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예산군의 상설시장은 한때 전국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지방 전통시장이었다. 인구는 줄고, 상권은 늙어갔다. 장날이 아니면 사람을 찾기 어려운 지방 시장의 전형적인 모습이었지만 최근들어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주말이면 젊은 방문객들이 줄을 서고, 시장 안 식당과 점포 앞에는 휴대폰을 든 관광객들이 몰린다. ‘백종원 시장’이라는 별칭까지 붙었다.
예산 상설시장은 지역 전통시장이 살아나는 방식이 달라지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독특한 사례다. 과거 전통시장 활성화 사업은 무작정 주차장을 만들고, 아케이드를 씌우고, 간판을 바꾸는 방식이 많았다. 시설만 좋게 고치면 손님이 돌아올 것이라는 접근이었다. 하지만 소비자는 더 이상 물건을 사기 위해서만 시장을 찾지 않는다. 먹고, 찍고, 공유할 만한 경험이 있어야 지갑을 연다.
예산시장이 주목받는 이유는 '전통시장을 체류형 관광 콘텐츠'로 바꿨다는 데 있다. 고기와 국수, 지역 농산물, 술, 간식을 한 공간에서 즐기는 구조가 만들어지면서 시장은 장보기 공간을 넘어 외지인이 일부러 찾는 목적지가 됐다. 저녁 소비가 가능해지자 관광객이 당일치기로 빠져나가지 않고 지역에 머물 명분도 생겼다. 방문객 수보다 체류 시간이 고민인 지방자치단체들이 예산시장 모델을 주목하는 이유다.
먹거리 중심의 '관광형 상권'
더본코리아는 지역 특산물을 활용한 메뉴 개발과 청년 창업자·상인 교육을 맡았다. 예산군은 주차장과 보행 환경 등 기반시설을 정비했다. 시장의 노후 이미지를 걷어내고 ‘일부러 찾아가는 시장’으로 바꾸는 작업이 동시에 진행된 셈이다.
방문객도 빠르게 늘었다. 예산시장은 지난달 기준 누적 방문객 1000만명을 넘어섰다. 단순히 장을 보러 오는 생활형 시장을 넘어, 외지 관광객이 일부러 찾아와 먹고 머무는 목적지로 자리 잡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상인들도 변화를 체감하고 있다. 지난 26일 예산시장에서 만난 한 상인은 “예전에는 장날에도 사람이 별로 없었는데 지금은 주말이면 정신이 없을 정도”라며 “외지 손님이 늘면서 주변 가게까지 같이 살아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연돈볼카츠 점주는 “한때 매출이 흔들렸지만 지금은 월 3000만~4000만원 수준까지 회복됐다”며 “시장을 찾는 손님이 꾸준히 이어지는 게 가장 큰 힘”이라고 했다.
싼값만으론 부족…‘콘텐츠’가 된 전통시장
예산시장 모델이 눈길을 끄는 것은 ‘상설시장’이라는 점이다. 전통시장은 보통 5일장 이미지가 강하다. 특정 날짜에만 사람이 몰리고 평소에는 상권 유지가 쉽지 않다. 반면 상설시장은 매일 문을 여는 생활 상권에 가깝다. 여기에 관광 수요가 붙으면 지역 주민의 생활 소비와 외지인의 목적 소비가 동시에 일어난다. 지방 시장이 명절이나 장날 특수에만 기대지 않고 평일과 주말을 모두 노릴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예산시장 실험은 최근 유통업계 흐름과도 맞닿아 있다. 대형마트와 편의점, 쇼핑몰은 더 이상 상품만 팔지 않는다. 팝업스토어, 체험형 매장, 지역 특산물 기획전 등을 앞세워 소비자가 머무를 이유를 만든다. 전통시장도 마찬가지다. 싸다는 이유만으로 소비자를 붙잡기는 어렵다. 굳이 시간을 내 찾아오게 만들려면 시장 자체가 콘텐츠가 돼야 한다.
과제도 적지 않다. 특정 인물의 인지도에 지나치게 의존하면 지속성이 떨어질 수 있다. 방문객이 몰리는 과정에서 임대료가 오르고 기존 상인들이 밀려나는 젠트리피케이션 우려도 있다. 일부 인기 점포에만 손님이 쏠리고 시장 전체로 소비가 확산되지 않으면 활성화 효과는 제한될 수밖에 없다.
지역개발 사업이 ‘반짝 흥행’으로 끝나지 않으려면 운영 주체, 상인 교육, 메뉴 품질, 가격 관리, 주차·위생·안전 같은 기본기가 함께 따라가야 한다. 시장을 찾은 소비자가 한 번 방문에 그치지 않고 다시 찾게 만드는 구조를 갖추는 것이 관건이다.
유행은 빠르게 번지지만 그 이면은 쉽게 보이지 않습니다. ‘트렌드워치’는 뜨는 소비 트렌드 뒤에 숨은 업계의 전략과 시장의 변화를 추적합니다.
권용훈 기자 fact@hankyung.com

2 hou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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