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대(對)중국 수출 통제는 잘못됐다. 수출 통제는 오히려 중국의 인공지능(AI) 기술 자립과 혁신을 앞당길 뿐이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의 직격에 화들짝 놀랐다. 서슬 퍼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향해 기업인이 정면으로 반대 의사를 밝혀서다. 지난달 21일 대만에서 열린 ‘AI트렌드 통찰’ 포럼에서 나온 발언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젠슨 황의 ‘괘씸 발언’을 문제 삼지 않고 넘어가 또 한 번 놀랐다. 그래픽처리장치(GPU)라는 AI 시대의 원유를 거머쥔 엔비디아의 초격차 경쟁력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AI 시대가 도래하기 전까지 국내에선 그를 매년 용산 전자상가를 찾는 대만계 그래픽카드사 대표 정도로 인식했다.
AI산업은 지난 3년간 대전환을 겪었다. 2022년 11월 챗GPT가 등장한 이후 전례가 없는 규모의 자금과 인력이 AI로 몰렸다. 올해 미국 5대 빅테크 기업의 AI 투자는 450조원 규모로 우리 국가 예산의 약 70%에 달한다. 3년의 AI 기술 진화는 지난 수십 년간의 제조업 기술 변화를 일거에 뛰어넘을 정도로 충격적 규모와 속도로 진행돼 왔다. 하지만 우리는 작년 9월에야 AI국가위원회를 출범하고 뒤늦은 정비에 나섰다. 그마저도 지난해 말 계엄령 이후 활동이 멈춘 상태다.
그사이 중국은 미국에 필적하는 생성형 AI ‘딥시크’를 내놔 세계에 충격을 던졌다. 프랑스는 유럽판 오픈AI를 지향하는 ‘미스트랄’을 앞세워 AI 주권 확보에 나섰고, 심지어 아랍에미리트도 정부 산하 연구기관이 개발한 ‘팰콘’을 통해 중동의 소버린 AI 구축에 뛰어들었다. 지난 3년간의 AI 국가 전략 진공상태가 뼈아프게 다가오는 이유다.
이재명 대통령이 국가 핵심 성장전략이자 1호 공약으로 ‘AI 3대 강국 도약’을 내건 배경에는 이런 위기의식이 자리하고 있다. 향후 5년간 민관이 100조원을 조성해 GPU 5만 개 이상을 확보하고, 전국의 데이터센터 구축 등을 통해 AI고속도로를 만들겠다는 게 핵심이다. 또 한국형 대규모언어모델(LLM)을 개발해 한국 실정에 특화한 소버린 AI를 구축하겠다는 청사진도 포함됐다.
AI 분야에서 지난 2~3년간의 기술 격차는 이제 개별 기업의 투자로 해소하기 어려울 정도로 벌어졌다. 사석에서 만난 한 정보기술(IT) 대기업 CEO는 “수조원의 유보 현금이 있어도 글로벌 빅테크와 경쟁할 수 있는 대형 투자를 감행하기 어려워졌다”고 토로했다.
정부가 길을 내고, 혁신 민간기업이 그 위를 달리는 한국형 모델을 찾아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박정희 정부의 경부고속도로, 김대중 정부의 광통신망 사업처럼 정부가 인프라를 깔고 민간이 그 위에서 경쟁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AI 인프라의 핵심은 단순한 GPU 구매가 아니라 컴퓨팅 파워 확보, 전략적 데이터 운용, 이를 뒷받침할 전력 수급체계다. 슈퍼컴퓨터 보유대수 세계 8위, 연산능력 10위에 불과한 역량을 키워야 한다. 데이터 측면에선 어느 나라보다 잘 갖춰진 공공정보의 체계적 데이터화, 반도체·조선·뷰티산업 분야의 스마트팩토리 등 경쟁력을 갖춘 실물 산업을 AI 데이터 훈련의 핵심 자원으로 삼는 구조화 전략이 필요하다.
전력 문제는 단순히 재생에너지냐 원전이냐의 이분법을 떠나 최적화한 에너지 믹스 방안을 찾는 게 중요하다. ‘AI 국가전략’은 단순한 산업 육성 정책이 아니라 교육·에너지·보안·규제·세제까지 전면 재설계해야 하는 국가의 미래 설계도다. 그렇기에 공개적인 논의와 빠른 결단이 필요하다. 국회와 민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이 참여하는 AI 거버넌스를 구성해 시급성을 공유하고 실행력을 높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