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각국이 실시한 ‘반덤핑조사’ 건수가 23년 만에 최고치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 정부의 보조금을 등에 엎은 중국산 저가 물품이 쏟아지면서, 각국이 조사를 강화한 결과다. 이를 놓고 중국의 과잉생산·경기 침체에 미국의 대중(對中) 관세 조치까지 더해질 경우, 중국산 저가 제품의 국내 시장 침투가 더욱 거세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16일 산업통상자원부 무역위원회에 따르면, 세계무역기구(WTO)가 집계한 ‘지난해 전 세계 반덤핑 조사 건수’는 368건으로 2001년 372건 이후 23년 만에 최대치를 기록했다. 2023년 191건과 비교해서는 2배가량 늘어났고, 2022년 89건과 비교해서는 4배 이상 폭증했다.
이는 철강과 화학 제품 등 중국의 저가 밀어내기 수출에 세계 각국이 적극적으로 대응한 결과다. 실제로 지난해 중국산 철강 제품에 대해 덤핑 여부를 조사한 국가는 22개국에 달했다. 특히 올해는 연초부터 베트남, 콜롬비아, 유럽연합(EU), 말레이시아 등이 중국산 철강재에 대한 반덤핑관세 부과에 나선 상태다.
한국 정부 역시 예외는 아니다. 산업부 무역위는 지난해 10건의 반덤핑조사를 개시했는데, 이는 2014년 이후 10년 만에 최대치다. 특히 10건 중 8건은 중국산 제품인 것으로 집계됐다. 최근 10년간 중국산 제품에 대해 한국 무역당국이 실시한 반덤핑조사는 2~4건에 불과했지만, 지난해 조사 건수가 크게 증가했다.
올해도 같은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한국 무역당국이 올해 반덤핑조사를 개시한 5건 중 3건이 중국산 제품이다. 무역위는 올해 3월 중국산 열연강판과 광섬유에 대한 반덤핑조사를 개시한 데 이어 지난달에는 산업용 로봇에 대해서도 반덤핑조사에 착수했다. 현재 무역당국이 반덤핑조사를 수행 중인 10개 품목 중 중국산 제품은 7개에 달한다.
통상 전문가들은 이 같은 추세가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관측한다. 미국발 관세전쟁의 여파로 기존에 미국으로 향하던 중국산 제품이 다른 시장으로 흘러 들어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최근에 무역위가 개최한 국제 행사에서도 EU 등 주요국 참석자들이 중국산 저가 수출 물량에 대해 상당한 우려를 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다른 국가들도 중국에서 나오는 밀어내기 수출 물량을 상당히 경계하고 있고, 앞으로 상당한 물량이 더 나올 것으로 보고 있다”며 “우리도 자유무역의 복원을 기다릴 것이 아니라 국내 산업 보호를 위한 대응 능력을 키워야 한다”고 조언했다.
덤핑 공습에 대비하기 위해 우리 무역당국은 인력 보강에 나선 상태다. 산업부는 올해 무역위 규모를 4과 43명에서 6과 59명으로 키우는 내용의 ‘무역위원회 직제 일부 개정안’을 마련했는데, 이달 말 56명으로 인력이 늘어날 예정이다. 남은 3명은 민간 경력직으로 정해진 채용 절차를 거쳐 내년 4월까지 인선을 끝내겠다는 계획이다. 1987년 무역위가 출범한 이후 가장 큰 규모다.
각국이 덤핑에 대한 대응 수위를 올리면서 우리 수출기업들이 애로를 겪을 수 있다는 점도 문제로 꼽힌다. 최근 영국 무역규제청(TRA)은 한국산 후판(두께가 6㎜ 이상의 열간압연 강판)에 대한 반덤핑조사를 개시했다. 포스코와 현대제철, 동국제강 등 우리나라 메이저 철강 업체들이 대거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베트남도 지난 4월 한국산 아연도금 강판에 최대 15.67%의 반덤핑관세를 임시 부과했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미국의 관세 부과 조치 이후 세계 각국에서 도미노처럼 저가 수출에 대한 피해 조사가 이뤄지고 있다”며 “그 과정에서 우리 수출기업들도 간접적인 피해를 보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