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스로픽 세운 다리오 아모데이
챗GPT로 생성형 AI 시대를 연 오픈AI보다 불과 5년 전 오픈AI를 떠난 이들이 세운 앤스로픽의 기업가치가 더 높게 평가받은 것이다. 올 3월 기준 앤스로픽은 9650억 달러(약 1490조 원)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으며 오픈AI(8520억 달러)를 앞질렀다. 원조가 후발주자에, 그것도 자기 회사에서나간 사람들에게 기업가치를 추월당하는 흔치 않은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이 이야기의 중심에 앤스로픽의 공동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 다리오 아모데이가 있다.》
창업가 이전에 과학자였다
아모데이는 1983년 이탈리아계 가죽 장인인 아버지와 미국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샌프란시스코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어린 아모데이의 관심은 세상의 근본 원리를 밝히는 과학에 있었다. 그는 미 캘리포니아공대(칼텍)에서 물리학을 공부한 뒤 스탠퍼드대로 편입했고, 이후 프린스턴대에서 박사 과정을 밟았다.
그는 프린스턴대에서 전공을 순수 이론물리학에서 생물물리학과 계산신경과학으로 바꿨다. 여기에는 오랜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난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고 한다. ‘어떻게 하면 과학이 사람을 살리는 속도를 더 빠르게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 그를 사로잡았다. 그는 뉴런이 신호를 주고받는 방식을 측정하는 신경회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고, 이후 스탠퍼드 의대에서 암 바이오마커를 탐색하는 박사후연구원으로 일했다.
창업과는 거리가 먼 기초과학자에 가까웠던 그가 AI로 방향을 튼 건 2014년 무렵이다. 바이두와 구글을 거쳐 2016년 오픈AI에 합류한 그는 빠른 속도로 연구 담당 부사장 자리에 올랐다. 오늘날 챗GPT의 씨앗이 된 GPT-2와 GPT-3 개발을 직접 이끌었고, ‘인간 피드백 기반 강화학습(RLHF)’이라는 챗봇의 토대가 된 기법을 공동 개발했다. 거대언어모델(LLM)이 실제로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몸으로 아는 연구자였다.오픈AI에서 조용한 엑소더스
아모데이는 오픈AI에서 모델이 세대를 거듭할수록 기하급수적으로 능력이 커지는 과정을 지켜봤다. GPT-2가 신기한 장난감이었다면 GPT-3는 상품이었고, 그는 다음 세대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누구보다 잘 알았다. 동시에 그는 불안을 느꼈다. 오픈AI는 연구소에서 제품 기업으로 빠르게 변신했다. 샘 올트먼 오픈AI CEO는 매출을 이야기했다. 하지만 안전연구팀은 능력개발팀만큼 조직에서 빠르게 성장하지 않았다. ‘할 수 있는 일’과 ‘통제할 수 있는 수준’의 간극이 세대를 거듭할수록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 그의 판단이었다.
아모데이는 오픈AI를 떠난 근본적인 이유로 신뢰를 꼽는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누군가의 가치관이 그들이 말하는 것과 다르다고 느낄 때, 그리하여 더 이상 신뢰할 수 없을 때 함께 일하기가 어려워진다고 말했다. 또 다른 사람의 비전을 두고 논쟁하는 것은 비생산적이며, 차라리 믿을 수 있는 사람들을 데리고 나와 자신의 비전을 실현하는 편이 낫다고 판단했다고 했다.
결국 2020년 말 그는 오픈AI를 떠났다. 다만 혼자가 아니었다. 동생이자 오픈AI에서 안전·정책 부문을 이끌던 다니엘라 아모데이를 비롯해 회사의 핵심 기술 인재들이 그와 함께 나왔다. 공개 비난도, 트위터 폭로도 없는 조용한 엑소더스였지만, 떠난 이들의 면면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차세대 모델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가장 잘 아는 핵심 인력들이었다. 2021년 이들은 ‘인간 중심’을 뜻하는 단어 ‘anthropic’에서 이름을 딴 회사를 세웠다. 앤스로픽은 팬데믹이 한창이던 시기 줌(Zoom) 회의만으로 출범했다. 초기 멤버들은 샌프란시스코의 작은 공원에 각자 의자를 들고나와 점심을 먹으며 회사의 방향을 논의했다. 2023년 11월 오픈AI 이사회가 올트먼을 전격 해임한 주말, 이사회는 비밀리에 아모데이에게 접근해 오픈AI의 CEO 자리와 두 회사의 합병을 제안했다고 한다. 그러나 아모데이는 두 제안을 모두 거절했다. 자신이 세운 회사의 독립성과 그 회사가 추구하는 안전이라는 사명이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오픈AI-앤스로픽 가른 지향 차이
오픈AI와 앤스로픽이 갈라선 지점은 명확하다. 오픈AI는 ‘모든 사람을 위한 모든 것’을 지향한다. 챗GPT는 글쓰기와 검색은 물론 이미지 생성, 음성 대화, 컴퓨터 자동화까지 거의 모든 것을 한 울타리 안에서 제공한다. 주 사용자 9억 명이라는 대중성도 이 전략의 결과다.
앤스로픽은 정반대의 길을 택했다. 이미지도 음성도 만들지 않는다. 그 대신 깊은 추론, 긴 문서 처리, 코딩에 자원을 집중했다. 클로드는 단순히 코드 몇 줄을 자동 완성하는 수준을 넘어, 개발자가 원하는 바를 설명하면 프로젝트 전체를 계획하고 실행하는 도구로 진화했다. 그 결과 앤스로픽은 기업용 코딩 시장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했고, 이는 매출 폭발과 기업가치 역전의 원동력이 됐다.
오픈AI는 ‘범용인공지능(AGI)으로 인류 전체에 혜택을 주겠다’라는 거대한 사명에서 출발했다. AGI는 특정 분야에서 뛰어난 AI가 아닌 인간 사고능력 수준을 갖는 AI를 말한다. 그 결과 모든 사람과 모든 용도로 서비스를 확장했다. 반면 앤스로픽은 ‘안전하고 신뢰할 수 있는 AI’라는 더 좁고 단단한 신념에서 출발했다. 그래서 신뢰성과 정확성이 중요한 코딩과 기업용 업무에 역량을 집중하며 까다로운 전문가 집단을 확실하게 사로잡는 전략을 택했다.
어느 쪽이 옳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오픈AI의 대중성은 앤스로픽이 따라가기 어려운 자산이고, 두 회사의 최상위 모델 간 성능 격차도 상당히 좁혀져 사실상 대등한 수준이다. 다만 분명한 것은 정점의 조직에서 가치관의 차이로 갈라져 나온 연구자들이 집중이라는 무기로 원조를 추월하고 있다는 점이다.혁신 막는 ‘배신’이라는 프레임
아모데이의 이야기는 한국 기업 생태계에도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핵심 인재가 최고 수준의 조직을 떠나 같은 산업에서 새 회사를 세우는 일은 건강한 생태계에서는 자연스러운 성장동력이 된다. 페어차일드에서 인텔로, 페이팔에서 수많은 유니콘으로 이어진 미국의 역동성은 인재가 자유롭게 흐르고, 그 흐름이 새 기업과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선순환에서 나왔다.
반면 한국에서는 이러한 창업이 종종 ‘배신’이나 ‘기술 유출’의 프레임으로 받아들여진다. 핵심 인재가 나와 새 회사를 차리는 일은 법적 분쟁과 도덕적 비난의 대상이 되기 쉽다. 강도 높은 경업금지 약정과 소송이 인재의 이동을 가로막는 경우도 적지 않다. 정당한 영업비밀 보호는 반드시 필요하지만, 그 명분이 지나치게 넓어지면 한 산업 전체의 인재 순환과 혁신의 물꼬를 막는 둑이 된다.
아모데이는 조직의 방향에 동의할 수 없을 때 침묵하며 남기보다 자신의 신념을 직접 구현하는 길을 택했다. 한국의 많은 조직은 여전히 구성원의 이견을 ‘충성심 부족’으로 해석하곤 한다. 그러나 유능한 인재일수록, 신념이 확고할수록 이를 억누른 채 조직에 머무르지 않는다. 핵심 인재가 가치관의 차이로 떠나는 것을 막을 수 없다면, 차라리 조직 안에서 다양한 의견이 건강하게 부딪치고 검증될 수 있는 문화를 만드는 편이 낫다.앤스로픽의 집중 전략은 한국 기업에 또 다른 시사점을 준다. 한정된 자원으로 글로벌 거인과 경쟁해야 하는 한국 기업이 모든 것을 다 잘하려 한다면 어느 것도 압도하기 어렵다. 반면 한 분야를 선택해 세계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갖춘다면 거대 기업도 추월할 수 있다는 것을 앤스로픽은 보여 주고 있다. 한국에서도 신념을 가진 인재들이 두려움 없이 도전에 나서고, 그들이 새 산업지도를 그리는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
이준만 서울대 경영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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