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년 만에 가장 센 ‘슈퍼 엘니뇨’ 전망
韓, 초여름에 덥고 습한 바람 예상… 집중호우-폭염 번갈아 일어날 수도
페루는 늦가을에 38도… 폭염특보
비 많이 오던 인니, 가뭄-화재 피해… 이상 기온에 인명-경제적 타격도
온열환자 늘고 과채류 수확량 저하, “인프라 보강 등 선제적 조치 필요”

“높은 신뢰도로 1870년대 이후 가장 큰 엘니뇨가 될 것이다.”(폴 라운디 미국 뉴욕주립대 대기과학과 교수)
“동태평양이 이렇게 뜨거운 것은 처음 본다.”(예상욱 이화여대 기후에너지시스템공학과 교수)
전 지구 해수온이 관측 사상 유례없는 수준으로 치솟으면서 국내외 기상학계에서 잇달아 ‘극한의 엘니뇨’를 경고하고 있다. 한반도는 지리적으로 엘니뇨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는 위치는 아니지만 올여름은 지구 온난화에 강력한 엘니뇨가 겹치며 ‘복합 찜통’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엘니뇨와 별도로 국내 여름 폭염에 영향을 주는 북태평양의 해수온은 이미 높은 상태다.적도 부근 동태평양에서 시작되는 엘니뇨는 전 세계 대기 순환을 뒤흔들며 곳곳에 홍수와 가뭄을 일으킨다. 페루, 인도네시아 등 엘니뇨의 직격탄을 맞는 국가들은 연일 경고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국내 전문가들은 여름철을 앞두고 “엘니뇨로 인한 이상 고온과 한여름 극한 호우, 돌발 가뭄 등에 대비하기 위해 인프라 보강과 사회 안전망 확충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열대 서태평양 돌풍, 한반도 기후 흔들어
엘니뇨는 적도 태평양 중·동부의 해수면 온도가 평년보다 0.5도 이상 높아지는 현상을 말한다. 기온 상승에 따라서 엘니뇨의 강도를 구분하는데 1도 이상이면 ‘중간’, 1.5도 이상은 ‘강함’, 2도 이상은 ‘매우 강함’ 단계로 분류된다. 공식적인 표현은 아니지만 일부 연구자들은 매우 강함 수준의 엘니뇨를 두고 ‘슈퍼 엘니뇨’라고 칭하기도 한다.
따뜻해진 열대 중·동태평양에서 대류 활동이 강화되자 필리핀해 동쪽 지역에 고기압성 순환이 강하게 형성됐다. 적도의 고온 다습한 남서풍이 이 북서태평양고기압의 가장자리를 타고 한반도로 흘러들어 왔다. 이 때문에 5월 낮 최고기온이 35도에 육박하는 때 이른 불볕더위가 찾아왔다. 아울러 초여름부터 한반도 대기 하층에 습도 80∼90%의 ‘사우나 열돔’이 형성될 것으로 전망된다. 예 교수는 “엘니뇨로 인해 필리핀 인근에서 북서태평양고기압이 평년보다 빨리 발달했다”며 “이 고기압이 시계 방향으로 회전하며 한반도에 초여름부터 습하고 따뜻한 바람을 불어넣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국내 여름철 기온을 좌우하는 주요 기압계는 한반도 북쪽에서 세력을 키워 오는 북태평양고기압과 남서쪽에서 확장하는 티베트고기압이다. 이 두 고기압이 한반도 상공에서 포개질 때 한반도는 이른바 ‘이중 열돔’에 갇혀 극한 폭염을 겪는다. 북서태평양고기압은 북태평양고기압 중에서도 한반도와 필리핀, 일본 등 동아시아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서쪽 자락을 떼 내어 부르는 명칭이다.
기상청도 올여름이 평년보다 더울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6, 7월은 기온이 평년보다 높을 확률이 60%, 8월은 평년보다 높을 확률이 50%로 분석됐다. 평년과 비슷할 확률과 평년보다 낮을 확률은 각각 40%와 10%다. 북인도양과 북태평양의 해수면 온도가 평년보다 높기 때문이다.
엘니뇨가 발생했다고 해서 반드시 한국의 여름 기온이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현재 열대 서태평양의 뜨거운 바닷물이 동쪽으로 이동하면서 이 지역 해수면 온도가 다른 해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데, 이로 인한 영향을 받을 경우 7, 8월은 그리 덥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다만 온난화로 인해 평균기온이 높은 상태에서 강한 엘니뇨가 겹치면 집중호우와 폭염이 번갈아 발생하는 ‘습한 폭염’의 가능성이 높아진다.● 엘니뇨 직격탄 맞는 나라들
페루와 에콰도르는 엘니뇨로 인한 피해가 큰 대표적인 국가다. ‘엘니뇨(El Nino·스페인어로 어린아이)’라는 이름 자체가 이 지역 어부들이 붙였다. 크리스마스 전후 해안 수온이 따뜻해지는 현상을 목격하고 이를 ‘아기 예수’에 빗댄 표현이다.
페루 연안은 평소 남극에서 올라오는 훔볼트 해류가 흐르고 심해에서도 차가운 물이 올라와 바다가 서늘하다. 그러나 엘니뇨가 발생하면 뜨거워진 페루 앞바다가 폭염을 불러오고, 상승 기류를 발생시키며 비구름을 형성한다. 이 비구름은 안데스산맥에 부딪히며 페루 연안과 내륙에 기록적인 폭우를 쏟아낸다.
남반구에 위치한 페루는 5월 현재 계절상 늦가을이지만 폭염특보가 발효되는 등 이상 고온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24일 페루 기상청은 수도 리마를 포함한 해안가와 일부 산악 지역에 폭염특보를 발효하고 “엘니뇨의 직접적인 결과로 가을은 더 따뜻하고 겨울은 덜 추워질 것”이라고 밝혔다. 페루의 5월 낮 최고기온은 통상 22∼24도, 북부 해안 도시들도 대체로 20도대 후반 수준을 보이지만 올해는 5월 하순까지 38도를 넘나드는 고온이 이어졌다.인도네시아는 피해가 가뭄과 화재로 나타난다. 서태평양 연안 중에서도 대류 활동이 활발한 곳에 위치한 인도네시아는 연 강수량이 2000∼3000mm 수준으로 많다. 그러나 엘니뇨가 시작되면 비구름을 만들던 상승 기류의 중심지가 중·동태평양으로 옮겨가며 강수량이 줄고 가뭄이 든다.
인도네시아 밀림의 땅 아래에는 수천 년간 썩지 않은 식물 잔해가 쌓여 ‘이탄지’를 이루고 있다. 석탄 직전 단계의 퇴적물이다. 가뭄으로 이 땅이 바짝 마르면 작은 불씨에도 땅속 전체가 숯처럼 타들어 가기 시작한다. 인도네시아 국가연구혁신청은 “올해 초부터 건기로 인한 화재 피해가 큰 상황에서 엘니뇨가 겹치면 피해는 더욱 기록적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올해 엘니뇨가 중동 위기 등과 겹치며 더 큰 타격을 입힐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리즈 스티븐스 영국 레딩대 기상학과 교수는 “중동 위기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엘니뇨발 가뭄이나 홍수로 농작물 수확량이 감소하면 식료품 가격이 도미노식으로 상승하게 된다”며 “막대한 인도주의적 재앙이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 “피해 복구보다 사전 대응이 더 효율적”
국내 전문가들은 “엘니뇨발 이상 고온과 극한 호우, 돌발 가뭄 등에 전방위적인 대비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폭염과 강수량 변동 등 엘니뇨로 인한 이상 기상이 발생하면 온열질환 등 인명 피해뿐 아니라 농작물 피해 등 경제적 타격도 크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일 최고기온 33.3도 이상부터는 기온이 1도 오를 때마다 온열질환자가 하루 51명씩 급증한다. 지난해 온열질환자 수는 4460명으로 응급실 감시체계 운영 이후 역대 두 번째로 많았다. 초여름부터 푹푹 찌는 날씨가 이어지면 올해는 더 많은 온열질환자가 발생할 수 있다.
엘니뇨는 가을, 겨울철 기온을 높이고 강수량을 늘린다. 엘니뇨가 발생했던 2015년 11월 이례적인 집중호우로 배추, 배 등 채소와 과일 수확량이 크게 감소했다. 특히 곶감은 고온 다습한 겨울 기후로 곰팡이가 피어 전체 생산량의 45%가 피해를 입었다. 겨울철 기온이 올라가면 사과 등 과수류의 수확량과 품질이 떨어진다.
홍진규 연세대 대기과학과 교수는 “정부가 폭염 경보 체계를 개편하는 등 이상 기상에 대응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날씨로 인한 정신질환 발병 증가 등 여전히 사각지대에 놓인 영역이 많다”며 “이제는 피해가 발생한 뒤 복구하는 사후적인 방식보다 기후 적응 측면에서 사전적인 인프라 보강을 하는 것이 비용 측면에서도 더 효율적”이라고 말했다.
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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