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기념관’ 이름을 다시 생각한다[내 생각은/김만수]

2 days ago 1
서울 용산구 삼각지 일대를 지날 때마다 필자에게는 ‘전쟁기념관’이 불편하게 느껴진다. 눈에도 마뜩잖고 귀에도 거슬린다. ‘전쟁이 기념할 일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우리말 사전에서 ‘기념’은 ‘뜻깊은 일이나 훌륭한 인물 등을 오래도록 잊지 아니하고 마음에 간직함’이란 뜻으로 풀이되고 있다. 그런데 전쟁은 뜻깊은 사건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많은 사람을 죽이고 다치게 하는 전쟁, 인간이 만든 터전과 재산, 유적과 예술, 과학과 기술을 파괴하는 전쟁은 좋은 일도 아니고 공로를 기릴 지언정 결코 뜻깊은 사건이 될 수도 없다.

필자가 아는 한 어느 나라도 전쟁을 그 자체로 기념하지 않는다. 개전(開戰)을 기념하는 나라도 없다. 반대로 승전이나 종전을 기념하는 나라는 많다. 전쟁의 고통이 끝나 평화가 찾아왔으니 기뻐서 기념하는 것일 터이다.

전쟁기념관이 ‘war memorial’이라는 영어 표현을 번역한 말이라고 할 수도 있다. 실제로 전쟁기념관 홈페이지에서 전쟁기념관은 영어로 ‘The War Memorial of Korea’로 표현돼 있고, 전쟁기념사업회는 ‘Korea War Memorial Organization’이다. ‘war memorial’을 직역하면 전쟁기념관, 전쟁기념탑, 전쟁기념비 등이다. 전몰자 위령탑이나 현충탑으로 번역할 수도 있다.

영영사전에서 ‘memorial’은 ‘죽은 사람을 기리거나 많은 사람이 죽은 사건을 상기시키는 (기념비나 의식과 같은)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또는 ‘죽은 사람을 기리거나 많은 사람이 죽은 사건을 사람들에게 상기하기 위해 만들거나 행동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memorial’은 추모나 추도에 가깝다.

한반도 반만년 역사에서 우리는 다른 나라를 침략한 적이 없다고 가르치고 배운다. 그런 나라가 전쟁을 ‘기념’까지 할 일인가? 과거를 잊지 않도록 기록하면 될 일이다. 전쟁기념관의 명칭을 ‘전쟁기록관’으로 바꿀 것을 제안한다. 설립 취지에 따라 ‘전쟁사 박물관’으로 바꿀 수도 있다. 시민의 의견을 수렴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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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만수 홍익대 교양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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