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고와 지난해 말 일어난 무안공항 제주항공 참사를 비교하는 분석이 많았다. 세부공항의 방위각시설은 비행기가 충돌하더라도 안전하게 설계됐던 반면 무안공항은 규정대로 시설이 지어지지 않아 참사를 키웠다는 것이다.
세부공항 대한항공 사고의 최종 사고조사보고서가 최근 공개됐다. 그런데 보고서는 이 사고 역시 공항이 규정대로 지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했다고 지적하고 있다. 사고의 결과는 달랐지만 근본 원인은 다르지 않았다는 의미다.
당시 세부공항에는 거센 소나기와 급변풍, 수직으로 내리꽂는 돌풍(마이크로버스트)이 수시로 부는 악천후 상황이었다. 대한항공 비행기는 세부에 4번 착륙 시도를 했다. 두 번째 착륙 시도 중 문제가 생겼다. 바퀴가 활주로에 닿는 ‘터치다운’을 코앞에 둔 상황에서 갑자기 마이크로버스트가 발생하면서 비행기를 아래로 찍어 눌렀다. 바퀴는 포장된 활주로 끝단에 못 미친 잔디밭에 먼저 부딪친 후 그대로 활주로 포장 면까지 끌려갔다. 조종사가 급히 복행을 실시했지만 바람과 관성 때문에 비행기가 바로 뜨지 못했기 때문이다.그런데 바퀴가 부딪친 세부공항의 활주로 포장 면은 잔디밭보다 15cm 높게 솟아 있었다. 무게 155t의 비행기를 떠받치는 바퀴가 중력의 1.7배(1.7g)로 내리 찍힌 뒤 시속 250km 넘는 속도로 다시 한번 15cm 턱을 강타한 것이다. 이 충격으로 오른쪽 바퀴에 연결돼 있던 전선과 유압 파이프 등이 모두 깨졌다. 그러면서 비행기의 브레이크를 포함한 모든 착륙장치(랜딩기어) 제어 시스템이 고장났다. 결국 비행기는 활주로 안에 멈추지 못하고 구조물을 치는 사고를 냈다.
여객기 랜딩기어는 최대 중력의 2.6배(2.6g) 충격을 견딜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때문에 현지 조사 당국은 사고의 핵심 원인이 마이크로버스트로 인한 지면 충돌이 아니라 잔디밭과 활주로의 경계 턱에 부딪친 충격이라고 분석했다. 비행기 덩치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15cm 턱이 잘못하면 큰 인명 피해로 이어질 뻔한 사고를 유발했다는 의미다.
필리핀 항공당국과 국제민간항공기구(ICAO)의 공항 설계 규정 등에는 모두 “활주로 포장 면과 잔디밭이 만나는 부분은 굴곡 없이 평평하게 지어져야 한다”는 내용이 있다. 이유도 명확하다. “비행기가 활주로에 못 미쳐 내리거나 활주로를 지나쳐 정지할 때 충격을 주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위와 같은 사고를 막기 위한 목적임이 명확하다. 모든 안전규정에 허투루 쓰인 내용은 없다. 작은 실수나 오류가 대형 사고로 이어지는 항공 분야에선 특히 그렇다. 모든 규정을 지킨다고 해도 사고는 발생할 수 있다. 하지만 안전규정을 제대로 지키지 않은 채 ‘천운’을 기대해서도 안 된다.이원주 디지털뉴스팀장 takeoff@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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