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지로 키즈' 발칙한 도발…자개장과 H빔 '낯선 조화' 서울의 서사를 녹여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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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섭 작가. /갤러리느와 제공

김병섭 작가. /갤러리느와 제공

서울은 과거와 현재의 시간이 함께 흐른다. 한 폭의 풍경 안에 600년 역사의 고궁과 최첨단 빌딩, 태고의 자연을 품은 바위산이 담긴다. 서로 다른 세월의 선상에서 어느 한쪽을 침범하지 않고 자아내는 아름다움, 그것이 서울의 실루엣을 만든다. 이 도시에서 나고 자란 가구 디자이너 김병섭은 도시가 지닌 생경함 속에서 조화로움을 이야기한다. 자개장 등 전통 가구와 산업 현장의 스테인리스스틸을 결합해 의자, 서랍장 등의 가구를 만드는 식이다. 서울 강남구 갤러리 느와에서 열리고 있는 전시 ‘메타모포시스(Metamorphosis)’는 김병섭의 첫 한국 개인전이다. 그는 2024년 이탈리아 글로벌 패션하우스 돌체&가바나의 신진 디자이너 프로젝트 ‘DOLCE&GABBANA GenD Vol.2’에 한국 디자이너로는 유일하게 선정되며 국제적 주목을 받고 있는 인물이다. 지난해엔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린 ‘3Days of Design’에서 자개장과 스테인리스스틸을 결합한 의자와 장승을 모티프로 한 선반을 선보여 큰 호응을 얻었다.

다름으로 하나 된 김병섭의 조형 언어

돌체&가바나의 2024 ‘Gen D Vol.2’ 프로젝트에서 선보인 작품. /돌체&가바나 제공

돌체&가바나의 2024 ‘Gen D Vol.2’ 프로젝트에서 선보인 작품. /돌체&가바나 제공

도산공원에 자리한 갤러리 느와는 패션하우스 송지오의 예술적 비전을 선보이는 공간. 이번 전시에서는 1층 스토어의 파빌리온에서 시작해 3층으로 이어지며 9점의 가구와 3점의 평면 작품을 공개했다. 작가의 작업에는 익숙한 것과 새로운 것이 늘 함께한다. 공간 디자인을 전공하고 인테리어회사에서 일한 작가에게 금속은 친숙한 소재인 반면, 길거리에 버려진 한국 전통 가구 자개장은 매우 신선한 것이었다.

'을지로 키즈' 발칙한 도발…자개장과 H빔 '낯선 조화' 서울의 서사를 녹여내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할머니 할아버지 댁 안방에 있던 자개장을 기억한다. 한국 전통 자개 공예를 활용한 이 가구는 1970~1980년대 부의 상징으로 여겨질 정도로 귀한 대접을 받았지만, 1990년대 들어 아파트와 붙박이장이 보편화하면서 애물단지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는 길거리로 내몰린 자개장을 수집해 금속과 결합한 의자를 만들었다. 인테리어 일을 하며 우연한 기회에 프랑스 파리에서 이 의자를 선보인 것을 계기로 해외 갤러리와 아트페어에 참가했다.

작가의 시그너처와도 같은 이 디자인에는 서울의 미감이 녹아 있다. 전통 가구를 사용했지만 세계적 DJ이자 패션 아이콘인 페기 구가 소장했을 정도로 세련된 디자인이 특징이다. 흔히 유학파 디자이너들에게 붙는 ‘밀라노 출신’ ‘파리 출신’과 같은 수식어 대신 김병섭은 작품으로 말한다.

“서울은 이질적인 요소들이 공존하는 도시잖아요. 최신식 지하철의 다음 역을 알리는 안내 멘트에 국악이 배경음악으로 깔리고, 수백 년 역사를 지닌 경복궁을 둘러싼 담벼락 밖으로 한 걸음만 내디디면 하늘을 찌를 듯 높은 건물들이 빌딩숲을 이루죠. 이 모습처럼 서로 다른 시간을 살아온 재료들이 같은 시공간에서 만났을 때의 이질감이 재미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금속은 금속대로, 자개장은 자개장대로 살린 채 결합한 의자를 만들었죠. 다른 시대의 물건이지만 하나로 합쳐지면서 어떤 새로운 기능을 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개다리소반에 금속장을 올린 수납장, 절에서 징을 걸어두던 고리를 등받이로 한 의자, 문화재수리기능장 전문옥 장인이 작업한 장승에 금속 판형을 추가한 선반까지 작가는 과거의 형태를 유지하며 새로운 역할을 부여하는 데 집중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작가의 확장된 세계를 만날 수 있다. 전시장 중앙 벤치와 벽면의 평면 작업이다. 서로 다른 재료를 결합한 이음새를 최대한 숨긴 작업과 달리 한옥의 기둥과 서까래를 활용한 벤치는 경첩과 나사못 등을 노출한 모습이다. 기존 작업 방식을 역전해 쓰임을 다 한 재료가 한데 묶이면 어떻게 기능할 수 있는지를 강조한 것. 벽에 걸린 작업은 금속 표면을 산화시키는 부식액을 발라 만들었다. 주로 총기류를 검게 만들 때 사용하는 부식액을 시간차를 두고 바르거나 농도를 다르게 해 나타나는 색감 차이를 표현했다. 물에 소금과 식초를 섞은 액체로 금속을 부식시켜 비에 맞아 녹슨 듯한 금속의 표면을 보여주거나, 부식액을 흩뿌려 만든 작업도 소개된다.

“부식액으로 산화시킨 금속으로 가구를 제작해보고 싶어요. 가구를 다 만들어놓고 단순히 표면에 바르는 형태보다 조금 더 의미 있게 표현하고자 이것저것 테스트해가며 다양한 방향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첫 의자, 삼성전자 광고에 등장하기도

작가가 대학 시절 동기와 함께 처음 제작한 의자. /작가 제공

작가가 대학 시절 동기와 함께 처음 제작한 의자. /작가 제공

해외 활동의 문을 열어준 작업이 자개장과 스테인리스스틸을 결합한 의자라면, 국내 활동은 대학 시절 과제로 제출한 의자로 시작했다. 동기와 함께 만든 의자가 그저 채점이라는 결과로 끝나는 것에 아쉬움을 느낀 그는 해외 매거진에 자신의 작업물을 소개하는 메일을 보냈다. 한 매거진에 기사가 실렸고, 우연히 이를 본 광고업계 관계자와 연락이 닿아 삼성 비스포크 광고에 소품으로 등장하기도 했다. 처음으로 제작한 의자는 한국 전통 소반의 절반을 잘라 금속 등받이에 붙여 만들었다. “이 일을 하면 재밌겠다”고 느낀 당시의 경험은 지금의 작가 김병섭을 존재하게 한 동력이 됐다. 학교가 아니라 철공소에서 금속을 다루는 방법을 배웠고, 스승을 찾았다.

“을지로 금속공장 단지를 밥 먹듯이 다녔어요. 학교 수업에서는 보통 컴퓨터 프로그래밍으로 렌더링한 3D 이미지를 만드는 게 다거든요. 도면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진짜 내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어봐야겠다 싶어서 무작정 철공소를 찾아갔죠. 시도 때도 없이 들러 사장님들을 자문하다 보니 한 사장님과 친해져서 작업도 같이하고 서로 ‘아버지’ ‘아들’이라고 부르는 사이가 됐습니다.”

옛것과 새것을 결합해 선보이는 작가의 작품은 다각도로 풀이된다. 작가는 자신의 작업에 투영된 시각들에 신선함을 느끼면서도 중요한 영감이 된 서울에서의 서사를 전달하기를 기대해왔다. 전통 가구와 스테인리스스틸을 결합한 작품의 시리즈 이름이 ‘narrative(서사)’인 것도 같은 이유다.

“의자 하나를 가지고도 다양한 해석이 제시되더라고요. 자개장이 한국 전통 공예를 활용한 것이다 보니 한국 전통을 보여주는 전시에 제안을 받기도 하고, 버려진 것을 재활용하는 환경 콘텐츠나 전시에도 적합하고요. 여러 해석과 큐레이팅이 신기하기도 했어요. 그러면서도 내가 왜 이 작업을 하는지를 명확히 보여주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이번 개인전이 좋은 기회가 됐습니다.” 전시는 2월 22일까지.

강은영 기자 qboom1@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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