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편가르기, 혐오, 확증편향 뒤엔… ‘집단에 대한 충성’ 유전자가

6 days ago 5

‘진화인류학’ 책 2권 낸 박한선 교수
맹목적 충성집단, 생존경쟁서 유리
온건한 이들도 모이면 ‘극단적 행동’
올바른 지도자라면 ‘제어’ 노력해야

박한선 서울대 인류학과 교수가 9일 진화인류학 교실 실험실에서 네안데르탈인의 두개골 모형을 앞에 둔 채 웃고 있다. 정신과 전문의이기도 한 그는 생화학 박사 과정을 밟던 2011년 “거시적 관점에서 인간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싶어서” 진화인류학으로 방향을 틀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박한선 서울대 인류학과 교수가 9일 진화인류학 교실 실험실에서 네안데르탈인의 두개골 모형을 앞에 둔 채 웃고 있다. 정신과 전문의이기도 한 그는 생화학 박사 과정을 밟던 2011년 “거시적 관점에서 인간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싶어서” 진화인류학으로 방향을 틀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알다가도 모르겠다’ 싶은 게 인간이다. 변화무쌍한 환경 아래 인간이 어떻게 생존하고 번성했는지에 주목하는 진화인류학이라면 인간성의 본질에 대한 혜안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최근 진화인류학 역사를 담은 연구서 ‘행동 다양성’(에이도스)과 대중서 ‘진화인류학 강의’(해냄)를 발간한 박한선 서울대 인류학과 교수를 9일 서울 관악구 연구실에서 만났다. 정신과 전문의이기도 한 그는 “과거 환경에 적응하며 얻은 인간의 특성이 현대사회와는 맞지 않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최근 정치적 양극화도 진화인류학으로 설명할 수 있나.

“개인은 분자와 같지만 집단이 되면 예상치 못했던 창발(創發) 현상이 나타난다. 개개인은 정치적으로 극단적이지 않더라도, 약간의 경향성이 모이면 집단 전체를 굉장히 극화(極化)시킬 수 있다.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토머스 셸링은, 타 인종에게 비교적 온건한 이들로 이뤄진 마을도, 집단 수준에선 극단적 인종 분리 현상이 일어난다는 창발적 효과를 바둑판 모형으로 입증했다. 정치적 양극화도 비슷한 현상이다. ”

―자신의 믿음과 부합하는 정보만 받아들이는 ‘확증편향’은….

“진화적으로 확증편향이 유리한 경우가 두 가지 있다. 하나는 번식이다. 사랑에 빠지면 상사병에도 걸리고, 콩깍지가 벗겨지기 전까진 그 사람이 최고인 것처럼 느껴지지 않나. 번식할 수 있는 기간이 제한된 가운데, 그런 확증편향 덕에 짝을 탐색하는 추가 비용을 차단하고 번식에 성공할 수 있다. 그게 없으면 인간은 짝을 못 찾는다.”

―다른 하나는 무엇인가.

“집단에 대한 충성이다. 결함이 있더라도 맹목적 충성심을 획득한 집단이 그렇지 않은 집단보다 수십만 년 동안 생존 경쟁에서 유리했다. 맹목성이 합리성을 이기면서, 집단에 무조건 충성하려는 ‘심리적 모듈’을 획득한 것이다. 그래서 특정 집단에 속한다고 인식하는 순간 그 집단이 옳다고 믿어 버리는 경향이 있다.”

―오늘날 사회와는 잘 안 맞는 것 같다.

“친족과 마을에 충성하는 건 유전자나 사회생태학적 조건을 공유하고 있는 이들을 뭉치게 하는 것이라 진화적으로 합리적이었다. 그러나 과거엔 효과가 있었던 심리적 모듈이 네트워크로 연결된 거대 현대사회에선 오작동한다. 충성심이 실체가 불분명한 집단에까지 과도하게 투사되는 것이다. 정치인들이 이를 악용한다. 올바른 지도자라면 이를 제어하고 교정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다른 집단에 대한 혐오는 어떻게 봐야 하나.

“정착 생활을 하면서 가축, 벌레, 분변 등과 가까이 살게 됐고 감염병 위험이 높아졌다. 그래서 사체나 더러운 것에 혐오감을 느끼고 거리를 두려는 경향이 인간에게서 특히 두드러지게 됐다. 이를 ‘행동 면역’이라고 한다. 전염병을 가져올 수 있는 외부인 역시 꺼리는 게 안전했다. 그런 반응이 언어나 피부색, 정치적 입장이 다른 사람을 혐오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미생물의 존재를 모르던 시절 감염의 위험을 줄여주던 반응이, 감염병과 상관없는 무해한 대상에게도 나타나는 것이다.”

―박 교수는 구체적으로 어떤 연구를 하나. “인간의 행동이 다양하게 분화한 까닭을 시뮬레이션으로 연구한다. 예를 들어 사람은 사춘기에 들어서면 임신이 가능은 하지만 성인이 될 때까지 잘되진 않는다. 이를 ‘청소년 준가임성’이라고 하는데, 진화적으로 이 기간이 왜 유지되는지는 설명이 부족하다. 난 최적의 짝을 탐색하기 위함이라는 가설을 세우고 있다. (최근의 저출생은?) 시간을 들여 좋은 짝의 자질을 갖추려는 행동과 서둘러 좋은 짝을 선점하려는 행동 사이에서 개개인이 조금만 전자로 기울어지면 집단은 확 만혼(晩婚)으로 가게 된다.”

―진화적으로 협력의 조건은 무엇인가.

“재회 가능성과 생태학적 다양성, 충분히 긴 수명 등이다. 친족이 아닌데도 협력하는 동물로 인간 외에 흡혈박쥐가 있다. 이 박쥐는 동굴에 모여 살고, 초음파로 서로를 구별한다. 몸에 에너지를 잘 저장하지 못하기에 흡혈에 성공한 박쥐와 사흘 굶은 박쥐는 먹이에 대한 절박함이 다르다. 교환의 필요가 생기는 것이다. 그래서 먹은 박쥐가 토해서 굶은 박쥐를 먹인다. 인간도 그런 환경에서 오래 진화해 왔다. 하지만 요즘처럼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양극화돼 집단 사이에 서로 만날 일이 줄어들면 그만큼 협력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게 될 것이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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