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데우스 로팍 이강소 개인전
추상화·수묵화의 절묘한 조화
감상자 상상으로 완성된 회화
서울 한남동서 8월 2일까지
예술이란 대개 작가의 감정표현을 감상자에게 전달하는 선형적인 과정을 거치게 된다. 이때 중요한 건 작가의 ‘의도’다. 그는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가, 이 작품은 무엇을 지시하는가에 관한 질문이 작품을 봄과 동시에 시작되는데, 모두가 그에 걸맞은 답을 찾아내려 한다.
그러나 이강소 작가는 ‘회화는 단일한 답을 요구하지 않는다’고 선언한다. “내 그림은 보는 사람마다 다른, 사상으로 완성하게 되는 그림이에요. 그것이 현대적인 회화의 가능성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개인전 ‘연하(煙霞)로 집을 삼고 풍월(風月)로 벗을 사마’를 여는 이강소 작가를 지난 12일 서울 용산구 갤러리 타데우스 로팍 서울에서 만났다. 퇴계 이황의 ‘도산십이곡’ 제2곡의 한 문장으로 ‘안개와 노을로 집을 삼고, 바람과 달로 벗을 삼다’란 뜻이다.
무채색의 붓끝에서 탄생한 이강소의 작품은 추상화와 수묵화의 어딘가를 맴돈다.
하지만 그 회화 속 사물들은 각각의 서사를 담지 않고 있다. 작가의 말처럼 ‘의도 너머의 상상’으로 완성되는 회화들이기 때문이다.
“금강산 하나만 봐도 모두가 다르게, 모두가 자유롭게 보지 않습니까. 서양 현대미술은 감정표현을 감상을 통해 주입시키는 시스템이에요. 그건 근대적인 방향이지요. 하지만 적당하게 덜 그리고, 적당하게 실수하며 그렸을 때 보는 사람마다 상상하면서 작품을 완성하게 됩니다. 내 그림은 그래서 ‘어벙’하지만 감상자가 완성하게 되지요. 그런 점에선 ‘헛것’을 그리는 것이기도 하지요.”
희고 검은 포유류의 실루엣이 전시장의 여러 캔버스를 떠돈다.
1991년작 ‘무제-(N)91142’와 같은 해 그려진 ‘무제-90207’이 그렇다. 굵은 선으로 그려진 사슴과 흰 여백으로 표현된 소, 그리고 검게 겹쳐진 이름 모를 동물들은 어떤 ‘이야기’를 담는다거나 사물을 사실적으로 재현한 것들이 아니다. 그 녀석들은 이강소 작가의 손에서 34년 전 이미 떠났다. 그림 속의 의미는 감상자 개개인이 만들어낸다.
그래서인지 이번 전시에 소개된 작품들을 관통하는 하나의 공통점은 작가의 개입이 최소화되는 작품들이란 사실이 어렵지 않게 다가온다. 전시장 곳곳에 설치된 그의 조각 작품도 그렇다. ‘점토 덩어리를 공중에 던져 중력에 의해 낙하시키는’ 조각들이다. 1994년작 ‘무제-94095’이 대표적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손을 떠나서 하는 조각은 없었잖아요. 던진다는 것은 기운과 세계와 나와의 유기적인 관계를 맺습니다. 던지는 조각이자 스스로 만들어지는 조각이에요.”
하단의 나룻배 한 점이 유독 눈에 띄는 1988년작 작품 ‘무제-88008’은 더 유심히 보게 된다. 이번에 소개된 이강소의 작품들에선 배가 총 3척이 발견되는데, 이 배들이 향하는 목적지는 불분명하다. 이미 도달해 정박해버린 것인지, 아니면 오늘도 어디론가 떠나려는 건지도 알 수가 없다. 여전히 가닿지 못할 예술의 어딘가를 모색 중인 그의 삶처럼. 전시는 8월 2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