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독하다 보면 슬그머니 싹트는 궁금증. ‘글쓴이는 어떤 사람일까.’ 번역 외서(外書)가 쏟아지는 시대지만 해외 저자는 만남의 문턱이 높죠. 한국 독자와 해외 작가 간 소통을 주선합니다.
⑧우주여행자를 위한 생존법-폴 서터 천체물리학자·미국항공우주국(NASA) 고문
팝스타가 우주여행을 떠나고 괴짜 억만장자는 화성 이주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나섰다.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은 3000만 광년 떨어진 은하의 모습을 생생하게 전한다.
어느덧 우리는 미지의 우주에 제법 친숙해졌다. 우주를 향한 인류의 끝없는 호기심과 탐구 정신이 이룬 성과다. 파랗게 빛나는 지구와 황홀한 별 무리… 우주가 보여준 속살은 더없이 아름답고 찬란했다.‘우주여행자를 위한 생존법’(오르트)는 우주를 대하는 태도를 다룬다. 우주의 매력에 취하기 전에 우주 방사선, 운석과의 충돌, 암흑물질 같은 위험부터 숙지하라고 경고한다. 날아온 위성 잔해에 농담을 나누던 동료를 잃은 주인공이 죽음의 공포와 싸우는 영화 ‘그래비티’(2013)를 활자화한 것 같다.
우주끈 암흑물질 웜홀 같은 개념과 용어는 낯설고 어렵다. 그래도 챕터마다 시(詩)를 배치하고 문체는 유머러스한 덕에 도전하는 마음으로 책장을 넘기게 된다. 한 스푼 한 스푼 어려운 내용을 떠먹여 주는 내공이 미국을 대표하는 과학 커뮤니케이터 답다.
천체물리학자, 미 항공우주국(NASA) 고문, 과학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하는 폴 서터 박사는 e메일 인터뷰에서 “거대한 블랙홀 주변 자기장에서부터 빅뱅 초기 순간들까지 다양한 주제를 연구해 왔다”며 “이 책을 통해 바로 우주의 경이와 신비에 대해 나누고 싶었다”고 했다.
자동차로 수직으로 내달리면 1시간 만에 우주 도착
―책 제목에서 ‘생존법’을 강조했다. 태양 복사, 자기장, 우주선(宇宙線) 같은 우주의 위험성을 알리고자 한 이유가 있나.“우주의 위험을 통해 우리가 사는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놀라운 물리 현상들을 강조하고 싶었다. 일상에서 다루는 수학이나 방정식은 일반인이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에, ‘당신이 이런 상황에 놓인다면 어떤 느낌일까’를 상상하도록 해서 독자들이 물리학과 연결되도록 하고 싶었다.”
―우주에서 인류에게 가장 큰 위협이 되는 요소는 무엇인가.
“장기적으로 인류가 가장 크게 우려해야 할 위협은 소행성 충돌이다. 도시를 파괴하거나 그 이상일 수도 있다. 다행히도 이런 사건은 매우 드물기 때문에 당장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NASA 고문으로서 구체적으로 어떤 역할을 맡고 있나.
“NASA의 ‘혁신적 선도 개념 프로그램(NAIC)’에서 자문 역할을 맡고 있다. 차세대 우주 탐사와 여행을 가능하게 만들기 위한 연구를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 미래를 바로 앞에서 지켜보는 자리인 셈이다. 금성의 대기에서 비행할 수 있는 로봇, 태양 중력을 활용해 태양계 바깥 행성들을 촬영하는 망원경 등을 연구한다. 동료 과학자들의 창의력에 늘 감탄한다.”
―일반 대중이 우주에 대해 가장 크게 오해하고 있는 점은 무엇인가.
“많은 사람이 우주를 매우 멀리 떨어진 곳으로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매우 가깝다. 우주의 경계는 지상에서 불과 100km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만약 자동차로 곧장 위로 달릴 수 있다면 한 시간도 안 걸려서 도달할 수 있다.”
“과학은 대중의 것”
―TV, 팟캐스트, 책, 무용 공연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과학을 알리고 있다. 과학 커뮤니케이션에 적극적인 이유가 있나.“과학 연구는 대부분 대중의 세금으로 이뤄진다. 대중은 자신들의 돈으로 이루어진 연구가 어떤 성과를 냈는지 알 권리가 있다. 과학자들이 이 아름다운 지식을 독점해서는 안 된다고 믿는다. 내 좌우명은 ‘과학은 나누기 위한 것(Science is for sharing)’이다. 과학은 대중의 것이다!”
―많은 이가 과학을 어렵다고 여기고, 대부분 뉴스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접한다. 대중과 효과적으로 소통하기 위한 과학의 역할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대부분의 사람은 과학의 희미하고 제한된 결과만 접한다. 그 이면에 있는 과정이나 방법은 잘 모른다. 하지만 과학은 단순한 사실의 나열이 아니라 ‘발견의 과정’이다. 나는 대중이 이 여정에 동참하길 바란다. 그래서 과학자 동료들에게 자신의 탐구 과정, 시련, 도전, 발견의 이야기를 나누라고 권한다.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인간의 이야기이고 대중과 공유할 수 있는 가치다.”
―UFO, 영화, 만화, 연극 등 다양한 프로젝트에 자문역으로 참여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경험이 있다면.
“뉴욕 비영리 무용단 ‘사이렌 모던 댄스’와의 협업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시간의 본질’을 주제로 공동 작업했고, 나도 공연에 참여했다. 물론 무용수로는 아니었지만. 몇몇 장면에서 내레이션을 맡고 무용수들과 무대 위에서 서로 교감했다.”
―과학자로서 우주를 가장 정확하게 묘사한 대중 작품을 고른다면.
“우주 탐사에 대한 도전과 현실을 가장 정확하게 그려낸 영화 ‘마션(The Martian, 2015)’을 꼽고 싶다. 과학 자체가 주인공인 훌륭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최근 전 세계적으로 우주 탐사 경쟁이 치열하다.
“민간 우주항공기업이 급성장하면서 분명히 우주 탐사의 새로운 장에 진입했다. 대부분 기업은 우주 관광이나 위성 인터넷 같은 상업적 목적에 집중하고 있지만, 그들의 성장은 결국 과학 연구에 엄청난 기회를 열어 줄 것이라 믿는다.”
―일론 머스크는 인류가 다(多)행성 종족이 돼야 한다며 화성 식민지화를 주장하고 있다.
“머스크가 잘못 판단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장기적으로는 인류가 다행성 종족이 돼야겠지만, 다른 행성을 식민화하는 데는 엄청난 비용과 자원이 드는데 그렇게까지 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보지는 않는다. 현재로선 지구의 주인 역할에 충실하는 것이 시급하다. 지구를 잘 돌봐야 한다.”
우주에서 ‘겸손’과 ‘공감’ 배워
―우주 개발과 관련해 가장 인상적인 활동을 보여주는 단체나 개인을 든다면.“언론에 나오지 않는 사람들이 가장 인상적이라고 생각한다. 칸막이 안에서 일하는 엔지니어, 문제와 고집스럽게 싸우는 과학자, 창의적인 해결책을 찾아내는 기술자. 이들이야말로 인류의 우주 진출을 현실로 바꾸고 있는 주역들이다.”
―우주 개발 경쟁이 치열하다. 공동 자산인 우주를 둘러싼 국가간 불협화음이 불거지기도 한다.
“우리는 산업과 우주 개발을 원활히 지원할 수 있도록 다국적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현재 민간기업들은 사실상 어떤 책임도 지지 않으면서 거의 모든 것을 제약 없이 실행할 수 있다. 1960년대에 만들어진 국제 조약만으로는 공공의 이익을 보호하는 동시에 민간 산업을 촉진하기엔 역부족이다.”
―언론 매체를 통해 미국의 과학 정책을 적극적으로 비판하고 있다. 가장 시급한 과학 정책 과제를 꼽는다면.
“미국에서 과학자로 살아가기 힘든 시기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과학계 모든 분야에 막대한 피해를 줬다. 미국이 세계 과학을 선도하는 자리에서 밀려날까 우려된다. 많은 동료가 직장을 잃고 연구를 중단하고 있다. 그렇지만 대중은 과학자가 하는 일을 본능적으로 사랑한다. 과학계가 이 상황을 극복할 방법을 찾을 것이라고 믿는다.”
―현재 우주 탐사 상황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무엇인가.
“우주에 접근하는 방식이 그 어느 때보다 다양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공공기관, 민간기업, 국제 협력이 모두 활발하게 이뤄지면서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기술이 쏟아지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이 우주의 신비를 풀어가는 데 큰 도움을 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주여행자를 위한 생존법’은 우주에 대한 무한한 상상력을 자극하는 선물 같은 책이다. 천문학이나 물리학을 공부하는 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자질이나 소양은 무엇인가.
“우주를 공부하면서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겸손’과 ‘공감’이다. 우리는 이 작고 보잘것없는 행성 위에 함께 사는 존재들이다. 서로 잘 지내는 법을 배워야 하지 않을까?”
―각 장마다 등장하는 고대 천문학자들 시가 인상적이다.
“영국의 고전 시 ‘늙은 선원의 노래(The Rime of the Ancient Mariner)’에서 영감을 받았다. 이 책에 시대를 초월하는 감성을 불어넣고 싶었다. 마치 먼 미래에 우주여행이 너무나도 일상화돼서 (우주여행에 관한) 옛 이야기와 시, 격언들이 세대를 거쳐 전해지는 그런 세상을 떠올리며 썼다. 아직 우리는 그 지점에 도달하지 않았지만, 언젠가는 꼭 도달하길 바란다.”
이설 기자 snow@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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