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영 소설가
가끔 “제가 소설에 재능이 있을까요?”라고 묻는 사람을 만난다. 그때마다 소설 쓰기의 재능이란 무엇인가 고민해 보곤 한다. 사전에서는 재능에 대해 ‘어떤 일을 하는 데 필요한 재주와 능력’ 혹은 ‘타고난 능력과 훈련에 의하여 획득된 능력’이라고 정의한다. 재능이 없는 사람은 고달프다. 노력만으로는 최고의 자리에 오를 가능성이 희박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재능 있는 사람의 인생이 마냥 순조로울까. 아무리 천재라도 부침을 겪기 마련이고, 재능이 만능 방패가 될 수는 없다는 걸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질문을 ‘재능이 있는가’에서 ‘이 일을 사랑하는가’로 바꿔 보자. 전자가 주어진 능력을 묻는다면, 후자는 자발적인 의지를 묻는다. 일에 대한 사랑과 사명감의 가치는 종종 타고난 재능 뒤로 밀려나곤 한다. 사랑과 사명감은 지속성을 부여한다는 점에서 무척 중요하다. 소설 쓰기를 예로 들어 보면, 꾸준히 쓰는 행위는 고된 일인 데다 글쓰기보다 중요한 일은 도처에 널려 있다. 습작기에는 경제적 보상이 주어지지 않으므로 글쓰기는 매사에 뒷전으로 밀리기 십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쓰는 사람은 언제나 존재한다. 그저 쓰는 행위가 절박한 사람들. 아니 에르노는 대담집 ‘칼같은 글쓰기’에서 죄책감을 글쓰기의 동력으로 삼는다고 말했다. 그는 쓰는 행위를 속죄이자 의무라고 여겼다. 또한 쓰는 행위만이 진실에 다가갈 수 있다고 믿었다. 나는 그것이 그가 스스로에게 부여한 사명이 아닐까 생각한다.
사명감은 수지가 맞지 않는다. 적당히 하면 된다는 말도 틀리지 않다. 그러나 그 말엔 삶에 회의감을 들게 만드는 함정이 있다. 자기 일에서조차 주체적일 수 없다면 우리는 과연 무엇으로 존재의 의미를 설명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