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만 잘한 게 아니라고? 위스키까지 만든 밥 딜런 [정인성의 예술 한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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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원하는 티모시 샬라메와 벤 스틸러 / 사진출처. 게티 이미지

응원하는 티모시 샬라메와 벤 스틸러 / 사진출처. 게티 이미지

얼마 전, 뉴욕 타임스 인스타그램 계정에서 흥미로운 영상 하나를 발견했다.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 (그와 정반대의 정치 성향을 지닌) 뉴욕 시장 조란 맘다니, 양키스의 전설 데릭 지터 그리고 배우 벤 스틸러와 티모시 샬라메까지. 이색적인 조합의 인물들이 한 공간에 모두 모여 응원을 보내는 모습이었다. 바로 27년 만에 NBA 파이널에 오른 뉴욕 닉스의 홈구장 매디슨 스퀘어 가든이었다.

비록 나는 닉스의 팬이 아니지만 그들이 얼마나 간절한 마음일지 깊이 공감할 수 있었다. 나에게도 20년 가까이 응원해온 스포츠팀이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요즘 같은 사정으로는 엄두도 내지 못할 긴 휴가를 런던으로 다녀왔다. 오로지 22년 만에 리그 우승을 한 아스날의 값진 순간을 함께 축하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닉스 역시 결국 53년만의 값진 우승을 거머쥐었다. 그 결실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뉴욕과 티모시 샬라메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한다. 티모시 샬라메가 뉴욕을 상징하는 전설적인 아티스트 밥 딜런을 연기한 영화 <컴플리트 언노운, 2024>이다.

영화 <컴플리트 언노운> 스틸컷. 밥 딜런 역을 맡은 티모시 샬라메 / 사진출처. 피닉스필름페스티벌

영화 <컴플리트 언노운> 스틸컷. 밥 딜런 역을 맡은 티모시 샬라메 / 사진출처. 피닉스필름페스티벌

<컴플리트 언노운>은 밥 딜런이 1961년 1월 맨해튼 그리니치 빌리지에 첫발을 디딘 순간부터, 1965년 7월 뉴포트 포크 페스티벌에서 세기의 명곡 <Like a Rolling Stone>을 처음 선보이기까지의 여정을 전기 형식으로 담아낸 작품이다. 그동안 그는 고독한 무명의 스무 살 청년에서 포크 장르를 대표하는 아이콘으로 발돋움한다.

처음 맨해튼에 도착했을 때 그의 발걸음이 가장 먼저 닿은 곳은 바였다. 당시 뉴욕의 바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열려 있던 사교의 장이었다. 정치와 예술을 막론하고 뜨거운 담론이 오갔으며, 이방인이 무엇을 물어봐도 답해줄 수 있는 이들이 있었다. 그곳에서 그는 자신의 우상 우디 거스리에 대한 정보를 얻는다. 우디 거스리는 인권과 평등을 키워드로 삼아 사회적인 메시지를 노래했던 포크의 대부였다. 딜런은 포크계의 또 다른 대부인 피트 시거(에드워드 노튼)까지 마주하게 되고, 거장들 앞에서 자신만의 노래를 부르며 그들의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는다.

그 즈음 딜런은 그리니치 빌리지의 거디스 포크 시티(Gerde’s Folk City)와 가스라이트 카페(Gaslight Cafe)처럼 누구나 무대에 설 수 있는 오픈 마이크 공간을 자주 갔다. 그는 훗날 자신을 노벨 문학상으로도 이끈 가사가 담긴 자작곡을 부르며 청중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그 관객들 사이에는 뉴욕 타임스의 저명한 음악 평론가 로버트 쉘톤도 있었다. 쉘톤은 딜런의 독창적인 무대에 매료되어 뉴욕 타임스에 이례적인 칭찬을 담은 기사를 싣는다. 이 기사는 결정적 도약의 발판이 되었다. 기사가 나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대형 음반사인 컬럼비아 레코드의 프로듀서 존 해먼드가 딜런을 캐스팅한 것이다. 존 해먼드는 빌리 홀리데이를 발굴했을 정도로 능력있는 프로듀서였다.

영화 <컴플리트 언노운> 스틸컷. 밥 딜런 역을 맡은 티모시 샬라메 / 사진출처. IMDb

영화 <컴플리트 언노운> 스틸컷. 밥 딜런 역을 맡은 티모시 샬라메 / 사진출처. IMDb

1960년대는 베트남 전쟁과 흑인 민권 운동의 불길이 동시에 타오르던 사회적 격변기였다. 딜런이 써 내려간 날카롭고도 시적인 가사는 당대 청년 세대의 분노와 고뇌를 정확히 관통하며 저항 운동의 찬가가 되었다. 대중의 열광과 거대 음반사의 전폭적인 지지에 힘입어 그는 명실상부한 포크의 아이콘이 된다. 하지만 그는 그 자리에 만족하지 않았다. 왕관의 무게를 거부한 채, 끊임없이 변화를 갈망하며 또 다른 실험을 준비하고 있었다.

1965년 7월, 밥 딜런은 뉴포트 포크 페스티벌의 헤드라이너로 무대에 올랐다. 이 페스티벌은 이름 그대로 오직 순수 포크 음악만을 지키고 찬미하던 축제였다. 그런 자리에서 딜런은 모두의 예상을 깨며 베이스와 드럼을 대동한 밴드와 함께 통기타 대신 처음으로 일렉트릭 기타를 메고 나타났다. 포크에서 포크 록으로의 장르적 전환을 선언하는 역사적인 자리였다. 피트 시거를 비롯해 그를 아끼던 포크 순수주의자들이 느꼈을 배신감과 충격이 얼마나 컸을지는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객석을 가득 채운 함성과 야유, 음악의 패러다임이 뒤바뀌던 당시 공연의 분위기가 궁금하다면 한 번 영화를 통해 확인해 보시기를 권한다.

뮤지션, 작가, 화가, 시인 그리고 조각가. 밥 딜런을 수식하는 형용사는 다채롭다. 그의 거침없는 시도는 2000년대 이후에도 멈추지 않았고, 마침내 자신만의 위스키 브랜드를 만들기까지 이르렀다. 2015년, 버번 위스키 브랜드 엔젤스 엔비(Angel’s Envy)의 전 파트너이자 스피리츠 인베스트먼트 파트너십의 CEO였던 마크 부샬라는 딜런이 부틀렉(Bootleg)이라는 위스키 상표를 출원했다는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한다.

그는 곧바로 딜런에게 아이디어를 현실로 만들어보자고 제안했고, 그렇게 탄생한 버번 위스키 브랜드가 바로 헤븐스 도어(Heaven’s Door)다. 이름은 그의 불멸의 명곡 <Knockin’ on Heaven’s Door>에서 따왔으며, 병 전면에는 미국 전역의 농장과 폐차장에서 수집한 고철 오브제로 딜런이 직접 용접해 만든 조각 작품 아이언 게이트(Iron Gate)가 아름답게 새겨져 있다.

밥 딜런과 헤븐스 도어 / 사진출처. 뉴욕타임스

밥 딜런과 헤븐스 도어 / 사진출처. 뉴욕타임스

헤븐스 도어는 단순히 유명인의 이름을 빌린 위스키 브랜드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 실제로 밥 딜런은 위스키 제조 과정 전반에 깊숙이 관여했다. 마스터 블렌더 라이언 페리의 증언에 따르면, 딜런은 제조 프로세스의 모든 주요 단계에 참여해 최종 제품을 승인하고 피드백을 남겼다.

그중에서도 코어 라인업인 ‘더블 배럴(Double Barrel)’이 탄생한 것은 순전히 딜런의 피드백 덕분이었다. 그는 샘플을 맛본 뒤 ‘더 나무 구조물(Wood structure) 같은 맛’이 났으면 좋겠다는 독특한 의견을 냈고, 이를 반영하기 위해 오크통에 한 번 더 숙성하는 더블 배럴 방식을 도입하게 됐다. 헤븐스 도어 팀이 애를 먹었던 순간은 오히려 딜런이 맛을 표현할 때 시인처럼 묘사하는 버릇이 있어 정확한 의도를 해석해 내는 과정이었다.

마침 더블 배럴을 한국에서도 만나볼 수 있다. 더블 배럴은 두 가지 스트레이트 버번과 100% 라이 위스키를 정교하게 블렌딩한 위스키로, 루이빌에 위치한 켈빈 쿠퍼리지(Kelvin Cooperage)의 새 오크 배럴에서 각각 5년 이상 숙성한 뒤, 토넬러리 라두(Tonnellerie Radoux)에서 특수 제작된 프랑스산 오크 배럴에서 최대 12개월 동안 추가 숙성을 거친다. 딜런이 주문했던 것처럼 나무의 짙은 풍미가 깊게 배어들 수 밖에 없는 제조법이다.

공식 테이스팅 노트에 따르면, 메이플 시럽, 구운 곡물, 다크 체리의 풍미에 상큼한 시트러스, 코코아, 그리고 길고 달콤한 캐러멜 향이 조화롭게 어우러진다고 한다. 실제로 맛을 보았을 때도 묵직한 오크향과 흑설탕, 캐러멜 그리고 은은한 스모키함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무엇보다도 혀 앞을 지긋이 조여오는 쌉싸름한 질감과 목 넘김 뒤에 찾아오는 깔끔한 피니시가 인상적이었다.

헤븐스 도어 더블 배럴, 책바 / 사진제공. ©정인성

헤븐스 도어 더블 배럴, 책바 / 사진제공. ©정인성

현재 헤븐스 도어는 더블 배럴을 비롯해 스트레이트 버번과 스트레이트 라이로 이어지는 코어 라인업 뿐만 아니라 리미티드 에디션인 부틀렉이 있다. 부틀렉은 딜런의 예술적 혼이 담긴 회화가 새겨진 수제 세라믹 병에 담겨 있어 팬들과 위스키 컬렉터 사이에 특히 인기가 높다. 딜런이 무대 위에서 코드와 가사, 간주를 끊임없이 변주하며 새로운 음악을 만들어 냈듯, 부틀렉 시리즈에서는 다양한 숙성 연수와 매시 빌 그리고 캐스크 피니싱을 통해 위스키가 보여줄 수 있는 풍미의 위대한 변주를 전달한다.

밥 딜런이 뉴포트 포크 페스티벌의 무대 위에서 일렉트릭 기타를 메고 세상에 거대한 균열과 변화를 선보인 지도 어느덧 60년이 흘렀다. 그는 여든이 넘은 황혼의 나이에도 여전히 일 년에 100회 가깝게 무대에 오르는 투어를 이어가고 있다. 매 순간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변화를 갈망하는 그의 삶은 뜨거운 열정 앞에서는 세월의 무게조차 무력해진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처럼 끊임없는 열정으로 자신만의 삶을 채워가고 싶은 이들에게 오늘 밤 헤븐스 도어 한 잔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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