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베니스비엔날레 99개 국가관·31개 공식 병행전
이란 불참·러시아·이스라엘관 시위 속 긴장 개막
한국관 ‘해방공간’, 일본관 관통한 첫 협업 주목
최빛나 “황금사자상 폐지했는데 인기상도 재고해야”
이탈리아 베네치아 자르디니에서 개막한 제61회 Venice Biennale는 미술 전시를 넘어 ‘국가’라는 시스템 자체를 되묻는 현장이 되고 있다.
전쟁과 검열, 국가와 대표성을 둘러싼 긴장 속에 열린 행사장에는 시위대와 연막탄, 팔레스타인 연대 포스터가 등장했다. 개막 전부터 세계 미술의 올림픽은 국제정세의 축소판이 됐다. 총감독 고(故) Koyo Kouoh의 갑작스러운 별세, 심사위원단 전원 사퇴, 국가관 황금사자상 폐지, 이란의 불참까지. 예술의 축제는 시작 전부터 논쟁의 장으로 바뀌었다.
전쟁의 그림자 역시 비엔날레 현장에 드리워졌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중단됐던 러시아관은 올해 제한적으로 다시 문을 열었지만 거센 반발과 시위가 이어졌다. 이스라엘관 역시 논란의 중심에 섰다. 러시아와 이스라엘 참여 문제는 심사위원단 전원 사퇴까지 불러오며 이번 비엔날레의 정치적 긴장감을 드러냈다.국가는 누구를 대표하는가. 예술은 국경을 초월하는가. 비엔날레는 올림픽인가, 난민선인가.
올해 베니스비엔날레는 그 질문들 사이를 흔들리며 항해하고 있다. 올해는 99개 국가관과 31개 공식 병행전시가 베네치아 전역에서 펼쳐진다.
전시 개막 후 해외 미술 전문 매체들은 올해 비엔날레의 ‘베스트 국가관’ 리스트를 잇달아 발표했다. Observer는 페루, 독일, 영국, 일본, 오스트리아관 등을 주목했고, Artsy 역시 정치·생태·이주·원주민 우주론 등의 서사를 중심으로 주요 국가관을 선정했다.그러나 한국관 ‘해방공간: 요새와 둥지’는 이 리스트들에 포함되지 않았다.전쟁이 할퀸 비엔날레의 긴장 속에서 한국관은 유난히 조용했다. 그러나 어쩌면 바로 그 점 때문에 더 동시대적으로 읽혔다.
올해 비엔날레 총감독 고(故) Koyo Kouoh가 제시한 주제 ‘In Minor Keys’는 거대한 선언보다 작은 목소리와 낮은 진동, 주변부의 감각에 주목했다. 실제로 올해 자르디니와 아르세날레에서는 거대한 설치보다 공동체, 치유, 영성, 관계성에 대한 탐구가 두드러졌다.
한국관 역시 바로 그 지점에서 움직였다. 예술감독 최빛나가 기획한 ‘해방공간: 요새와 둥지’는 해방 이후 한국 사회의 미완 상태와 균열, 냉전 이후의 감각을 다루면서도 이를 거대한 역사 서사로 밀어붙이지 않았다.
오히려 최고은·노혜리 작가를 비롯해 연구자, 음악가, 농부, 소설가 등 비시각예술 영역까지 포함한 ‘펠로우십’ 구조를 통해 느슨한 관계망 자체를 전시 형식으로 끌어들였다.그 출발점에는 한국의 탄핵 정국과 광장 경험이 있었다. 최 감독은 “2024년 비상계엄 이후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시위를 보며 예술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스스로 질문했다”며 “나도 내 방식대로 무언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실제로 이번 전시는 단순한 국가관 전시보다 임시적인 시민 광장에 가까웠다. 뮤지션 이랑, 사진작가 황예지, 청년 농부 김후주, 소설가 한강, 예술가 크리스티앙 니암페타 등이 참여해 제주 4·3, 5·18, 탄핵 집회와 여성 연대, 씨앗과 돌봄의 감각을 함께 엮었다.
특히 이번 한국관은 베니스비엔날레 역사상 처음으로 일본관과 협업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국가관 체계가 경쟁과 대표성 중심으로 작동해온 비엔날레 구조 안에서, 인접한 두 국가관이 대화와 교류의 플랫폼을 시도한 것은 이례적이다.최 감독은 “옆집 일본관과의 협업도 기념비를 확장하는 시도”라며 “두 국가관이 품고 있는 공유된 역사와 새로운 가능성을 연결해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자르디니의 한국관은 일본관, 독일관, 영국관, 러시아관 사이에 위치해 있다.
최 감독은 이를 두고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기까지 영향을 끼쳤던 나라들이 한국관을 둘러싸고 있다”며 “오늘날 대한민국의 지정학적 위치를 은유적으로 드러내는 모습”이라고 말했다.
이번 전시는 그 구조를 내부에서 조용히 흔든다. 최고은의 설치 ‘메르디앙(Meridian)’은 한국관 내부를 지나 일본관 방향으로 뻗어나간다. 동파이프는 일본관 울타리를 넘어 땅속으로 파고들었다가 다시 지면 위로 모습을 드러낸다.
마치 막힌 혈관을 뚫는 침처럼, 혹은 봉인된 경계를 찌르는 가느다란 신경처럼 보인다.
시각적 스펙터클은 크지 않다. 대신 ‘메르디앙’은 굳어버린 시대의 혈전을 침술처럼 찌르며 자르디니의 지정학을 은밀하게 흔든다. 거대한 선언 대신 수행하는 조용한 반란에 가깝다.
노혜리의 설치 ‘베어링’ 역시 얇은 오간자 구조를 통해 관람객이 의례처럼 천천히 한국관을 순환하도록 만든다. 강강술래처럼 빙글빙글 돌며 이동하는 동선. 요새와 둥지, 내부와 외부, 보호와 저항 사이를 오가는 감각 자체가 ‘해방공간’의 은유다.
이는 기존 비엔날레의 소비 방식과도 어긋난다. 강렬한 이미지 한 컷이나 SNS용 스펙터클보다 함께 머무는 시간과 감각의 층위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다만 현장 반응은 엇갈렸다. 강렬한 시각적 장면과 대형 설치 중심 국가관에 관람객이 몰린 반면, 한국관은 상대적으로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운영됐다. 긴 대기줄이나 화제성 측면에서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반응도 나왔다.
실제 일부 관람객 사이에서는 “너무 개념적이다” “현장에서 즉각적으로 읽히기 어렵다”는 평가도 있었다.
하지만 바로 그 점이 오히려 이번 한국관의 특징이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즉각적인 스펙터클 대신 관계와 기억, 광장과 연대의 감각을 천천히 체험하도록 설계됐기 때문이다.
한국관을 비롯해 일부 국가관은 올해 베니스비엔날레에서 단순한 전시 공간을 넘어 정치적 발언과 연대의 장소로 기능했다.
팔레스타인 연대 파업에 동참한 국가관들이 하루 동안 문을 닫았고, 전시장 곳곳에는 국가관 체계 자체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실제 올해 베니스비엔날레는 경쟁과 위계 중심 구조에 대한 문제의식 속에서 국가관 황금사자상 시상을 진행하지 않았다.
최빛나 감독 역시 경쟁 중심의 비엔날레 구조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드러냈다.
그는 “황금사자상이 폐지됐는데 다시 ‘인기 국가관’을 선정하는 것은 시대 흐름과 맞지 않는다”며 “100개의 국가관이 함께 펼치는 비엔날레에서 단 하나를 뽑는 방식은 결국 순위를 매기는 상업적 마케팅 구조처럼 느껴진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국가관들과 함께 이런 경쟁 구조 자체를 재고하자는 논의를 제기할 것”이라고 밝혔다.
해외 언론 역시 올해 비엔날레를 단순한 미술 이벤트가 아니라 지정학적 긴장과 제도 비판이 교차하는 현장으로 읽고 있다.
AP통신 기사
은 올해 비엔날레를 둘러싼 정치적 논란과 국가관 시스템 비판을 집중 조명했고, 미국 매체 베니티페어(Vanity Fair) 기사
는 “낮은 목소리의 감각”이 이번 비엔날레 전반을 관통한다고 분석했다.
그 속에서 한국관은 역설적으로 “국가를 덜 대표하는 방식”으로 존재했다. 익숙한 한국미술의 국가 브랜드 대신, 관계와 공존, 해방 이후의 미완 상태를 천천히 호출한 것이다. 작은 한국관은 거대한 국가주의적 전시 시스템 안에 조용히 균열을 내고 있다.
소음을 키우지 않고도 시대를 통과하는 전시. 올해 베니스에서 옥상까지 개방한 한국관 ‘해방공간’은 우승보다 연결을, 대표보다 관계를 상상하는 또 하나의 광장이 되고 있다.
9일 공식 개막한 제61회 베니스비엔날레는 11월 22일까지 이어진다.
[베니스=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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