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석 신부, 본인을 빚쟁이라 칭해…남수단에서 필사적으로 헌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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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에는 200여 명의 나환자들이 있는 한 마을을 다녀왔다. 한 달 치의 약을 주면서 한 말 정도의 곡식과 약간의 식용유도 환자들에게 나누어 주고 있는데, 이것 때문에 나환자이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단다. 한 어머니가 네 살 남짓한 자기의 아이를 데리고 왔길래 검진을 해 보니 나병이 아니더구나. 그래서 어머니에게 그 아이가 나환자가 아니라고 축하를 해 주었다. 하지만 기쁨 대신에 실망으로 가득 한 아이와 어머니의 눈을 보면서 가난의 끔찍함을 몸서리치게 느낄 수 있었다. 받을 곡식을 위해 미리 준비해 온, 때 낀 비닐 포대를 채우지 못하고 돌아가는 모녀의 뒷모습을 보기가 너무 안쓰러워 살짝 불러 곡식과 기름을 주어 보냈다.” (‘이태석 신부 서간집’ 중)

올해는 이태석 요한 신부(1962~2010)의 선종 15주기가 되는 해다. 아프리카 남수단 톤즈에서 사랑과 헌신을 실천했던 이 신부의 삶을 기리고 재조명하는 작업이 심포지엄, 전시회, 영화 상영, 출판 등을 통해 이어지고 있다. 12일 부산 서구 이태석신부기념관에서 만난 이세바 관장(신부)은 “세월이 지나면서 이태석 신부를 모르는 사람도 늘어나는 것이 사실”이라며 “이를 안타깝게 여긴 각 단체가 이심전심으로 준비하다 보니 최근 관련 행사가 집중된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이태석신부기념관은 6월 한 달간 ‘선종 15주기 기념전-기적 miracle’과 영화 ‘이태석’ 상영회, 추모 미사, 토크쇼를 연다. ‘이태석신부의 수단어린이장학회’는 ‘이태석 신부 서간집’을, 인제의대 이태석연구회는 10명의 학자가 이 신부의 삶을 분석한 ‘모든 날이 좋았습니다’를 지난달 말 각각 출간했다. 특히 이 신부가 친구와 지인에게 직접 쓴 편지 71통을 중심으로 구성된 서간집에는 이 신부의 고민과 고뇌, 사랑과 헌신, 암 선고를 받고 나서의 인간적인 모습 등이 생생하게 담겨있다. 이 외에도 지난달부터 관련 심포지엄, 영성 강좌 및 미사 등도 열리고 있다.이 신부와 같은 살레시오 수도회 출신인 이 관장은 함께 생활했을 때의 일화도 전했다.

“태석이 형은 재주가 참 많았어요. 그래서 ‘왜 하나님이 형에게는 다 주고 나한테는 하나도 안 줬는지 불공평한 것 같다’라고 푸념했지요. 그랬더니 ‘나는 빚쟁이야. 하나님께 너무 많은 선물을 받아서 다 갚으려면 죽을 때까지 더 많은 일을 해야 해’라고 웃으며 말하더군요. 그래서 그 험한 곳까지 가서 그렇게 필사적으로 헌신했던 게 아닌가 싶어요.”

이 신부가 사목했던 남수단 톤즈의 선교 시설은 지금도 세계 살레시오회가 맡아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인 선교사는 현재는 없는 상태. 3명이 있었으나 질병과 현지 적응의 어려움 등으로 철수했다고 한다. 이 신부가 얼마나 가혹한 환경을 이겨내고 사목 활동을 했는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 관장은 “당시 톤즈에 다른 나라 신부들도 있었지만 지금의 교육, 의료 시설 등은 사실상 이 신부가 거의 다 만들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며 “내전 때문에 총을 들던 아이들이 이 신부가 학교를 세우면서 총 대신 연필을 잡았고, 그 씨앗이 지금은 남수단에서 꽃과 열매로 피어났다”라고 말했다. 당시 제자 중 의사, 의대생이 된 사람만 50명이 넘고, 공무원 언론인 약사가 된 아이들도 상당수라고 한다.“어느 날 갑자기 행복하다고 하기에 ‘형이 생각하는 행복은 뭐냐’라고 물었더니, ‘뭔가를 가져서가 아니라 오히려 가진 걸 그날그날 미루지 않고 나누다 보니 행복해졌다’라고 하더군요.”

이 관장은 “48세란 젊은 나이에 떠나기는 했지만, 이태석 신부가 남긴 사랑과 헌신의 정신은 여전히 우리 곁에 남아있다”라며 “이 신부의 삶을 통해 우리가 지금 잃은 것이 무엇인지 돌아보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라고 말했다.

부산=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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