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애와 이혜영의 악녀 대결 '헤다 가블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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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은 <헤다 가블러>의 달이다. LG아트센터와 국립극단이 입센의 희곡 <헤다 가블러>를 동시에 무대에 올린다. 주인공 헤다 역에 LG아트센터는 이영애, 국립극단은 이혜영을 내세운다. 한국 공연계가 130년 넘은 희곡 <헤다 가블러>에 주목하는 이유는 뭘까.

by_구교범 기자

지난해 전도연의 연극 복귀작 <벚꽃동산>으로 화제를 모았던 LG아트센터는 올해는 이영애를 32년 만에 연극 무대로 초대했다. 작품은 헨리크 입센의 <헤다 가블러>. 국립극단도 딱 하루 차이로 <헤다 가블러>로 관객을 맞는다. 박정희 국립극단장이 직접 연출, '한국 최초 헤다' 이혜영이 주연을 맡는다.

"인간은 자기 자신이어야 한다"…사실주의 희곡 대가 헨리크 입센

이영애와 이혜영의 악녀 대결 '헤다 가블러'

<헤다 가블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작가 헨리크 입센을 알아야 한다. 노르웨이의 극작가 헨리크 입센은 사실주의 희곡의 대가다. 현대 연극은 물론 여성 해방 운동에까지 큰 영향을 미친 작가다. 입센은 1828년 노르웨이의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집이 파산하면서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독학으로 대학 진학을 준비하면서 신문에 풍자적인 만화와 시를 기고했다. 1850년 <전사의 무덤>이 극장에 채택돼 상연된 것을 계기로 대학 진학을 단념하고 작가로 나설 것을 결심했다. 이듬해 베르겐 국민극장의 전속작가 겸 무대감독으로 일하기 시작하면서 훗날 극작가로 대성하는 밑거름을 쌓았다. 입센이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건 이상을 찾아 헌신하다 쓰러지는 목사 브랑을 주인공으로 한 대작 ‘브랑’과 ‘페르 귄트’, ‘황제와 갈릴레아 사람’ 등을 연달아 발표하면서다.

대표작으로는 1879년 발표한 사실주의 연극 ‘인형의 집’이 있다. 주인공 노라가 한 남자의 아내이자 세 아이의 어머니 이전에 한 명의 인간으로서 정체성을 찾기 위해 집을 뛰쳐나가는 이야기다. 이 작품이 세상에 나오자 노라는 신여성의 대명사가 됐고, 입센은 전 세계적으로 이름을 떨치게 됐다. 여성 해방 운동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입센의 친필 원고가 2001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지정되기도 했다. 그는 “인간의 첫째 의무는 무엇인가. 그것은 자기 자신이어야 한다는 것이다”는 말을 남겼다.

사회의 억압 속에서 자유를 갈망한 <헤다 가블러>

<헤다 가블러>는 입센의 또 다른 대표작이다. 1890년 발간된 이 작품의 주인공 헤다 가블러는 우아하고 아름다운 귀족 여인이다. 하지만 이면에 불안, 욕망과 파괴적인 본성을 숨기고 있다.

그는 남편의 성인 ‘테스만’을 거부하고 아버지의 성이자 자신의 성인 ‘가블러’를 붙인 채 살아간다. 그는 결혼 후 권태를 느끼던 중 옛 연인 에일레트를 만나고 복잡한 감정에 휩싸이기 시작한다. 사회적 제약과 억압 속에서 자유를 갈망하는 여성의 심리를 탐구한 작품이다. 남성의 부속품이 아닌 독립적인 여성의 주체를 이야기한 <헤다 가블러>는 17세기 남성 중심적 사회에서 큰 파장을 일으켰다. ‘여성판 햄릿’으로 불리기도 하는 작품이다.

"너나 잘하세요"…이영애가 선보이는 '코믹 헤다'

이영애와 이혜영의 악녀 대결 '헤다 가블러'

이영애가 아름다움과 어두움이 공존하는 여인 헤다로 연극 무대로 돌아온다. "너나 잘하세요"라는 명대사를 남긴 영화 <친절한 금자씨>부터 <대장금> 등의 작품에서 보여준 아름다운 미모 뒤에 복잡 다변한 내면을 숨긴 캐릭터를 무대에서 선보일 예정이다.

이영애의 마지막 연극 출연작은 1993년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개관작 ‘짜장면’이다. 무려 32년 만에 돌아온 연극 무대다. 지난달 8일 서울 강서구 마곡동 LG아트센터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영애는 “20대 중반에 막 연기를 시작할 시기였다”며 “지하철역에서 전단도 나눠주고, 포스터도 붙이고 시키는 대로 다 했던 기억이 난다”고 했다.

이영애와 이혜영의 악녀 대결 '헤다 가블러'

간만에 도전하는 연극에 대해 이영애는 “이번 작품은 대사가 정말 많아 체력적으로 힘들다”며 “1막부터 4막까지 퇴장 없이 작품을 이끌어야 하는 부담도 있다”고 토로했다. 이어 “하루하루 대본을 읽고 연습할 때마다 매번 다른 느낌”이라며 “나도 모르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는 과정을 즐기고 있다”고 말했다.

연출은 제54회 동아연극상 연출상을 받은 전인철이 맡아 첫 대극장 작품에 도전한다. 그는 “입센의 작품 속 여성들은 삶의 의지를 갖고 적극적으로 행동한다”며 “그 힘의 근원에 대해 호기심을 품고 접근했다”고 설명했다.

이번 작품은 2006년 로런스 올리비에상을 받은 연극 및 영화감독 리처드 이어의 각색본으로 제작된다. 전 연출은 이 각색본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원작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인물 간 관계를 정교하게 해석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헤다 역시 기존의 어두운 모습이 아니라 밝고 코믹한 인물로 그려질 예정이다. 전 연출은 “헤다를 안하무인하는 여인이 아니라 그 시대를 살아가려고 노력하지만 고통스러워하는 인물로 그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공연은 오는 5월 7일부터 6월 8일까지 서울 강서구 마곡동 LG아트센터서울에서 열린다.

인간 본질 파고드는 '원조 헤다' 이혜영

이영애와 이혜영의 악녀 대결 '헤다 가블러'

LG아트센터의 작품은 헤다라는 인물을 새로운 각도로 조명하는 작품이라면, 국립극단의 <헤다 가블러>는 '인간의 실존 의지'라는 주제를 더욱 깊게 들여다보는 연극이다. 박정희 국립극단장이 연출을 맡고 이혜영이 헤다 역으로 분한다.

국립극단이 헤다 가블러를 무대에 올린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2년 국립극단이 초연한 <헤다 가블러>는 '한국 최초'로 공연한 헤다 가블러였다. 전회차 전석 매진을 기록하며 화제를 모았고, 당시 헤다를 분한 이혜영은 이 작품으로 대한민국연기대상, 동아연극상 여자연기상을 석권했다.

이영애와 이혜영의 악녀 대결 '헤다 가블러'

국립극단이 선보이는 <헤다 가블러>는 가부장제의 해체와 수동적인 여성상의 거부라는 전통적 분석과는 또 다른 각도로 바라볼 예정이다. 박정희 연출은 “현대 사회에서도 21세기판 헤다들은 존재한다"며 "돈, 명예, 권력 등 사회가 제안하는 가치들을 차지하는데 진절머리가 난 이들은 과감히 자기파괴를 행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국립극단의 헤다 역시 자아를 지키기 위해 마음속에 사회적 가치를 거부하고 자신의 육신까지 저버리는 인물이다. 박 연출은 "보편적 가치라는 말로 개인을 구속하고 강요하는 사회구조가 오늘날에도 여전히 작동한다고 느낀다"며 "자아를 찾고자 헤매고 있는 오늘날의 헤다들에게 우리가 어떤 손을 내밀 수 있는가를 질문하는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국립극단의 <헤다 가블러>는 5월 8일부터 6월 1일까지 서울 중구 국립극단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한다.

구교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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