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좋은 승부’의 경험들로 채워나가고 있나요?[고영건의 행복 견문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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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건 고려대 심리학부 교수

고영건 고려대 심리학부 교수
넷플릭스 영화 ‘무도실무관’은 무술 유단자인 주인공의 독백으로 시작한다. “나는 건강과 행복을 위해 재미있는 것만 한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것은 스포츠와 e-스포츠다. 난 항상 이기기 때문이다.” 어떤 이에게 이 말은 꽤 매력적으로 들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심리학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행복한 삶에 그다지 도움이 될 만한 이야기는 아니다.

대결에서 승리하기 때문에 재미를 느끼고 또 그래야만 행복해질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은 행복한 삶을 향유하기가 어렵다. 제아무리 재능이 뛰어난 사람도 패배를 경험하기 마련인데, 그러한 믿음을 갖고 있는 사람은 패배하는 순간 그 이전까지는 자신에게 즐거움을 주었던 바로 그 활동 때문에 불행하다고 느낄 수 있어서다. 사실, 이겨야만 행복해질 수 있는 사람은 설사 대결에서 승리하더라도 승리의 기쁨을 온전히 누리기 힘들다. 승리한 바로 그 순간에도 기쁨보다는 패배하지 않은 것에 대한 안도감을 더 크게 느낄 뿐만 아니라, 다음번에도 반드시 승리해야만 한다는 부담감에 시달리기 때문이다.

인생에서는 승리가 언제나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도 아니고 패배가 늘 우리를 불행하게 만들지도 않는다. 다행스럽게도 인생은 오직 우승자만이 행복해질 수 있는 냉혹한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떻게 승리하고 또 패배의 아픔을 어떻게 극복해 내는가이다.

행복한 삶을 위해서는 좋은 스승으로부터 ‘승부의 기술’을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 승부의 기술은 삶을 ‘승리를 위한 승리’가 아니라, ‘좋은 승부’의 경험들로 채워 나가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조훈현과 이창호 간 사제 대결을 다룬 영화 ‘승부’는 인생의 지혜를 잘 보여준다.

조훈현은 한국의 바둑계에서 전관왕을 달성하고 세계대회에서도 우승을 하는 등 한때 세상을 호령한 천재 기사다. 하지만 그는 43세 때, 숙식을 함께 하며 가르친 ‘내제자’ 이창호에 의해 왕좌를 박탈당했다. 이창호는 불과 15세 때 처음으로 스승의 타이틀을 빼앗기 시작해 그 후로 5년 만에 자신의 스승을 무관(無官)의 신세로 전락시켰다.

그 충격으로 조훈현은 정신적인 방황을 했다. 그러던 중 자신을 내제자로 받아주었던 스승, 세고에 겐사쿠(瀨越憲作)로부터 오래전에 배웠지만 잊고 지내던 인생의 지혜를 새롭게 떠올리게 된다. 세고에는 제자들에게 바둑의 기술보다는 인격을 배우게 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조훈현에게 바둑에서 중요한 것은 상대방과의 대결에서 승리하는 게 아니라 자기 자신과의 대결에서 승리하는 것이라는 가르침을 주었다. 좋은 승부는 혼자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상대와 함께 할 때만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좋은 승부를 위해서는 겨루는 사람이 모두 ‘패배를 우아하게 받아들일 줄 아는 지혜’를 갖춰야 한다. 패배는 우리를 아프게 하지만 우리가 그 아픔을 극복한다면 성장의 기회가 될 수 있다.

마침내 애연가연던 조훈현은 담배를 끊는 등 심기일전해 제자에게 승리하는 동시에 이창호가 꿈꿨던 전관왕의 목표를 좌절시켰다. 그리고 패배의 아픔으로 괴로워하던 이창호에게 자신이 스승에게서 배운 승부의 지혜를 전해준다. 이처럼 좋은 스승은 제자에게 패배를 우아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지혜를 가르쳐 줄 뿐만 아니라, 인생을 좋은 승부의 경험들로 채우는 노하우도 전수해 준다. 이것이 바로 우리에게 좋은 스승이 필요한 이유다!

고영건 고려대 심리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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