 유치원에서 특수교육을 받는 아동은 8582명이다.

충북의 이 어린이집도 장애아동을 3명 이상 보육할 수 있는 장애아 통합 어린이집이다. 하지만 교육과 치료에 대한 지원이 턱없이 부족해 원장은 어린이집 운영비를 활용해 특수아동의 심리치료를 외부 민간 기관에 맡겼다. 하지만 1인당 월 75만 원의 치료비를 감당하기 어려워 결국 치료를 중단해야 했다. 특수아동을 위한 통학버스 기사 인건비도 감당하기 어려워 원장이 직접 차량을 운전하고 있다.

김 원장은 “별도의 예산 지원 없이는 특수아동을 위한 맞춤 교육을 제공하기 쉽지 않다”며 “어린이집이 해줄 수 있는 게 많지 않아 이 아이들을 보살펴도 되는지 고민될 때가 있다”고 토로했다.

이날 인근 지역의 병설유치원 특수학급에서는 일반아동 5명과 특수아동 3명이 함께 통합교육을 받고 있었다. 이 학급에는 일반교사 1명을 비롯해 유아특수교사 1명, 특수교육실무사 1명, 방과후 과정 교사 1명이 배치돼 있었다. 이 유치원의 고윤아 유아특수교사는 “영유아기는 신체 발달과 함께 어휘 사용 능력 등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시기인 만큼 장애, 발달 지연 아동이 특수교육을 받는 게 중요하다”며 “그래야 다른 어린이들과 함께 지낼 수 있고 이후 발달 격차를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어린이집과 달리 유치원에는 특수학급 교사 인건비가 전액 지원된다. 특수학급에는 매달 평균 15만 원의 치료비와 통학 비용 등도 지원된다. 시도교육청 소속 특수교육지원센터를 통해 치료를 연계할 수 있고 순회 교육, 정서·행동 중재, 보조 공학기기 대여 등도 지원받을 수 있다.

● “초교 입학 전까지 똑같은 지원 필요”

지난달 24일 경기 안산 선일초등학교 병설유치원 다문화 특별학급에서 이주 배경 어린이들이 한국어 수업을 받고 있다. 이주배경 어린이들은 일반학급에서 교육을 받다가 다문화 특별학급에서 따로 한국어 교육과 생활 적응 교육을 받는다. 안산=이한결 기자 always@donga.com

지난달 24일 경기 안산 선일초등학교 병설유치원 다문화 특별학급에서 이주 배경 어린이들이 한국어 수업을 받고 있다. 이주배경 어린이들은 일반학급에서 교육을 받다가 다문화 특별학급에서 따로 한국어 교육과 생활 적응 교육을 받는다. 안산=이한결 기자 always@donga.com
“스빠씨바,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류블류 와스.”

지난달 24일 경기 안산시 선일초등학교 병설유치원 다문화 특별학급에서는 조정애 교사가 이주 배경 아동들에게 러시아어와 한국어를 번갈아 쓰고 있었다. 원생 27명 중 러시아, 우즈베키스탄, 캄보디아 등 이주 배경 어린이가 20명이나 된다.

이곳 이주 배경 어린이들은 일반학급에서 교육을 받다가 다문화 특별학급에서 따로 한국어 교육과 생활 적응 교육을 받는다. 특별학급에는 정규 교사 외에도 러시아어를 구사할 수 있는 한국어 강사가 배치됐다. 한국어 강사는 아이들에게 한국어와 한국 문화 체험을 지도하고 학부모와의 소통이나 상담도 지원한다.

선일초 유치원은 다문화교육 선도 학교로 지정돼 교육부와 경기도교육청의 예산 지원을 받는다. 이를 통해 특별학급 담당 정규 교사와 한국어 강사 인건비가 지급된다. 경기도교육청은 이주 배경 아동을 대상으로 유치원 학비와 방과후 교육 비용도 모두 지원한다.

조 교사는 “한국어를 제대로 가르친다는 게 소문이 나서 외국인 부모들이 유치원에 일부러 찾아올 정도”라며 “어린이들이 초등학교에 올라가서도 학업, 생활 등에서 적응을 잘한다”고 했다.

경기 지역의 인근 어린이집도 전체 원생 37명 중 34명이 중국 등 이주 배경 아이들이다. 하지만 이 어린이집에는 특별학급도 없고, 이주 배경 어린이를 위한 한국어 강사도 없다. 교사들은 “쉬 마려워”, “엄마 보고 싶어” 등 어린이들이 자주 하는 문구를 중국어로 외우고 소통하고, 칭찬을 하고 싶을 때는 번역기를 사용한다.

다행히 지자체가 외국인 보육료를 지원하고 있지만 방과후 지원금이나 야간연장 보육료 등은 전혀 지원되지 않는다. 경제 사정이 좋지 않은 외국인 학부모에게는 이런 비용이 부담이다. 해당 어린이집 원장은 “아이들이 오후 7시 이후에도 어린이집에 많이 남아 있다”며 “지원금이 있다면 한국어 교육이나 현장체험 학습을 더 많이 진행하고 싶은데 그럴 수 없어 안타깝다”고 했다.

● ‘유보통합’ 3법 아직 국회 계류 중

교육부는 이주 배경 어린이가 많이 등록한 유치원을 다문화 교육 선도학교로 선정하거나 한국어 학급 예산을 지원한다. 하지만 지난해 기준으로 이런 지원을 받는 유치원은 다문화 교육 선도학교의 경우 205곳, 한국어 학급 예산은 21곳에 그쳤다. 어린이집은 일부 시도교육청이 가정통신문 번역 등을 지원하지만 언어 발달 지원, 다문화 교육 등을 실시하는 사례는 극히 드물다.

이처럼 어린이집과 유치원에 대한 지원이 다른 것은 영유아보육법 개정안 등 이른바 ‘유보통합 3법’이 아직 국회에서 통과되지 않아 어린이집을 지원할 법적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보육 사무가 보건복지부에서 교육부로 이관됐지만, 유치원은 시도교육청 관할하에서 지방교육재정교부금 예산을 편성받는 반면 어린이집은 정부 예산인 국비와 지자체 예산인 지방비의 지원을 받는다. 예산 편성이 달라 소속 기관에 따라 지원이 다를 수밖에 없다.

교육부는 지난해부터 특별교부금을 통해 유치원과 어린이집 영유아에 대한 지원 격차를 줄이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지만 3년 후면 해당 사업도 완료된다. 김정연 교육부 영유아지원관은 “장애 아동과 이주 배경 아동들이 생애 초기부터 건강한 사회 구성원으로 성장해야 한다”며 “유보 통합 과정에서 취약 영유아가 어디에 다니든 소외받지 않도록 유치원과 어린이집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겠다”고 말했다.

안산=최예나 기자 yena@donga.com
김수현 기자 news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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