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우의 IT인사이드] 편지로 배송된 최초의 랜섬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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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우의 IT인사이드] 편지로 배송된 최초의 랜섬웨어

세계 최초 랜섬웨어란 수식어가 붙은 악성코드는 진화생물학자인 조지프 포프 박사가 1989년 12월 만든 ‘에이즈 트로이목마(AIDS Trojan)’다. 이전까지의 해킹은 누군가 숨기고 싶은 정보를 빼돌려 다른 사람에게 공개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포프는 이 생각을 뒤집었다. 이용 가능한 정보를 못 쓰게 만든 뒤 다시 보려면 돈을 내라고 하는 방식을 썼다.

당시에는 컴퓨터도 많지 않았고 네트워크에 연결된 컴퓨터는 더더욱 찾기 어려웠다. 대다수 PC는 MS-DOS 운영체제를 쓰고 있었다. 포프는 타인 컴퓨터에 침입할 방법을 고민하다 플로피 디스크를 활용하기로 했다. 그는 ‘에이즈 정보 안내 디스크’라고 적힌 디스크 2만 개를 그해 세계보건기구(WHO) 에이즈 회의 참석자들에게 보냈다.

취업 실패한 생물학자의 복수극

디스크에 동봉된 안내 문구에는 ‘컴퓨터의 다른 프로그램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같은 경고문이 쓰여 있었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신경 쓰지 않았다. 디스크를 실행하면 ‘에이즈에 관한 최신 정보가 포함돼 있습니다’는 문구와 함께 이용자의 에이즈 감염 위험도를 테스트했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면 컴퓨터가 마비되면서 ‘PC 사이보그 코퍼레이션에 소프트웨어 사용 비용을 지불하라’는 글귀가 나타났다. 내야 하는 돈은 189달러(1년 이용료) 또는 378달러(평생 이용료)였다. 컴퓨터 내 파일은 암호 처리되거나 숨김 파일로 바뀌었다.

최초의 랜섬웨어 ‘에이즈 트로이목마’가 담긴 플로피 디스크.

최초의 랜섬웨어 ‘에이즈 트로이목마’가 담긴 플로피 디스크.

피해도 작지 않았다. 이런 방식의 사이버 범죄가 없었던 탓에 파일을 삭제하는 피해자가 많았다. 이탈리아의 한 에이즈 연구기관은 10년 치 연구 데이터를 잃기도 했다. 이듬해 포프는 처음 피해가 발생한 영국에서 기소돼 재판에 넘겨졌는데 랜섬웨어로 번 수익을 에이즈 연구기금으로 기부할 계획이었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WHO에서 파트타임 컨설턴트로 일한 그가 WHO 취업에 실패하자 복수심 때문에 이 같은 일을 벌였다는 의견도 있다.

포프의 에이즈 트로이목마가 사회적으로 주목받았지만 정작 해커들은 오랫동안 랜섬웨어에 큰 관심을 갖지 않았다. 돈을 받는 과정이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 포프는 파나마의 사서함을 이용했다. 이후 해커들은 페이팔 같은 송금 방식을 이용했는데 이 방식 모두 정부 추적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비트코인과 결합해 비즈니스로

비트코인이 등장하면서 상황이 180도 바뀌었다. 2013년 나타난 랜섬웨어 ‘크립토로커’는 빠른 확산과 비대칭 암호화로 악명을 떨쳤다. 더 중요한 점은 비트코인을 몸값으로 요구한 최초의 랜섬웨어란 사실이다. 암호화를 풀기 위해선 비트코인 두 개를 지불해야 했다. 당시 1400~1500달러에 해당하는 금액이었다. 비트코인 확산은 랜섬웨어가 급성장하는 계기가 됐다.

랜섬웨어의 악명이 대중적으로 확산한 것은 2017년 5월 전 세계를 강타한 ‘워너크라이’다. 윈도 운영체제에서 사용되는 SMB(Server Message Block) 원격코드의 취약점을 악용한 악성코드로 네트워크를 통해 스스로 복제·전파되는 웜(Worm) 형태로 확산했다. 며칠 만에 150개국에서 컴퓨터 23만~30만 대가 감염된 것으로 추정된다. 영국 국민보건서비스(NHS)와 스페인 텔레포니카, 러시아 내무부 등 전 세계 공공기관과 기업이 피해를 봤다. 감염된 컴퓨터에는 20여 개 언어로 비트코인 결제를 요구하는 메시지가 떴다. 3일 이내는 300달러, 7일 이내는 600달러 상당의 비트코인을 요구했고 돈을 내지 않으면 파일을 삭제한다고 협박했다.

랜섬웨어는 사이버 범죄자의 주요 비즈니스로 자리 잡았다. 세계 랜섬웨어 피해액은 올해 570억달러(약 77조원)에서 2031년 2750억달러(약 373조원)까지 커질 전망이다. 사이버 범죄 가운데 가장 성장세가 빠르다. 최근 예스24 사례에서 볼 수 있듯 한 번의 감염으로 치명적 피해를 볼 수 있다. 기업이든 개인이든 보안에 대한 경각심을 키우는 것 말고는 대처 방법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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