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을 넘긴 갤러리들은 단순히 상업 공간을 넘어 동시대 미술의 흐름과 궤를 같이한 역사적 공간, 혹은 ‘작가들의 두 번째 작업실’로 평가받는다. 한국은 물론 국제 미술시장을 주름잡는 미국, 유럽 등에서도 오랜 역사를 이어온 갤러리는 손에 꼽는다. 마르크 샤갈 등 프랑스 파리 예술가들의 중심지 역할을 했던 매그 갤러리(1945년 설립), 전후 일본 현대미술과 아시아 미술의 허브 역할을 한 도쿄화랑(1950년 설립) 정도가 대표적이다.
잘나가는 화랑은 많지만, 오래가는 화랑은 많지 않은 이유가 뭘까. 대개 창업주가 작고하면 화랑이 지켜온 철학이 이어지지 않거나 세대교체에 실패하는 경우가 많아서다. 창업주의 인맥에만 의존하다가 미술시장 변화에 대응하지 못하는 게 결정적인 실수다. 미국 뉴욕 소호와 첼시 갤러리 시대를 연 전설적 갤러리스트 폴라 쿠퍼가 최근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자 해외 미술계에서 지속가능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이런 점에서 갤러리현대의 세대교체 연착륙은 미술계 안팎에서 흥미로운 주제다. ‘가장 최신의’라는 뜻을 담은 화랑의 이름을 정체성으로 삼으면서도 확연히 다른 취향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사뭇 다른 모자의 예술 취향은 입맛에서도 드러난다. 갤러리현대는 이탈리안 레스토랑 ‘두가헌’을 운영 중이다. 청전 이상범의 수묵화 등이 걸린 이곳은 한국 컬렉터 입맛을 고려한 게 특징으로, 박명자 회장의 색깔이 강하다. 반면 도형태 부회장이 지난해 잠시 운영한 서울 청담동의 ‘에밀리오’는 보다 과감하다. 라이언 갠더의 설치 등 현대미술 작품이 걸렸던 이곳은 이탈리아 시칠리아 현지의 입맛을 강하게 밀고 나갔다. 한 미술계 관계자는 “두 레스토랑이 이탈리안이라는 틀 안에서 서로 다른 취향을 보여준 건 현직 대표의 심미안을 비교하는 것과 비슷했다”고 말했다.
유승목 기자 mo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