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 때문에 지옥갔어요”…고향 흔적을 새 땅에 새긴 디아스포라 [사와닉값]

1 week ago 11

“일본인 때문에 지옥갔어요”…고향 흔적을 새 땅에 새긴 디아스포라 [사와닉값] “내 고향에는 큰 호두나무가 있었지.” 프랑스 화가 카미유 피사로의 ‘에라니의 봄’. 1886년 작품. 삶이 찌들어갈 때쯤이면, 고향 생각에 눈물겹다. 엄마의 냄새가 남아있는 곳, 아이 시절 깔깔대는 웃음소리가 메아리치는 곳. 그곳이 고향이니까. 갈 수 없는 땅이면, 고향 생각은 더 눅진해진다. 진득한 그리움을 달랠 길 없어, 터 잡은 새 땅에 고향 땅 이름을 붙여본다. 먼곳에서 들바람이 엄마의 냄새를 실어 온다.인간은 실향(失鄕)하며 살아왔다. 누군가는 역사의 파고에 휩쓸려서, 어떤 이는 입에 풀칠하기 위해서 고향을 등졌다. 실향민들은 이주의 고통 속에서도 고향을 잃지 않았다. 언젠가는 다시 만날 것이란 굳건한 믿음으로, 새 땅에 고향 이름을 새겼다. 실향민의 마음은 동·서양을 관통하는 것이어서, 지구 곳곳의 지명에 디아스포라의 눈물이 얼룩져 있다.이민자들의 나라, 미국아테네·베를린·로마. 유럽의 주요 도시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대서양 건너 미국 땅에도 정확히 똑같은 지명이 존재하니까. 미국이 이주민의 땅이자 동시에 실향민의 땅이기 때문일 것이다.초기 미국은 유럽의 축소판이었다. 영어, 프랑스어, 스페인어가 제가끔 ‘땅따먹기’를 했기 때문이다. 영국인이 지배한 미국 북동부 13개 식민지에는 영국 지명이 그대로 옮겨졌다. 고향 땅을 향한 그리움과 새 땅을 향한 지배욕이 섞여 있었다. 뉴욕은 새로운 요크로 이미 잘 알려져 있다. 플리머스, 케임브리지, 에식스, 서식스 등 영국식 지명이 시나브로 늘어갔다. 원주민의 땅도 그만큼 줄어들었다. “이제 축구 대신 미식축구를 봐야 하나.” 미국 화가 로버트 월터 웨어의 ‘북미로 향하는 순례자들’. 1844년 작품. 중부 일대는 프랑스인들이 차지했으므로, ‘루이지애나’라는 이름이 붙었다. 루이 왕의 이름이라는 의미였다. 루이지애나주 카운티 행정 구역인 ‘패리시’(Parish)로 통하는데, 프랑스 수도 파리와 이름이 통한다.미국이 좀 더 어엿해지고, 유럽이 점점 암울해졌을 때, 많은 이들이 대서양을 건넜다. 미국 이민자의 절대 숫자가 늘어나면서, 그들의 국적 역시 다양해졌다. 특히 독일 출신이 급격히 늘었는데, 그만큼 독일식 지명이 늘어났다. 미국에 ‘베를린’이라는 이름이 11개에 달할 정도다. 지명은 국제 정치로부터 자유롭지 않아서, 1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에서 반(反)독일 정서가 팽배해지자, ...

Read Entire Artic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